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타임캡슐 '노란 우체통'의 추억

20년 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엔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by 딱정벌레
노란우체통 인터뷰 장면. 사진=이민아

경북 봉화 춘양면은『정감록』에서 꼽은 '십승지지' 중 한 곳이다. 십승지지란 외적의 침입, 재난을 피하기에 가장 안전한 지역. 노란 우체통은 타임캡슐에 편지를 보관해주는 곳인데 춘양면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 있었다. 이곳을 알게 된 건 2006년 겨울 무렵. 아마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이때였던 것 같다. 지인의 지인의 지인이 운영하는데 편지 타임캡슐 서비스라는 걸 알고 나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 바람을 대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2007년 초 이뤘다.

당시 난 학교 신문사 3년 차 기자가 됐고, 부장으로 두 개의 부서를 맡았다. 그중 한 부서가 문화부였다. 당시 우리 신문은 주간지였고 발행 일정은 한 학기에 총 10회였다. 시험기간 또는 특집호 제작 일정을 제외하면 매주 발행됐다. 방학 때는 기말고사가 끝난 뒤 2주 정도 쉬다가 개강 전까지 내내 방중 일정을 진행했다. 이 기간에는 지난 학기 작업을 평가하고, 연수를 받고, 다음 학기 신문 발행에 필요한 사전 취재를 하고, 사전 기획회의를 했다. 부장이 부서별 방중 일정을 직접 짜는데 난 문화부 방중 일정에 노란 우체통 취재를 포함했다.

갓 부서에 들어온 후배 두 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봉화로 향했다. 물론 가기 전에 노란 우체통 소장님께 전화를 걸어 일정을 잡았다. 난 그냥 도착해서 택시 타고 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장님께서 직접 정류장까지 나와서 노란 우체통까지 태워주신다고 말씀하셨다. 3시간 정도 걸려 봉화에 도착했고 정류장 근처에서 소장님을 만났다.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봉화에는 돼지 숯불구이가 유명했는데 소장님께서 우리 점심으로 그 메뉴를 사주셨다. 바쁘신 가운데 시간을 내서 정류장으로 데리러 와주시고 점심까지 사주 시다니 너무 감사했다. 우리가 학생이라서 배려해주신 것 같기도 하다.

점심을 먹은 뒤, 소장님의 차를 타고 노란 우체통이 있는 춘양면 산골짜기로 향했다.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어서 왜 이곳이 십승지지 중 한 곳인지 짐작도 됐다. 같이 간 후배들도 많이 외진 곳에 있다고 느꼈는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배 대체 여기 어떻게 오려고 했어요?" 문득 '내가 너무 대책 없이 일정을 짰나'라는 생각도 들고. 소장님의 호의와 배려가 아니었다면 오가는 길이 엄청 힘들었을 뻔했다. 노란 우체통 건물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부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멋졌다.

사진=픽사베이

소장님이 노란 우체통을 연 이유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조금 느리지만 따뜻한 문화를 찾고 싶어서였다. 이메일이 보편화되면서 종이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따뜻함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우셨다고. 이름을 노란 우체통으로 지은 이유는 노란색이 감성적이고 따스한 이미지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PC로 타이핑을 쳐도 마음을 담을 수 있다. 그래도 손으로 몸을 움직이며 글을 쓰면 마음을 다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손으로 연애편지를 쓸 때는 평소 문자메시지나 모바일 메신저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더 나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긴 채널별로 적합한 콘텐츠는 따로 있으니까.

여기서 편지를 보관하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가족, 연인이 함께 오기도 하고, 사관학도도 있었다. 보관기간이 가장 긴 편지는 20년이었는데 어떤 중년 남성이 자신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였다고 했다. 그때 인터뷰하는 동안 소장님이 고구마도 구워서 우리에게 나눠주셨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우리 세명의 사진도 찍어주셨다. 더 놀랬던 건 우리 사진을 노란 우체통 홈페이지 화면에 띄워주신 것.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평범한 대학생들의 방문을 의미 있게 기념해주셔서 고마웠다. 어떤 문구를 써주셨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젊은 친구들이 직접 봉화까지 방문한 열정을 높이 사주셨다.

사실 노란 우체통은 그동안 기성 언론에서 여러 번 기사를 냈다. 그러나 직접 찾아와서 취재한 곳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하셨다. 기성 언론의 기사가 마치 실제로 보고 쓴 듯 생생해서 원격 취재를 했을 거란 생각을 전혀 못했다. 어쨌든 직접 방문해서 취재한 게 우리가 처음이라니 뿌듯했다. 당시에는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학생 기자라서 좋은 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기성 언론이 하지 않거나 못하는 일을 학생 기자가 해냈을 때. 또는 기성 언론이 바빠서 직접 만나지 못한 사람을 우리가 만나고, 그들이 가지 않은 곳을 우리가 갔을 때.

지금도 이 서비스가 운영되는지는 모르겠다. 원래 홈페이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 쇼핑몰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종이 편지를 노란 우체통으로 보내고, 홈페이지에서 편지 보관을 신청해야 했다. 직접 와서 신청해도 됐다. 당시에는 보관료가 1년에 1만 원, 해가 바뀌면 2000원이 추가됐는데 좀 더 받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소장님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지만 친히 정류장까지 바래다주시고, 점심도 사주시고, 시간을 내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셔서 무척 고마웠다. 무엇보다도 내 대학시절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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