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비디오 서비스 폐업기 콘텐츠 회고
콘텐츠 작업 과정과 폐업기 단상
사진=픽사베이오랜만에 사업 내용을 중심으로 콘텐츠 작업을 했다. 평소 쓰는 기술 콘텐츠와 다르다. 숏폼 비디오 서비스 '퀴비' 폐업기. 사업 분석 콘텐츠는 기자였을 때 많이 썼지만- 이 콘텐츠는 그때 쓰던 글, 평소 쓰는 글과 형식이 달랐다. 텍스트 콘텐츠이지만 아티클은 아니다. 보고서에 가깝다. 주제는 내가 정하지 않았다. 지인에게서 조사를 의뢰받았다. 용도는 한 가지만 아니었고 여러 분야에 활용하려는 목적이었다. 그중 하나는 지인이 운영하는 콘텐츠 구독 서비스에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로도 테스트해보는 것.
글을 쓸 때 늘 사전 조사를 하기 때문에 '리서치' 자체가 낯선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이걸 활용해서 완결된 구조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점이 큰 차이. 이는 어디까지나 '리서치'에 목적을 둔 콘텐츠 작업이었다. 신선했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 물론 납품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신경은 많이 쓰였다. 이런 작업을 해본 적은 별로 없으니까. 아, 아예 없지는 않다. 수습기자 시절 선배 기사를 같이 취재한 게 그나마 비슷한 듯. 이번 작업은 내 이름을 실어준다는 점에서 수습기자 시절 그 경험과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퀴비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숏폼 비디오 서비스이고, 콘텐츠 분량만큼 역사도 짧았다. 지난해 4월 출시돼서 10월 폐업 소식이 나왔다. 서비스 출시 전부터 유명 투자자에게서 거액 자금을 조달했고, 창업 멤버들도 어벤저스급이라서 기대가 컸다. 드림웍스 아버지인 제프리 캣젠버그와 IT 업계 거물인 메그 위트만이 바로 그 멤버. 퀴비는 요즘 트렌드인 숏폼 비디오를 선보이는데- 틱톡이나 스냅챗에서 보는 짧은 영상과 달리 유명 배우, 제작진까지 끌어들이며 콘텐츠 제작에 크게 투자했다. 스마트폰의 HBO가 되길 바라는 듯했다나.
출처=퀴비 공식 블로그앱스토어에서 인기 앱 순위권에도 올랐는데 생각보다 거품이 빨리 꺼졌다. 코로나 19가 미국을 덮치고 난 뒤에 출시됐기도 하고, 이 회사는 짧은 콘텐츠로 이동 중 시청 수요를 겨냥했는데 모두가 집안에 묶여 있으니. 이동하면서 숏폼 비디오를 볼 일이 별로 없다는 평가도 있었다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일반인들이 콘텐츠를 만들어 구전효과를 일으키는 틱톡 열풍 배경을 설명할 방도가 없으니. 퀴비가 실패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코로나 19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게 핑계라는 시각도 있고.
작년에 다른 콘텐츠 서비스에도 폐업 기업 두 곳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는데- 한 기업이 그랬다. 기술도 정교하지 않았고, 업무 자동화보다 사실상 사람 손에 의지했고, 사용자 사이에서 부실 논란이 컸다. 그들은 피봇을 시도하다 결국 폐업했는데- 코로나 19를 폐업 이유로 언급했지만 전부터 그 서비스 문제점을 경험한 사용자들은 코웃음 쳤다. 애초 핵심 기능에 문제가 있었는데 코로나 19 등 뒤에 숨는다고. 퀴비도 콘텐츠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시각이 있다. 제작 마인드 문제점도. 그 서비스가 잘 안된 이유를 꼽자면 열 손가락도 모자란다.
작업 과정은 이렇다. 개요 작성-자료조사 겸 초고 작성-퇴고 1 겸 사실관계 확인-퇴고 2-마무리. 본격적인 자료 조사 전에 개략적인 개요를 짰다. 이는 자료조사를 위한 개요인데- 내가 만들 콘텐츠에 어떤 내용이 필요한지를 덩어리 항목으로 분류한다. 이 작업에서는 퀴비 탄생과정, 취지, 운영방식, 실패 원인 등으로 개요를 나눴다. 그다음, 이 개요를 더 세분화했다. 서비스 내용, 창업자와 투자자 소개, 폐업 소식, 폐업 이유, 폐업 이후 행보, 교훈 등. 콘텐츠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이 더 있어서 이를 개요에 추가했다.
사진=픽사베이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개요는 더 세분화됐다. 예를 들어, 폐업 이유는 회사에서 생각한 이유가 있고 외부에서 지적하는 문제가 따로 있다. 이를 구분했다. 퀴비 관계자 인터뷰도 좀 있어서 그건 별도 항목을 만들었다. 서비스 내용도 그 안에서 항목을 자세히 구분해야 했다. 구독 서비스이니까 서비스 모델이 어떻게 나뉘는지도 세분화해야 하고, 어떤 콘텐츠가 있었는지도 담아야 했다. 퀴비가 망했다고 해도 좋은 평가를 받은 콘텐츠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표시해야 하고. 이름 어원, 핵심 기능, 취지, 구독자 수 등 여러 가지.
창업자와 투자자 소개도 구체화했는데- 창업자는 대략적인 주요 프로필을 담았다. 특이사항이 이력에 있으면 그것도 넣고. 투자자는 이름만 담았고. 물론 투자금액도 여기에 포함했다. 폐업 소식은 언론 보도와 퀴비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공동 창업자 변을 참조했다. 전문을 정리하지는 않고 필요한 내용만 담았다. 회사가 말하는 폐업 이유도 여기에서 참조해서 정리했는데- 이유가 여러 가지인 만큼 번호를 매겨서 정리했다. 외부에서 지적하는 퀴비 문제점과 폐업 이유는 굉장히 많아서 항목을 10개 가까이 나눠서 분류해 내용을 추렸다.
폐업 이후 행보도 세분화가 필요했다. 다른 기업에 콘텐츠 배포권을 넘겼기 때문에- 어디에 넘겼고,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담았다. TMI일 수 있지만 배포권을 넘겨받은 기업 분석도 약간이나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서비스 콘텐츠 배포권을 획득했는지, 뭘 하려고 하는지. 이 기업 현황은 어떤지도. 그런 내용을 세분화해서 담았다. 교훈은 어느 경영학 교수 기고를 참고했는데 이미 세 가지 교훈으로 나눠서 그가 글을 쓴지라 세분화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사진=픽사베이미리 개요를 짜 놓았던 터라 조사 내용은 조사 즉시 바로 해당 항목 아래에 정리했다. '~음/슴'체로 글을 썼다. 초벌로 정리한 뒤에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면서 문장을 다듬었다. 불필요한 내용은 지우고. 편집도 같이 했다. 이 과정에서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을 더 추가하고. 참고자료 목록도 같이 정리했다. 참고자료에는 해당 자료 작성자 이름, 콘텐츠 제목, 실린 플랫폼, 날짜, URL을 꼭 넣는다. 평소 기술 콘텐츠 쓸 때도 마찬가지. 이게 참고자료를 인용할 때 올바른 표기법이라고 알고 있어서 그 형식을 디지털 텍스트 작업에 활용한다.
그다음, 또 한 번 퇴고하면서 맞춤법 오류나 일관되지 않은 편집을 다듬었다. 그렇게 작업을 마쳤고 이메일로 보냈다. 담당자는 콘텐츠를 노션에 대신 옮겨줬다. 노션 형식에 맞춰서 콘텐츠를 편집했다. 노션으로 텍스트 작업하는 거 처음인데 편집이 예뻤다. 많이 고생하셨을 듯. 난 노션에 올라온 콘텐츠를 마지막으로 살펴보면서 오탈자나 참고 링크가 잘 연결되는지 등을 재확인했다. 확인을 마친 뒤, 담당자가 구독자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공개했다. 다음 달 서비스 안내와 더불어 신규 콘텐츠 안내 이메일을 구독자에게 발송했다.
참고자료는 약 30개였으며, 링크드인과 인수 기업 IR, 사업보고서, 보도자료, 퀴비 공식 블로그 등을 제외하면 다 외신이었다. 외신은 CNN, 비즈니스 인사이더, 쿼츠, AP, BBC, 포브스, USA투데이, 월스트리트 저널, 디인포메이션, 워싱턴포스트, 블룸버그 등을 참조했다. BBC에서는 퀴비 관계자 인터뷰를, 포브스에서는 경영학 교수가 기고한 이번 사태 교훈 등을 발췌했다. 링크드인에서는 두 창업자 프로필을 조사했고. 인수 기업 IR과 사업보고서, 보도자료는 퀴비 콘텐츠 배포권 확보 취지와 운영방향 등을 참고하는 데 활용했다.
사진=픽사베이작업 과정에서 느낀 점은- 첫째, 앞서 언급했듯 이런 유형의 콘텐츠 작업은 처음이라 난 신선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물론 '어떻게 하면 좋지?'라는 고민도 많이 들었다. 우선 콘텐츠를 보내고 부족한 게 있으면 피드백받아서 보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지인과의 작업이다 보니 '잘하고 싶다'는 부담이 있었다. 지인과의 작업이 아니라도 콘텐츠를 납품하는 건 늘 부담이지만- 상대방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의뢰인이 고마울 정도로 많이 배려를 해줬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 '꼭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게 들었다.
셋째, 자료 압박이 있었다. 이미 퀴비 기사와 분석글이 너무 많이 나왔다. 자료가 차고도 넘쳤다. 자료에 깔려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 정도로. 그래도 자료가 없는 것보다 낫다. 취사선택하면 되니까- 대신 잘 골라야 했다. 그 말은 판단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다. 쓸만한 내용, 의미 있는 내용, 내게 필요한 내용이 있는 자료를 진흙 속에 진주 찾듯 골라야 했다. 내가 찾은 모든 자료를 다 보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뭘 보고, 뭘 안 볼지도 잘 판단해야 하고. 무조건 많은 자료를 보는 게 아니라 쓸만한 자료를 정리하는 게 중요하니까.
넷째, 내용 차별화가 고민됐다. 앞서 언급했듯 이미 많은 자료가 있기 때문에- 기사도 많다. 이 콘텐츠 활용 분야는 여러 가지이지만- 쓸만한 콘텐츠가 되려면 기존 콘텐츠에서 주지 못한 통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티클이 아니라 리서치더라도 말이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내용만 있으면 곤란했다. 국내 보도를 보면서 그동안 보도 방향을 짚고, 차별화할 수 있는 내용은 뭔지 계속 고민했다. 그걸 담으려고 애썼는데 보는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흥미롭지만 '이렇게 정리해도 될까' 자문도 많이 했다.
내 콘텐츠 형식과 다르지만 노션 블로그 템플릿. 사진=노션다섯째, '이미지를 좀 더 넣을걸'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텍스트만 너무 담아서. '지금이라도 넣을 수 있는데 넣을까?' 싶기도 하고. 여섯째, 텍스트 편집 도구로 노션이 되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목이 여러 개 있으면 해당 항목만 따로 보고 싶은데 스크롤을 너무 많이 해야 해 불편한 경우가 있다. 난 주로 장문을 쓰니까. A4용지 글자 포인트 10으로 10쪽 내외로 쓰는데- 노션에서는 특정 항목을 누르면 그 항목으로 바로 이동해서 내용을 볼 수 있어 편리했다.
이 작업은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데- 앞서 말했듯 처음 해보는 시도라서 그렇다. 일단 테스트하는 거라 실험적인 작업이라는 느낌도 들고. 이런 콘텐츠도 누군가에게 유용할 수 있을까, 안착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역시 일상의 설렘이나 기대감은 평소 하지 않은 시도를 할 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늘 하던 것만 해선 안되고. 평소 안 해보던 걸 종종 실험해야 하는 듯. 만나는 사람도, 듣고 읽는 콘텐츠도, 쓰는 글도. 새로운 걸 해본 데 만족한다. 누군가에게 유의미했으면 좋겠고. 나도 하던 것만 하면 안 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진=픽사베이끝으로 숏폼 콘텐츠 단상을 좀 더 이야기한다면- 난 콘텐츠 전문가는 아니라서 깊이 있는 통찰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퀴비 사례가 보여주듯- 숏폼 콘텐츠라고, 제작 비용과 마케팅 비용을 마구 떼려 넣은 콘텐츠라고 반드시 승산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콘텐츠도 TPO에 따라 적합한 양식이 있고. 숏폼 콘텐츠라고 단순히 분량만 짧게 해서 될 게 아니라 그 안에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시리즈라면 다음 내용에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야 하고. 콘텐츠가 고급지다고 인기 있는 건 아니고. 스타가 나온다고 흥행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숏폼 콘텐츠와 별도로 중요한 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교만을 주의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이걸 오래 해왔기 때문에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확신 때문에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내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짜고 이렇게 될 거라고 강하게 확신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가설은 여러 개를 짜는 게 좋고- 하나가 안 맞으면 다른 걸 테스트해보는 게 낫다 싶다. '내가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뭘 모르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알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이번 조사과정에서 실감했다. 너무 물량 공세로 임하지도 말고, 잘 안 된다고 너무 빨리 포기하지도 말고. 퀴비는 좀 더 시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