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자본을 투자한 <더 문> 모두에게 외면 받는 이유
- 필자의 말
오늘은 물음표의 방향이 약간 다르다.
보통 물음표 리뷰의 경우, 해석의 여지를 돕는 약간의 첨언 정도라면,
오늘은 마음 아프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왜 재미 없는가? 에 대해 중점을 두고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르곤 한다.
‘도대체 왜 신파를 이렇게 넣은건데.’
‘역시 한국 SF란 믿거야.’
안타깝게도 <더 문>은 관객들에게도, 평론가들에게도 모두에게 외면받은 작품이다.
나도 처음 관람하고 나서 매우 충격받은 작품이다. 충무로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한국의 장르영화 거장 김용화 감독의 작품이 왜 이렇게 됐는가.
오늘은 영화 <더 문>의 실패 요인과, 아쉬운 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다. 아직 관람하기 전이라면 뒤로가기를 누르길 권장한다.
한국 영화의 몰락을 말하는 목소리가 많다. 실제로 관객 수만 봐도,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 영화 산업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같은 몰락의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관객에게 ‘시간과 돈을 들일 이유’를 설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화 <더 문> 역시 그 예외가 아니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흥행을 기록했던 김용화 감독의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더 문>은 냉담한 평가와 함께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이번 글에서는 이 영화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주요 원인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 서사의 완성도 미흡
이 영화는 극 중 위기나 갈등이 말 한마디로 쉽게 해결되는 장면들이 반복되며 서사의 긴장감을 잃는다. 예컨대, 자문 요청을 그토록 거부하던 인물이 TV를 한번 보고 마음을 바꿔 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가는 전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고심이나 다짐 없이 행동이 전환되는 이 흐름은 인물의 동기나 감정의 축적 없이 단순히 장면을 연결시키는 데 그친다. 마치 주인공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29년이라는 설정은 현재와 큰 차이가 없으며, 전작에서 인명사고로 끝난 우주 탐사가 또다시 반복되는 점 역시 개연성이 부족하다. 실패한 전임 대통령의 정책을 단지 기술력으로 증명해보이겠다며 5년 만에 다시 실행에 옮기는 것은 정치적·경제적 현실을 고려했을 때 납득하기 어렵다.
국제적 관계 설정 역시 허술하다. 한국의 우주 탐사 실패 이후 국제기구에서 한국이 퇴출당하는 설정은 과도하게 단순화되어 있다. 외교적 수사도 없이 '수준 미달'이라는 이유 하나로 동맹국인 미국이 한국을 배제하는 상황은 현실감을 결여한다. 이는 오히려 국제 질서를 너무 단순하게 그린 나머지, 자칫 현실 인식을 비틀어버리는 설정으로 작용한다.
첨단 드론이 자유롭게 우주를 날아다니며 음성 인식까지 가능한 수준의 기술이 구현된 세계에서, 여전히 사람이 수리를 위해 위험지역에 나가야 하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수준의 드론 기술이 있다면 무인 탐사나 원격 수리 시스템도 충분히 가능해야 한다. 결국 주인공이 달에 착륙하는 장면 역시 정서적 성장을 위해 설정된 것일 뿐, 미션의 목표나 과학적 필연성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설정상 임무에 실패하고 귀환 방법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자발적으로 달에 내려가는 결정을 내리는 장면은 감정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서사적으로는 근거가 약하다. 특히 도경수 캐릭터는 충분한 전사나 명확한 목표 없이 행동하며, 그의 선택이 왜 불가피했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다. 구조를 기다리고 후일을 도모해도 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강행된 선택은 의문을 남긴다.
국가의 사활이 걸린 미션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대통령은 물론, 장관급 인사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실패한 정책을 계승해 또 한 번 우주로 향하는 중대한 사건임에도, 이를 둘러싼 정치적 책임이나 대중 여론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배경 설명의 부족을 넘어, 설정 자체의 불친절함을 의미한다.
과도한 주인공 보정도 문제다. 우주선과 도킹선이 여러 차례 충돌해도 아무런 손상이 없고, 주인공은 수차례 사고를 겪으면서도 멀쩡하게 살아남는다. 이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고, 서사적 긴장감을 무디게 만든다.
# 부족한 캐릭터성
우주비행사 3인의 관계는 영화 초반 오프닝 자막 외에는 설명되지 않으며, 이들의 유대감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없다. 이로 인해 동료들이 죽었을 때 주인공의 감정 역시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훈련 과정이나 사전 에피소드가 전혀 제시되지 않은 채, 인물의 죽음이 다뤄지는 방식은 감정이입을 유도하지 못한다.
설경구와 주인공의 관계도 불명확하다. 주인공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설경구에게 돌리지만, 아버지는 과학자로서 지상에서 일한 인물이다. 우주 사고와의 직접적 연관이 없기 때문에 이 갈등 구도는 당위성이 약하다. 차라리 아버지를 우주비행사로 설정했더라면 이 감정선은 훨씬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과학자 그룹은 모두 설경구를 중심으로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 그들은 캐릭터라기보다는 장면을 위한 기능성 인물에 가깝고, 이로 인해 극의 밀도가 낮아진다. 그나마 정부측 인물인 최병모는 상식적인 목소리를 내지만, 결국 이야기를 견인하는 데에는 기여하지 않는다. 정치적 책임을 이야기하는 인물조차 갈등의 축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캐릭터 구성의 약점을 드러낸다.
설경구의 캐릭터 역시 초반에는 은둔자처럼 등장하지만, 자문역을 수락한 후 사실상 임무의 실세로 활약한다. 자문이라는 설정과 달리 모든 판단과 결정은 설경구의 몫이고, 현장 책임자는 사실상 존재감이 없다. 설경구가 시스템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장면에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캐릭터간의 갈등은 단순하고, 구성상 긴장감이 떨어진다.
# SF와 신파의 부조화
한국에서 본격적인 우주 SF 장르는 2010년대 이후에야 형성되기 시작했고, 아직 장르 자체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더 문>은 SF 장르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 신파적 서사에 익숙한 기성세대를 모두 아우르려는 시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쪽에도 만족을 주지 못했다.
젊은 관객층은 가족 중심의 신파 서사에 피로감을 느끼며, 오히려 논리성과 개연성을 중시한다. 이들에게 <더 문>은 진부하고 억지스러운 감정 호소로 보였고, SF 장르의 완성도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기성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서사 역시 부족했다. 감독의 전작인 <신과 함께>는 억지 신파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구조와 감정선을 어느 정도 따라가며 일반 관객을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문>은 장르적으로 너무 매니악하고, 감정선 역시 얕아서 어느 쪽에도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 티켓 파워 부족과 개봉 시기의 실패
고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임에도, 관객 유입을 견인할 만한 강력한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가 없었다. 일반 관객은 영화 선택 시 배우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에, 스타 파워가 부족한 캐스팅은 흥행에 악영향을 미쳤다. 또한 경쟁작이 많은 시기에 개봉함으로써 상대적 관심도 분산되었고, 마케팅 효과도 약했다.
# CG 기술력의 진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CG와 시각효과는 한국 영화 기술력의 현주소를 긍정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헐리우드 SF 영화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며, 국내 그린스크린 및 조명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음을 입증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력은 결국 영화의 서사를 지탱하는 데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신과 함께>와 마찬가지로 내수용 포트폴리오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 우주 SF 클리셰와 상징적 해석의 시도
우주 SF 장르는 종종 생명, 창조, 메시아 서사 등의 주제를 은유적으로 다룬다. <더 문> 역시 주인공의 사령선을 자궁, 루나 게이트웨이를 어머니로 해석하는 상징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이 달에 착륙해 고난을 겪고, 다시 사령선으로 귀환하는 여정은 일종의 '잉태와 출산'을 연상시킬 수 있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부분이다.
- 마무리하며
필자는 우주 SF 영화의 팬이다. 한국에서 개봉하는 SF 영화는 가능하면 모두 챙겨보려 노력해왔고, <승리호>를 비롯해 대부분의 작품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그러나 한국 SF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단순히 관객의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만한 영화가 없었던 것이다.
SF 장르는 본질적으로 막대한 자본이 요구되는 어려운 분야지만, 저예산임에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 국내외 영화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동명의 해외 영화 <더 문>처럼, 창의적이고 서사적으로 훌륭한 SF 작품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SF 장르가 관객과 투자자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은, 장르에 대한 오해와 얕은 접근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SF’라는 단어만 붙이면 감동과 눈물을 집어넣고도 괜찮다는 식의, 소재에 기대려는 안이한 기획이 반복되어 왔다.
나는 한국 감독들의 역량이 결코 세계에 뒤처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장르에 대한 이해와 에티튜드 없이, 형식만 따라가며 감정에 기댄 영화들이 반복된다면, SF라는 장르 자체가 한국 영화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부디 SF뿐만 아니라 로맨스와 느와르를 벗어난 다양한 장르의 수작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 우리 영화가 장르적으로도 완성도 있게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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