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의 인터스텔라 리뷰 및 분석 - 영화 내 기술적 연출을 바탕으로
영화 <컨택트(Arrival)> 문과의 인터스텔라 리뷰 및 분석, 영화 내 기술적 연출을 바탕으로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대학 수업 중, 발표를 위해 동기와 함께 작성한 리뷰글이다. 리뷰글의 절반은 그 동기에 지분이 있음을 알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르곤 한다.
‘왜 이 둘은 만나게 되는 걸까?’
‘분명 아이는 죽게 되는데?’
시간 순서가 뒤섞여 구성된 이 영화는 일반적인 관객들에게는 다소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다.
오늘은 이처럼 뒤섞인 시간의 구조가 어떤 의도로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 를 장편영화로 각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 (Arrival)>는,
<그을린 사랑>, <블레이드 러너 2049>, <듄 1, 2> 등을 연출한 거장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드니 빌뇌브다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철학적 세계관과 존재론적 질문이 교차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외계인의 방문이나 미래 기술을 다룬 SF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소통’과 ‘이해’, 그리고 ‘시간’이라는 개념을 언어로 재구성함으로써,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담아낸다.
뒤죽박죽 섞여있는 이 영화를 처음부터 '뒤죽박죽'의 의미는 무엇이냐? 라고 물어본다면 바로 대답하기 어려우니 제목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고자 한다.
*영화 전체를 다루는 종합 분석문이다. 따라서 다소 스포일러가 있다. 아직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께는 읽지 않으시기를 권한다.
원제 어라이벌(Arrival)은 단순히 '도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극이 끝나고 돌아보면, 이 '도착'이라는 단어는 복잡하고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헵타포드가 지구에 도착하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루이스가 미래의 시간에 도착했음을 암시한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연구하고 이해하면서 그들의 시간 인식처럼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비선형적인 시간 구조를 체화한다.
그 결과, 루이스는 과거와 미래의 기억을 동시에 인식하게 되며, 이는 딸 '한나(HANNAH)'와의 삶을 미리 경험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즉,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언제든지 루이스의 딸 한나에게 어떻게든 도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Arrival, 도착이라는 중의적인 제목을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개봉 제목은 컨택트(Contact)로 바뀌었다. 비슷한 동명의 영화 이름을 기대어 홍보 효과를 높인 걸 수도 있고,
어라이벌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한국어 발음으로 썩 부드럽지 않다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대중적인 이유의 전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미의 층위가 달라진다.
컨택트는 연락, 접촉이라는 의미이다. 헵타포드와 인간의 소통을 중심으로 둔 제목이다. 외적 사건(소통)과 내적 사건(미래와의 자아 연결)을 모두 포괄할 수 있지만,
원제가 담고 있던 뉘앙스는 상당히 희석된다.
물론 컨택트라는 제목도 헵타포드의 언어를 통해 과거와 미래의 자신이 연결되며 삶을 인식하는 방식이 달라짐과 닿아 있지만,
원제인 Arrival을 대체하기엔 깊이가 다소 얕다.
# 언어와 시간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설명하는 사피어-워프 가설이다.
이는 인간의 사고방식과 인식이 사용하는 언어에 영향을 끼친다는 언어결정론을 의미한다.
극에서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연구하여 이해한다. 그렇기에 점차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시제의 개념이 없는 비선형적인 구조이다. 원형으로 이루어진 이 문자는 시제를 인식해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고, 전체적으로 봐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을 연구해 이해한 루이스는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시간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렇기에 루이스는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경험한다.
이러한 시간 인식에 대한 변화는 루이스의 인생,
자신의 딸의 죽음과 남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연결된다.
“모든 여정을 알면서도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것을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
우리가 사는 생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음에도, 그 모든 것들을 직면하기로 하는 순간 우리는 그 인생을 온전히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전달한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며 시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헵타포드처럼 달라진다.
그녀는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비극적인 죽음, 이별의 순간들을 보게 됨에도 그 순간들을 바꾸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에서 피어나는 의지를 강조한다.
# 논 제로섬 게임
논 제로섬 게임은 상대가 얻은 만큼 내가 반드시 잃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의미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고, 모두가 손해 볼 수 있는 상황을 정의한다.
<컨택트(Arrival)>에서는 이 개념을 서사의 중심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로써 사용한다.
국가 간 정보 공유를 막고 있던 상황에서,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통해 각 나라가 보유한 정보를 먼저 공개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이는 경쟁을 전제로 한 제로섬 게임을 깨고, 협력과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
그리고 외계인의 방문으로 시작된 인간과 외계인의 적대적인,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다는 제로섬 게임을 전복시켰다.
외계인을 더 이상 위협의 존재로 간주하지 않고, 공존과 화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루이스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논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을 언급한 순간
그동안 헵타포드의 언어를 연구하던 루이스는 시간이 선형적으로만 흐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루이스는 시간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렇기에 루이스는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루이스는 한나와 비선형적으로 연결된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이해하게 된 루이스는 미래를 미리 알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삶을 수용한다.
미래의 루이스는 이안과 결혼해 한나를 낳고, 그 한나는 희귀병에 걸려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루이스는 이안에게 묻는다.
“미래를 안다면 그 미래를 바꾸겠습니까?”
이안은 대답한다.
“아마도… 느끼는 걸 더 자주 말하려고 하겠죠. 내가 기억하기에 내 머릿속은 온통 별에 대한 생각뿐이었어요.
그랬던 내가 가장 놀랐던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요? 그들을 만났을 때가 아니에요. 당신을 만났을 때예요.”
이 대사는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미래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아는 상태에서 현재를 더욱 충실히 살아내려는 모습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방식이 아닐까.
논 제로섬 게임은 단순히 영화 내에서 외교적인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주제, 공존과 삶의 수용을 압축하는 핵심 개념이다.
루이스는 이 개념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수용한다.
그녀는 삶이 비극으로 끝날지라도, 그 과정이 온전히 사랑과 기쁨으로 채워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Arrival)>는 외계 생명체와의 소통을 다룬 SF이지만,
동시에 언어와 인식, 시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품은 영화다.
이 작품의 기술적 요소 중 편집, 촬영, 미술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지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편집 방식은 '플래시백으로 위장한 플래시포워드'이다.
일반적으로 회상을 뜻하는 플래시백과 달리, 플래시포워드는 미래의 사건을 관객들에게 미리 보여주는 편집 기법이다.
<컨택트>는 처음부터 루이스의 과거를 보여주는 듯한 시퀀스로 시작한다.
서사가 전개될수록, 그 장면들이 실제로는 미래의 기억들임이 드러난다.
이는 관객들이 시간의 흐름을 선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을 의도적으로 교란시키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예: 오프닝 시퀀스 (1:33~4:07)
초반 내레이션과 함께 루이스와 딸 한나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이어 등장하는 ‘현재의 루이스’를 보며 관객은 그가 이미 딸을 잃은 과거를 지닌 인물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이는 비선형 시간 구조를 체험하게 하기 위한 장치였으며, 루이스가 미래를 ‘기억’하고 있다는 반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편집 방식은 헵타포드의 시간 개념을 관객들에게 체험시키는 연출이다.
또한,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리액션 쇼트 선행 편집'이다.
먼저 인물의 반응을 보여주고, 사건의 원인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초반 셸의 등장으로 학생들과 수업이 무산된다. (5분경)
군부대에 루이스를 데리러 올 때 그녀의 놀란 반응이 먼저 보여진다. (14:30경)
셀이 공격받고 떠오를 때, 인물들의 불안한 모습이 먼저 보여진다. (1:18:05~35초까지)
관객들은 주인공과 같은 위치에서 알고 있는 정보의 범위가 제한된 상태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감정에 완전히 이입할 수 있게 한다.
인물들이 겪는 공포감과 충격을 함께 느끼게 되고, 동시에 그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어 준다.
- 흔들림을 억제한 촬영
<컨택트>의 촬영은 감정의 절제와 우울감을 표현하기 위해 흔들림을 철저하게 억제한 구성이 특징이다.
카메라는 대체로 인물을 따라가되, 핸드헬드마저도 스테디캠이나 짐벌로 흔들림을 억제해 인물의 내면과 고립감을 강조한다.
이는 루이스의 공허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무거운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리고 주제인 '시간'의 정적 특성과도 이어진다.
- 포커스 인아웃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촬영 기법 중 하나는 포커스 인아웃이다.
초점이 흐려졌다가 맞춰지는 장면은 시간의 불분명함, 인물의 내면 혼란, 그리고 감정의 아련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예:
오프닝 시퀀스에서 루이스의 몽환적 상태
미래의 딸과 교감하는 장면들
헵타포드와의 소통 과정 중 감정적 동요를 표현할 때
포커스는 단순한 시선 유도 이상의 기능을 하며, 기억과 현실, 시간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카메라 앵글 또한 인물의 사고방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초반, 루이스와 이안이 방호복을 입고 셀에 진입할 때, 카메라는 천장과 바닥이 보이도록 앵글을 제한해 이들이 ‘틀에 갇힌 상태’임을 강조한다.
이는 아직 헵타포드의 언어와 시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를 상징한다.
카메라 앵글 또한 인물의 사고방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초반, 루이스와 이안이 방호복을 입고 셀에 진입할 때, 카메라는 천장과 바닥이 보이도록 앵글을 제한해 이들이 ‘틀에 갇힌 상태’임을 강조한다.
이는 아직 헵타포드의 언어와 시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를 상징한다.
- 방호복
주황색 방호복은 경계와 두려움의 상징이다.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소통이 단절되고, 방호복을 벗는 순간 진정한 교감이 시작된다.
방호복은 인간의 선입견을 시각화한 미술적 장치로 기능한다.
- 새
헵타포드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은 ‘새’라는 소품을 활용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재난 영화에서 새는 보통 위험을 감지하는 데 사용되지만, <컨택트>에서는 새가 전혀 불안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헵타포드들의 무해함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 문자
헵타포드의 문자는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그려진 문자다.
선형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다.
복잡한 원형 형태로 그려진 이 문자는 한 글자 안에 전체 의미가 담긴 비선형적인 시각 언어이다.
이는 시간을 순차적으로 이해하는 인간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헵타포드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 맺으며
영화 <컨택트(Arrival)>은 내 인생 영화 중 하나다.
언젠가 시간을 들여 리뷰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미루다가 학교 과제로 리뷰할 기회가 있어 우연히 작성한 글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준비한 과제였던 것 같았다. 동기와 함께 머리를 감싸며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영화 <컨택트>로 드니 빌뇌브라는 감독을 알게 되었다.
내 최애 감독에 등극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드니 빌뇌브교에 입교해 버렸다. (아직 <듄 2>는 관람하지 못했다…)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꼭 한 번쯤 관람해 봤으면 좋겠다.
독자들의 물음표가 해소되었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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