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 서사 리뷰
- 작가의 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 물음표가 떠오르곤 한다.
'이게 여성영화라고? 왜? 불륜영화 아니야?'
'폭력영화 아니야?'
영화가 어렵진 않으나, 마치 반어법처럼 표현되어 있는 부분이 많기에, 관람 이후 곱씹어보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번에는 <피아노> 를 관람한 후에, 좀 더 생각 정리가 될 수 있도록
부족히지만 해석을 남겨본다.
제인 캠피온의 영화 <피아노>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겉으로는 불륜, 가스라이팅, 억압 등 불편한 관계들이 펼쳐지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이는 철저히 여성의 표현 욕구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에이다는 언어장애로 말을 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피아노는 말이고, 감정이며, 욕망이다. 피아노는 에이다의 또 다른 언어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딸은 그녀의 또 다른 표현 수단이며, 피아노와 함께 에이다의 세계를 유지해주는 존재다.
하지만 남편은 이러한 표현의 가능성을 억압한다. 그는 피아노를 '물건'으로 여기고, 에이다의 의사와 무관하게 팔아버린다. 그녀의 자율적 표현 수단을 말살하고, 그녀를 '아내'라는 틀에 가두려 한다. 이는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던 순응적이고 침묵하는 여성상의 축소판이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 베인스는 흥미롭다. 그는 피아노를 다시 구입해 에이다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처음에는 불쾌한 조건처럼 보이지만, 점차 에이다는 자신의 감각과 욕망을 인식해가며 베인스를 통한 새로운 ‘신체적 표현 수단’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되찾는 과정이며, 감정과 욕망의 주체가 되어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사회적 금기로 여겨진다. 남편은 그녀의 불륜을 목격한 후, 에이다의 손가락을 자른다. 이는 곧 피아노 연주 능력, 즉 표현 능력의 물리적 거세다. 또한 그녀를 가두며 사회와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한다.
여기서 딸은 사회의 축소판처럼 묘사된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의사소통을 도우며 중재자 역할을 하다가, 어머니의 '금기된 표현'을 목격하자 사회(남편) 쪽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이는 여성의 주체적 욕망을 용납하지 않는 당대 가부장 사회의 집단적 시선을 상징한다.
또한, 영화는 문명화된 백인 남성과 날것의 감정을 지닌 원주민의 대립 구도를 통해 ‘표현’에 대한 위선을 비판한다.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의 목소리는 억압되고, 표현은 고운 말로 포장되거나 아예 삭제되어 버린다.
표면만 보면 단순한 불륜 서사로 오해할 수 있으나, <피아노>는 표현을 억제당한 여성이 어떻게 다시 자신의 언어와 감각을 회복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여성 서사의 전범이자, 표현의 주체로서 여성을 재정의하는 강력한 비유의 연속이다.
- 맺으며
'여성의 표현을 거세시키는 당대 사회의 비판,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주인공은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할 뿐.'
영화 관람 후 남겼던 한줄평이다. 억압되어 있는 여성의 표현 표출을 아름답게 그린 영화다. 개인적으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함께 여성 영화 중 가장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처음 관람하고 나면 정말 '어?' 라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온다. 이게 왜 여성영화지? 싶은. 그러나 조금씩 관람 내용을 곱씹어가며 서사를 따라가면 '아!' 하는 부분이 떠오른다. 모든 부분이 마치 반어법과 은유처럼 느껴져, 영화를 보고 나서도 즐거움을 주는 영화였다.
독자들의 생각의 정리가 조금은 되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족했다면, 한번 더 관람해보고 영화가 주는 여운을 함께 느껴보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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