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팔춘? 너 동거하냐?
집으로 놀러 온 친구가 택배박스 정리를 도와주다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추궁한다. 택배 라벨지에 적힌 낯선 남자의 이름.
“마석대? 얘 좀 봐라? 이 남자는 또 누군데?”
문제는 한둘이 아니라는 것. *
몰랐어? 나 팜므파탈인 걸, 훗.
그거 병이야, 병. 안전과민증 몰라?
안전과민증.
지나지게 자신의 안전을 따지고 불안해하는 병이란다.
집에 있을 때 이중 잠금장치는 물론 방 안의 문도 잠그고 잔다. 차를 타면 시동을 걸기 전에 잠금장치부터 잠근다. 저녁 산책이나 밤에 부득이하게 거리를 걸어야 할 때 112 번호를 미리 찍어두고 여차하면 누를 수 있게 준비한다.**
택배를 받을 때 내 이름 대신 세 보이는 남자 이름을 적어둔다.
친구는 내가 안전을 위해 집으로 불러들인(?) 팔춘씨와 석대씨를 지나치다고 한다.
지나쳐?
혼자 안 살아 봤으면 말을 말자.
요즘 세상은 여자 혼자 살기엔 너무 무섭고, 또 무섭다.
그냥 길거리를 걷다가, 호프집 화장실을 갔다가, 지하 주차장에 주차ㅋ를 했다가 약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협을 당한다. 그것도 위협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크게 다치거나 죽임을 당한다. 인터넷 기사만 조금 찾아봐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말이 되어버리는 세상이라는 걸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택배조차 일부러 나를 숨기고 세 보이는 남자의 이름을 쓴다. 정말 살고 싶어서, 살아남고 싶어서.
내 안전, 내가 따지겠다는 데 뭔 상관들일까.
안전에 대한 따짐은 과민증이 낫다.
세상의 안전 불감증이 계속 되는 한.
나는 오늘도 택배 주소지에 내 이름 대신 동거남의 이름을 입력한다.***
* 서팔광씨, 장덕팔씨, 엄석용씨, 추득만씨. 김교살씨 등등. 그동안 갈아치운(?) 동거남들.
** 요즘은 신고 앱도 잘 나와 있다. 위급 상황 시 자신의 위치를 바로 112, 119에 전송해주고, 가족들에게 문자도 간다. 납치를 당해 말을 못 할 시에도 앱만 눌러도 이 모든 게 가능. 이런 안전 앱들이 꽤나 잘 나와 있다. 문제는 아이폰은 지원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한국 소비자를 호구로 안다는 애플을 떠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요즘은 한 남자에게 정착했다. 하루를 살아도 함께 살고 싶은 남자, 참치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