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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일 1따짐

Me First

by ohsoho
구명복은 좌석 아래에 있으며, 비상 탈출 시 산소마스크가 자동으로 내려와...


이륙 전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동하자 승무원들이 산소마스크 착용 시범을 보인다. 예전에 승무원이었던 동생도 저런 시범을 보였겠지 생각하면 왠지 친밀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안전에 대한 사항이니 유심히 보게 된다.


여기서 퀴즈.

지금 당신은 당신의 아이와 함께 비행기 안에 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 산소마스크를 당장 써야 하는 상황.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 침착하게 아이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어주고 구명복을 입힌다.

2) 침착하게 아이에게 구명복을 입히고 산소마스크를 씌어준다.

3) 침착하게...는 무슨. 우선 나부터 산소마스크를 쓴다.


정답은?

아닌 것 같지만 3번이다. *


“가족이 자꾸 제 발목을 붙잡지만... 어쩔 수 없죠.”

“내 인생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지만... 어쩔 수 없죠.”


가끔 내게 상담을 청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듣는 말들이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기준으로 앞의 문장은 그들의 진심일 것이고 뒤의 문장은 그들을 옭아매는 구속일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산소마스크 퀴즈를 냈다. 대부분 1,2번을 선택한 그들은 내가 정답을 말하자 깜짝 놀란다. 정답은 3번, ‘나부터 살자’


만약 산소마스크를 내가 먼저 쓰지 않고 아이부터 챙긴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거라고 떼를 쓰며 울어댄다.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아이를 달랜다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만 간다. 겨우 아이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싶었는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산소마스크를 쓰지 못한 나는 정신을 잃고, 결국 내 아이마저도 제대로 씌우지 못한다. 가족이니까.


사랑하니까. 순리니까. 책임져야하니까


이런 수많은 ‘~니까’ 에 사로잡혀 우리는 스스로의 육체와 영혼을 갈아 타인에게 갖다 바친다. 내가 없어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그동안 그래 왔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한들 나의 피와 살을 갈아 마신 타인들도 무사하지 않다. 결국 다 같이 추락하는 것이다. 산소마스크를 쓰지 못한 엄마와 아이처럼.


이건 나만 잘 사는 게 아닌, 같이 잘 사는 길이다. 이기적인 것이 아닌 오히려 이타적인 것이다. 내가 불행한데 가족이, 애인이, 친구가 행복하겠는가? 절대 아니다. 그러니 이거 하나만 잘 따지자.

우선은 나부터 좀 살게.




* 나의 이기적 성향에서 비롯된 주관적인 답이 아닌 실제로 여객기 비상 상황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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