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헬싱키 여행
하루짜리도 안 되지만
1번 투르크 항 가던 길, 2번 투르크 항, 3~7번 휴게소 먹거리, 8번 휴게소에서 내가 산 것들. 사진=딱정벌레 헬싱키에 간 건 북유럽 여행 2일차 되는 날이었다(출국일 제외).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자라인 배를 타고 밤새 핀란드 투르크 항으로 왔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헬싱키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배 안에서 아침 식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항에 도착했다. 북유럽 백야가 한창일 때라서 해가 잠깐 졌다가 금세 뜨는 느낌이었다. 전날 밤 난생처음 보는 백야에 마음이 들뜨고 부풀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배 안에 구경거리도 많고. 배 안에서 잠자리는 불편했지만 큰 무리는 없었다.
투르크 항에서 버스를 타고 헬싱키로 향했다. 몇 시간 걸렸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데 중간에 휴게소도 들렀다. 두세 시간 걸리지 않았을까 싶다. 오슬로, 스톡홀름처럼 여기도 곳곳에 가느다란 직선 모양 자작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북유럽 전형적 풍경인가 했다. 휴게소는 먹거리가 참 다채로웠다. 샐러드도 그렇고, 고기도 팔고. 우리 편의점 먹거리도 늘었지만 그 이상이었다. 슈퍼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난 머리 묶는 고무줄과 음료수, 초코바, 껌을 샀다.
1번 우스펜스키 대성당, 2번 헬싱키 대성당, 3~5번 대통령 궁 주변, 6번 박물관, 7번 시내 트램 지나가는 풍경. 사진=딱정벌레 헬싱키는 조용했다. 인구밀도는 낮고 호수는 무진장 많은 나라가 핀란드라고 들었지만- 마침 헬싱키에 간 날은 미러 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었다. 경비가 삼엄한 듯했고 원래 가려고 했던 장도 그날은 열리지 않았다. 도시에 사람이 적은데 원래 인구가 적은 건지 아님 정상회담일이라서 적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바글바글거리는 사람은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 싶다. 정상회담 덕분에 구경거리도 줄었다. 이날 오후에 코펜하겐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어차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이날 헬싱키에서 들른 곳은 대통령궁, 우스펜스키 대성당, 헬싱키 대성당, 헬싱키 암석교회, 시벨리우스 공원, 눅시오 공원. 중간에 샐러드바 같은 데서 점심 먹은 정도. 대통령궁과 두 성당은 모두 근처에 있었다. 또 안에 들어간 건 아니었고 그 주변에서 사진 찍은 정도였다. 성당엔 큰 인상은 못 받았다. 대통령궁은 외관이 생각보다 소박해서 놀랬다. 길가에 있고 대중 접근성이 좋다고 해야 하나. 초등학교 때 청와대 견학 간 적 있는데 너무 오래됐지만 그때 받은 청와대 인상과 차이 났다.
암석교회는 느낌이 좀 다르긴 했다. 지붕이 돌무더기로 돼있고, 내부도 웅장함이 느껴졌달까. 사람이 무척 많아서 그럴지도. 2층에 올라가서 아래를 매려다 봤을 때 규모가 좀 더 실감 났다. 여러 나라 말로 말씀이 적힌 카드가 있었고. 입장했을 때 앞에서 누가 인도하고 있었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인지 아님 다른 데서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관광지 교회나 성당 가서 눈감고 기도하면 소매치기당하니 조심하라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신경 쓰이느라 교회를 제대로 묵상할 겨를도 없었던 듯.
시벨리우스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민족 음악가라고. 파이프오르간 조형물은 멋졌다. 가장 마음에 들고 기억에 남는 곳은 눅시오 국립공원이었다. 헬싱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 전형적 핀란드 자연 풍광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잔잔한 호수, 직선 나무. 2018년 여름에는 북유럽도 더웠다. 핀란드도 30도 넘어가는 날이 있을 정도니. 난 7월 중순에 가서 더위가 한창이었다. 숲에서 바람이 잔잔히 불어와 셔츠 안을 머물다 가는데 상쾌했다. 좀 더 오래 있고 싶었다.
1~2번 시벨리우스 공원, 3번 파이프 오르간 조형물, 4~10번 눅시오 국립공원. 사진=딱정벌레 비행기 시간 때문에 이른 저녁을 먹고 반타 공항에 갔다. 셀프로 체크인하는데 버벅댔다. 겨우 체크인해서 들어갔는데 면세점은 별 게 없었다. 핀란드 하면 무민이 유명하지만 무민 캐릭터 제품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사실 해외 캐릭터 본고장에서 파는 기념품이 내 눈에는 특별히 더 좋지는 않았다. 국내에서 브랜드 협업해서 내는 게 더 나을 정도. 해리 포터만 해도 그렇다. 최근 할리스 커피에서 해리 포터 머그를 냈는데 내가 보기에 현지 기념품보다 훨씬 예쁘다.
헬싱키 인상은- 기껏 배 타고 밤잠 설치며(?) 갔지만 제대로 된 구경을 실컷 하지는 못해서 인상이라고 남길 게 별로 없다. 보통 핀란드 하면 노키아, 영화 '카모메 식당', 하루키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사우나, 자일리톨, 무민, 오로라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나도 이런 상징을 좋아한다. 그러나 관련된 걸 충분히 경험하지는 못했고. 다음 일정 때문에 쫓기듯이 움직여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쉽기만 한 곳이다. 그나마 눅시오 국립공원에서 산책한 시간이 선물 같다.
그렇다 보니 헬싱키나 코펜하겐 같은 곳은 나중에 다시 가고 싶기도 하다. 별 의미 없지만 괜히 시나몬 롤을 먹고 싶기도 하고. 대통령궁 옆에는 박물관도 있는데 전시도 보고 싶다. 소설에 나온 지역을 답사하고 싶고. 사우나도 해보고 오로라도 보고 싶다. 그걸 해야 여길 제대로 경험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직접 간 여행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핀란드 전시에서 더 보고 느낀 게 많았다. 영상으로 사우나와 오로라를 체험하거나 시벨리우스 음악을 듣는 코너를 운영하는 등.
1번 반타공항 체크인 기계, 2~4번 반타공항 면세점, 5번 반타공항 휴대전화 충전기, 6번 코펜하겐행 비행기 내부, 7번 비행기 외관. 사진=딱정벌레 그래도 인상을 남긴다면- 헬싱키는 스톡홀름이나 코펜하겐보다 직선 이미지가 강했다. 그 지역은 곡선 이미지라면 여기는 건물부터 자로 잰 듯 정갈하고 깔끔한 이미지. 거리도 내 눈에는 깨끗했고.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싶고. 이곳은 유럽 같은 느낌이 크게 들지 않았다. 한때 러시아가 점령한 적도 있지만(미러 정상회담한 것도 러시아에서 오기가 나은 지역인 까닭도 있지 않을까). 러시아가 다른 유럽 국가와 이질적인 것처럼 헬싱키에서 외관으로만 느낀 핀란드 이미지도 그랬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여행이라 기회가 된다면 여유를 갖고 이 도시를, 그 나라를 다시 둘러보고 싶다. 참고로 핀란드는 1907년에 여성의원 19명을 뽑았고, 주 40시간 근무는 1970년대에 도입했다고 한다. 핀란드 디자인 전시에서 본 건데 핀란드 고대시대 유물을 보면 우리와 비슷한 게 많다. 예를 들면 뗀석기. 빵 집개도 활 크기만 하고. 디자인이 단순하고 다리가 안정적인 삼발이 의자도. 노키아 브랜드로 스마트폰 만드는 HMD도 궁금하다. 여긴 심지어 노키아 출신이 주역. 정치, 사회, 문화, 기술사나 디자인 등 테마를 잡고 둘러보면 새로운 매력이 더 보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