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영어 이름과 영어 발음 단상
사진=픽사베이평생 해야 하는 일이 여러 가지 있다. 운동, 다이어트, 공부 등. 배울 게 참 많은데 영어 공부도 내겐 평생 해야 할 일이다. 일상 속에서 영어를 말할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영어 텍스트는 많이 읽는다. 일 때문이기도 하고. 더 나은 자료, 질 높은 자료를 찾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기 위해 영어 텍스트를 보는 게 일상이다. 기술 콘텐츠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앞서 간 기술 정보가 해외에 많으니까. 기자일 때는 담당 분야에 따라서 굳이 영어 자료를 안 봐도 될 때도 있었다. IT 기자는 예외다. 최소 영어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외신도 많이 보니까.
주로 독서(?) 또는 조사용으로 영어를 접했지만 영어를 공부하는 일은 드물었다. 시험을 준비한다거나 순수하게 회화를 공부하는 등. 올해는 영어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달부터 거의 20년 만에 EBS 영어 회화 강좌를 다시 듣고 있다. 결심을 하루(?) 늦게 해서 1월 1일부터 듣지는 못했다. 1월 2일 방송분부터 듣기 시작. 다행스러운 건 하루도 안 거르고 현재까지 매일 들었다. 매일 하루에 3가지 어휘를 배우고(이미 아는 어휘도 많지만 잘 쓰지 않아서 잊고 있는 어휘가 많다) 잠을 깨우는 목적도 있다.
EBS 중급영어회화는 월~토요일 오전 7시 40분에 본방송을 한다. 재방송도 많이 한다. 하루에 세 가지 어휘를 다루는데 한 달이 4주라고 가정하면 최소 한 달 72개 어휘는 배우는 셈이다. 쓰기 버릇하지 않으면 또 까먹겠지만. 매일 주제가 있다. 해당 주제로 대화를 듣고 말하고. 어휘별 연습 문장을 듣고 말한다. 마지막에는 혼자서 그날 배운 어휘로 영작을 한다. 스스로 문장을 만든 다음, 모범 답안과 비교한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건 영작하는 부분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직접 문장을 만들고 수정한 뒤, 이를 익히는데 머리에 잘 남는다.
사진=유유앞서 말했듯 평소에 영어를 말할 일은 별로 없다. 튜터링이나 링글 같은 서비스 대신 방송 강좌로 영어 회화를 공부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당장 쓸 일은 없지만 평소 공부하고 내용을 숙지해서 갑자기 필요한 상황이 닥쳤을 때 써먹자고. 난 살면서 영어 공부할 때 방송 강좌 덕을 많이 봤다. 갑자기 외국인과 채팅하거나 본의 아니게 급작스럽게 영어로 뭐라도 말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그때 배운 표현, 학교에서 배운 표현 등이 꽤 도움됐다. 관용구나 이것저것. 고1 때 MSN 메신저로 외국인과 채팅을 많이 했는데 그때 유용했던 것 같다.
최근 영어 공부를 다룬 책을 읽었다. 얼마 전 완독 했는데 '단단한 영어공부 :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이라는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책. 이 책에서는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도 나오지만 그보다 외국어 학습의 목적, 본질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동안 우리는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를 많이 했다. 또 원어민 발음을 익혀야 하고 한국식 억양이나 발음은 배격해야 하고. 사대적인 영어 공부 관점을 내면화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영어 공부 통념에 도전한다.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그동안 영어 학습을 바라보는 관점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조목조목 따진다.
읽으면서 내게도 도전이 되거나 새로 배운 내용이 많았다. 공감 가는 내용도 많고. 예를 들어 영어 이름 이야기가 그랬다. 난 영어 이름이 없다. 거기에는 12년 전 호주 어학연수에 가서 있었던 일화가 영향을 줬다. 그때 한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홈스테이 맘은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도 산 적이 있고 원래 인디언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그에게 유고 출신 동거남이 있었다. 그는 나와 그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또 다른 학생에게 "너희는 영어 이름이 뭐야?"라고 물었다.
사진=픽사베이그때 홈스테이 맘이 이렇게 말했다. "영어 이름 같은 거 지을 필요 없어. 그들이 너희 본래 이름을 직접 발음하게 해야 돼." 그 말이 내게 울림이 컸다. 듣고 보니 그랬다. 내 이름을 현지인이 직접 발음하도록 노력해야지 뭐하러 내가 그들을 위해 영어 이름을 만들어야 해? 영어 이름을 따로 짓는 사람을 가치 판단하지는 않는다. 국내 IT 기업이나 스타트업을 보면 영어 이름을 부르는 곳도 있고,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려는 목적도 깔려 있다. 그건 존중한다. 다만 억지로 굳이 나까지 영어 이름을 만들고 싶지 않다.
어쨌든 그 전에도 영어 이름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호주에 갔다고 해서 억지로 영어 이름을 짓지는 않았다. 한국 와서 회화 수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 호주에서도 수업 시간에 내 한국 이름을 그대로 썼다. 그들은 '영'을 발음하는 걸 힘들어했다. 그래도 내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려고 애썼다. 생각해보면 그때 일본인 학생들도 자신들의 일본 이름을 그대로 썼다. 일부 한국인 가운데에는 제이콥이나 사비나와 같은 영어 이름을 쓰는 이들이 있었다. 그것도 이해는 됐다. 그들 한국 이름은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은 아니었다.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 "...(중략) 하지만 발음을 잘못하는 것은 그 이름을 발화하는 사람의 노력이나 상대를 대하는 태도, 언어 간 거리 등의 문제이지, 내 이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모국어 화자가 발음하기 어려우니 당연히 영어 이름이 있어야 한다거나, 영어유치원에서는 반드시 영어 이름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자신의 이름, 나아가 서로 다른 언어의 권력관계에 대한 선입견을 은연중에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픽사베이"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만나는 다문화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도 영어 이름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다문화적 경험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음이나 어휘, 문법 등 언어적 요인으로 인한 충돌이 일어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상호 협상이지 일방적인 순응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름부터 부르기 쉽게 하자'는 생각은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호칭에서부터 협상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특정한 사회문화적 조건 때문에 생겨나는 영어 이름에 대한 욕망이나 사용 행태를 싸잡아 비난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은밀한 힘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발음하기 쉽게 한국 이름 하나씩 지어주세요"라고 요청하진 않으니까요....(중략) 만약 아이에게 영어 이름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함께 적당한 이름을 찾아보고 이름의 발음과 느낌, 숨어있는 어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신중하게 선택하는 시간을 갖고 그 과정에서 뭔가 배워나가면 좋겠지요."
영어 발음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책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20년 전에 영어 공부를 할 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그래도 다양한 발음을 공부하고 익숙해지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토익 시험에도 일단 영국식 발음, 호주식 발음 등 다양한 발음이 나오기 때문에 듣기 시험을 잘 치르려면 어느 정도 알긴 알아야 한다. 영국식 발음은 사람들이 남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선지 '브릿 잉글리시'라는 서비스도 있고, EBS에는 '권주현의 진짜 영국 영어'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사진=EBS이런 서비스나 프로그램에서는 영국 발음만 다루는 건 아니다. 학습 콘텐츠를 영국 드라마에서 활용하는 경우도 있고. 참고로 권주현 아나운서는 영국식 발음을 구사하는 아나운서로 알려져 있다. 아리랑 TV에서 활동하는데 개인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다. 권 아나운서 유튜브는 진짜 웃기다. 처음엔 정보를 얻는 목적으로 보려 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얼마나 웃기는지 두고 보려는 마음으로 보고 원초적인 즐거움을 느낀다. 영국식 영어와 대비되는 이미지랄까.
유튜브 채널을 보면 영어를 다룬 콘텐츠가 많다. 가수나 유명인사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콘텐츠도 있고. 회화 전용 채널도 있고. 영어 유튜버가 너무 많아서 이름이 생각나지는 않는데- 한 유튜버가 권주현 아나운서를 저격(?)하는 콘텐츠를 선보인 적 있었다. 권 아나운서는 영국식 발음 가운데에서도 여왕 등 상류층이 많이 쓰는 포쉬 발음을 구사한다고 알려져 있다. 어릴 때 영국에서 살았다는데 후천적으로도 발음을 잊지 않기 위해 많이 애쓴 듯했다.
그를 저격한 유튜버는 포쉬 발음을 쓰는 사람이 얼마 안 되고, 표준도 아니고 여러 가지 이유를 이야기했다. 난 그걸 보면서 '그게 굳이 저렇게 이야기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어민 발음 사대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영어 이름을 짓고 싶은 욕망이나, 원어민 발음을 닮아가고 싶은 욕망까지 굳이 부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원하는 발음을 익히고 공부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한국식 발음을 뜯어고칠 필요도 당연히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튼 그랬다.
사진=픽사베이이 책에서는 원어민 발음에 대한 환상(?) 또는 편견 한계를 짚는다. 미국만 해도 이민자 국가이고 인종과 문화가 다양한 만큼 사람들 발음도 다양하다고. 우리는 영어 원어민 하면 "'CNN 같은 방송에서 아주 명쾌한 발음으로 뉴스를 전하는 앵커'나 '영어 교재에 나오는 발음을 구사하는 사람', '토플이나 토익 같은 표준화된 시험에서 문제를 읽어주는 사람'을 떠올린다"라고. 이는 "'교육을 잘 받은 미국 중산층 백인 엘리트'와 상응하는데 그런 발음을 구사하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몇 % 나 되냐"라고.
저자는 "일부 원어민 영어를 모델로 삼는 게 잘못됐다고 하지는 않는다".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려면 일정한 표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적절한 모델을 따라서 노력하는 자세가 필수"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표준과 다른 영어 발음과 문법을 쓰는 사람 태도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거나 다양성이 아닌 배제의 논리로, 평등이 아닌 위계의 논리로 발음을 대하는 게 은밀한 언어 차별의 논리에 휘둘리는 거"라고 꼬집는다.
우리는 원어민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영국문화원과 영어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 추산에 따르면, 원어민-비원어민 간 대화보다 비원어민-비원어민 간 대화가 더 빈번하다"라고 한다. "우리는 원어민이 되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공부한다"라고. "한국 사람은 한국 영어를 합니다.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생각과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발음이라면 한국 억양이 섞여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사진=픽사베이"문법적으로 오류가 없는 문장을 써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의견을 입체적이면서도 엄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흠 없는 문장이라는 신기루를 좇기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지, 쓸 가치가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겠죠. 이러한 고민 없이 쓴 글은 문법적으로 완벽할지 모르지만 내용과 깊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에게 영어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말 책을 최대한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글에 힘과 의미를 불어넣는 것은 조금 더 나은 영어라기보다는 깊이 있는 내용과 관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공부하기보다는 관련 지식을 쌓고 이에 기반해서 영어를 공략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줄 세우고 영어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영어도 가지가지이고 영어를 잘하는 모양새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삶에서 어떤 영어가 필요한지 생각해보세요. 그 길에 정진하세요. 그러다 보면 여러분은 자기 영어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사진=픽사베이다시 읽어도 이 부분은 너무 사이다다. 이 책 내용 전반이 다 탄산수 2리터 원샷하는 기분인데 독서노트에 줄도 많이 쳤다. 좋았던 내용은 다 읊을 수는 없고.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올해는 영어에 대한 콘텐츠를 나도 써볼까 싶은 생각도 든다. 큰 도움될 내용은 아니지만 어떻게 공부했고, 뭐가 도움됐는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실효성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살면서 업에 적당히 활용하고, 시험을 때우는 데 나쁘지 않을 수준으로 공부하는 방법(?).
요즘은 조기 교육이 당연시되지만 난 중학교 가서 공부한다고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나도 알파벳 겨우 떼다가 중학교 가서 공부했고. 좋은 교육자와 학습 자료를 만나고 좋은 계기가 있으면 2년 안에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후천적 노력으로 계속 공부를 이어가면 평생 자산이 될 수 있고. 영어를 재미있게 공부하기 좋은 시기가 중학교 시절이라고 본다. 그때 가장 다양한 콘텐츠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가면 입시 영어를 해야 하니까. 요즘은 다른지 모르겠지만.
사진=픽사베이근데 그런 글을 쓸만한 자격이 되려면 시험 점수가 있어야겠다. 시험 안 친지 오래됐고 요즘은 난이도가 높아져서 좀 긴장되지만. 계속 공부해서 개선하면 괜찮아지겠지. 갑자기 작아지는 자신을 느끼는데- 이렇게 올해 또 다른 목표(?)를 세워본다. 영어 시험은 원래 치려고 했다만. 영어를 주제로 글을 쓰는 게 갑툭튀한 내 새로운 목표(?). 라떼향 풍부한 내용이 되겠지만 나도 영어공부에 있어서는 내 서사가 있기 때문에 할 말이 생각보다 많은 주제다.
원래는 영어 공부 목적을 글로 풀어내려 했는데- 다른 이야기하다가 벌써 내용이 방대해져서 그건 다음에 풀어야겠다. 조만간 영어 공부 매거진(?)을 만들어야겠다. 난 K-영어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만의 K-영어 서사를 트위터식으로 썰을 풀지. 뭐든 근본 없이 하던 사람이라서 역시나 여기에도 베스트 프랙티스 따위는 없을 듯하다. 또 영어 잘하는 사람은 차고 넘쳤기 때문에 함부로 아는 척해서도 안 된다. 실력에 비해 시험 점수는 괜찮았던 어떤 인간의 얄팍한 영어 단상. '주의 : 절대 배우지 마시오'. 역시 딴짓할 때가 제일 재미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