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사이버 테러 재난영화를 바라보며
- 작가의 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 물음표가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도대체 사슴이랑 괴음은 무슨 뜻인데?'
'뭐야? 그냥 킬링타임용 영화인데 왜이렇게 밍밍해'
영화가 재난영화 문법을 따라가기에, 언뜻 보기에 그냥 평범한 재난 장르의 영화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집중해서 메타포들을 해석하자면, 감독이 숨겨놓은 다양한 이야기에 도달할 수 있다.
이번에는 감독이 숨겨놓은 주제와 이야기들에 대해 부족하지만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관람 전인 분들은 뒤로가기를 권장한다.
겉보기에 이 영화는 사이버 테러, 적국의 침입, 전자기기의 마비, 통신 두절, 정전, 도시의 붕괴 등 ‘전형적인 아포칼립스 재난 영화’의 설정을 따른다. 실제로도 영화 초반은 익숙한 아포칼립스들의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가 정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멸망’이 아니다.
이 영화는 아포칼립스가 아닌, 실제 사회 시스템의 마비, 즉 코로나19나 9·11 테러와 같은 현실 재난이 낳은 공황과 신뢰 붕괴를 그린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지켜보는 개인, 소시민들의 내면이 어떻게 무너지는가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뉴욕이 폭격당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앞에 놓인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과 일상의 균열이다.
- 인종과 계급
영화는 평범한 백인 가족의 휴가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이 빌린 집의 실제 주인인 흑인 가족이 나타나면서, 상황은 어색하게 뒤틀린다. 백인 가족은 흑인 가족을 끝내 신뢰하지 못하고, 흑인 가족은 자신들이 집의 주인임에도 지하방을 쓰는 불편한 처지에 놓인다. 표면적으로는 흑백차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더 복잡하다.
흑인 가족은 사회적 계급이 더 높다. 아버지는 화이트칼라 직종으로, 돈을 다루는 흔히 말하는 뱅커이고, 집도 그들의 소유다. 하지만 돈 많고 사회적 위치도 높은 흑인인 그에게도 주류 백인 사회의 경계는 여전히 높다. 고위직 백인 친구조차 재난 상황에서는 그들을 구조하지 않는다. 즉, 사회가 무너지자 그들이 쥐고 있던 '높은 계급'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외부 정보를 접하지 못한 채, 점점 무기력해진다.
한편 백인 가족은 ‘정보’를 다루는 직업군으로 설정되어 있다. 남편은 교수, 아내는 클라이언트들의 감정을 분석해야 하는 계약 담당자이다. 평소라면 정보와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사회가 마비되자 이 능력은 철저히 무력화된다. 교수는 전공 지식으로 상황을 이해하려 하나, 자신의 전공과 전혀 상관 없는 언어 장벽 앞에서 좌절하고 돌아온다. 디지털 기기에 의존해 정보를 얻으려 하지만, 전자기기 자체가 마비된 현실은 그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 정보의 단절, 불신의 증폭
이 영화에서 ‘정보의 부재’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다.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공포가 얼마나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두 가족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단편적인 정보로 인해 상대를 의심하고 불신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단절’된다. 서로 돕고 살아가는 현대 공동체의 시대는 끝났고, 열렸던 사회는 점점 폐쇄되어 간다.
해변가의 유조선, 수직 낙하하는 비행기, 아랍어로 인쇄된 전단지 등은 9·11 테러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관객에게 익숙한 현실적 공포를 소환한다. 이후에는 사슴, 홍학, 괴이한 음향 같은 비현실적인 공포가 점차 강도를 높인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며, 그들은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 불확실성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두려움은 감정의 바이러스가 되어 모두를 안으로 침잠하게 만든다.
이 두려움의 바이러스는 마치, 우리의 코로나 시대를 은유하는 듯 보인다. 우리가 겪은 코로나 팬데믹의 집단적 불안과 폐쇄성을 떠올리게 한다. 정보가 통제되고 불확실한 정보로 인해 신뢰가 가장 먼저 무너진다. 그리고 그 자리는 불신이 가득 채운다.
- 드라마 <프렌즈>
아이들 역시 부모 세대의 긴장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백인 소녀 로즈는 《프렌즈》에 몰두하며, 무너진 현실에서 도피처처럼 그것에 집착한다. 반면 흑인 소녀 루스는 프렌즈를 깎아내리며 흥미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프렌즈는 전형적인 백인 주류 문화를 대변하는 드라마이다. 루스는 아버지의 계급 하락으로 인해 자신의 위치 또한 추락할까 두려워하며, 백인 주류 문화 드라마인 프렌즈를 거부한다. 이 대조는 단순한 ‘취향 차이’가 아니라, 세대와 계급, 인종의 감각이 뒤섞이는 방식을 시사한다.
집 안으로 숨어드는 미국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로즈가 DVD를 선택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더 이상 ‘현실 바깥’을 보려 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제 알 수 없는 공포로 가득하며, 그녀는 그저 ‘닫힌 공간’ 안에서 도피를 택한다. 이 모습은 팬데믹 시대의 은유처럼 다가온다. 더 이상 바깥은 희망이 아닌 공포이며, 미국 사회는 스스로를 안으로 봉쇄해버린다.
# 마치며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는 전통적인 재난 영화의 문법을 빌리되, 실제로는 미국 사회가 맞닥뜨린 정보 불신, 인종적 긴장, 계급의 붕괴, 팬데믹 이후의 고립감과 공황 상태를 조명한다. 영화는 묻는다.
"세상이 무너지면, 당신은 어떻게 정보를 얻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911를 겪지 못한 현대 세대의 아이들과, 911을 경험한 어른 세대들과 함께 통틀어 우리는 이미 이 질문에 대해 경험했다.
그래서 더 와닿는다.
다시 코로나와 같은 모두가 불신 가득한 세상이 오질 않길.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에 진실된 말을 믿고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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