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2024년 새해 1월 첫째주를 보냈다. 그날 초저녁까지만 해도 일상이 그럭저럭 무난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러나 저녁 이후로 상태가 급변했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여파는 지금도 있다. 목요일에는 너무 괴로웠고, 그 이후로도 어렵지만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두렵다. 공개된 페이지에 이런 마음을 쓰는 것도. 힘든 걸 내색하면 얕잡아볼 수도 있으니까. 그게 두려우면 뭐하러 여기에 이런 심경을 남기나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말이다.
괴로운 심경을 너머 주말에도 끊이지 않는 수습에 만성적인 피로 상태에 빠졌다. 하루종일 수습하는 데 시간을 보내다 이러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저녁에 잠시 바람을 쐬고 왔다. 잠시는 아니다. 3시간은 밖에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롯데마트 양평점에 갔다. 이제는 너무 멀어진 그곳. 최근에 흑고무나무를 너무 사고 싶었는데 오프라인으로 가까운 데서 판매 매장을 찾지 못했다. 지난주에 양평점 페이지그린에 전화로 문의하긴 했다 근데 거기에는 흑고무나무가 없다고 했다. 4년 여 전에는 있었는데. 아쉬웠다.
요즘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온오프라인으로든 식물을 사서 안전하게 데려오려면 신경쓰이는 게 많다. 선뜻 부쳐주지 않으려는 곳도 있는 듯하고. 오프라인으로 사더라도 운반할 때든, 집에 와서든 따뜻한 곳에 잘 보관해둬야 한다. 봄이 돼야 대형마트 일반 점포에서도 식물을 판매하고, 구매 접근성도 더 좋아지는 듯하다. 그때까지 기다려볼까 했는데- 최근 일을 겪고 나서 빨리 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주말에 든 생각은- 흑고무나무가 아니라도 괜찮다. 그냥 식물이면, 화분이면 뭐든 좋다. 그런 마음이었다.
원래 오래 키우든 스파티필름이 있었다. 4년 여전에 페이지그린에서 3000원 주고 구매한 화분이었다. 알아서 잘 자라서 큰 화분에 분갈이도 해줬다. 둘 중 하나는 오랫동안 집을 비운 뒤로 말라서 세상을 떠났고, 나머지 하나도 역시 오래 집을 비우면서 말라 비틀어졌다. 그나마 살아있는 작은 잎만 건졌는데 요즘 날이 추워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 항상 실내에만 뒀던 화분인데 혹시 찬바람을 맞아서 그리 된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화분에 담긴 토분에 양분도 부족했을 듯했다.
아무래도 소생하기 힘들어 보여서 마음이 착잡하고, 버겁고, 힘든 가운데 새로운 식물로 작게나마 위로를 받고 싶었다. 차분하게 식물과 화분을 구경할 수 있는 상업용 공간이 생각보다 드물다. 그날따라 페이지그린 생각이 간절했는데 저녁이 돼서야 그날 첫 끼니를 먹고 눈발을 맞으며 집을 나섰다. 1시간 가까이 지나 양평점에 도착했는데 가는 길이 그대로라서 반갑고 놀라웠다. 이사 가기 전에는 가끔씩 가던 곳. 어떨 때는 산책 삼아 안양천 따라 1시간 가까이 걸어서 가기도 하고.
롯데마트 양평점은 기자 시절 오픈할 때 취재갔던 곳이라 정감이 간다. 아기 백일 잔치, 돌 잔치 참석하고, 그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벌써 6년이 훌쩍 넘었는데 다시 봐도 매장을 잘 만들고 구성했다. 도심 속 정원 느낌이 물씬 나게. 1층에는 푸드 코트가 있는데도 피아노도 있고, 큼직한 화분도 많아서 온실에 들어온 기분도 든다. 휴게 공간도 많고. 최근 몇년동안 문닫은 대형마트도 많은데 이 점포는 6년이 지난 지금도 명맥을 유지해 다행이고 반가웠다.
더 반가운 건 페이지그린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안 간지 참 오래됐다. 한때 평일 저녁에 어쩌다 일찍 퇴근하면 거기 가서 식물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식물은 사오거나, 화분을 사거나, 분갈이를 하거나, 그냥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는 오가다가 옆에 있어서 차를 사마시고 찹쌀떡을 사먹으면서 쉬는 재미가 쏠쏠했다. 작은 화분이 쑥쑥 자라 큰 화분에 분갈이 할 때면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화분을 들고 버스 타고 마트 가던 길이 설레고 기대되기도 했고.
예전 취재원분이 소개해주셔서 이 매장을 알게 됐는데 매장이 참 좋았다. 여기도 식물 전문 매장이다보니 들어서는 순간 온실 또는 수목원에 온 느낌이 든다. 화분이 엄청 많고. 꽃도 팔지만 푸릇푸릇한 관엽식물이 주를 이뤄서 그런지 공간 자체가 초록 일색이다. 그래서 숲에 들어온 느낌도 들고, 그 공간을 누비기만 해도 머리와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고, 도심에서 자연 친화적으로 쉼을 만끽하는 듯도 하다. 그래서 그 공간이 좋았다. 매장이 별로 없어서 가려면 이렇게 긴 시간 발품을 팔아야 한다. 다른 곳도 있으면 좋을텐데.
여러가지 이유로 바쁜 주말이라 어디 바람을 쐬거나 놀러갈 짬을 낼 수도 없었는데 단지 페이지그린에 가서 오랜만에 그 공간을 누비고, 느끼면서 비로소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쉬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식물을 실컷 구경하고,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걸 물어보고 직원 분의 답변을 경청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좋았다. 예전에 여기서 화분을 몇개 샀고, 가끔씩 왔다고 말씀드렸다. 지금 거주지 위치를 말하며 거기서 여기 방문을 목적으로 왔다고 하니 굉장히 놀라워 하셨다.
산책하는 느낌으로 페이지그린 곳곳을 다녔다. 화분 2개와 마사토, 흙도 샀다. 화분은 스파티필름과 멜라니 고무나무. 멜라니 고무나무는 흑고무나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잎이 더 작다. 흑고무나무는 잎이 크고, 색은 검붉다. 잘 닦아줘야겠지만 번쩍번쩍 윤기가 좔좔 흐르고, 검붉은 색 때문인지 세련되고 멋있으며, 고급져 보이기도 하다. 큰 잎도 웅장한 멋이 있고. 예전에 식물 집사인 취재원 분이 공기정화식물로 스파티필름과 흑고무나무를 추천해주셔서 스파티필름만 먼저 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흑고무나무의 매력에 눈을 더 뜨게 됐다.
꿩 대신 닭이기도 하지만 멜라니 고무나무는 책상에 올려두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책상에 두면 햇볕도 볼 수 있을 테고. 공기도 정화되고, 기분 전환에도 간간히 도움이 될 듯했다. 번식을 너무 잘한다고 해서 후처리가 좀 염려되지만. 잘 나눠서 주변에 분양도 좀 해볼까 싶다. 나중에 잎을 잘라서 물꽂이하면 그걸 사무실에 두는 것도 괜찮을 듯하고. 화분 두개와 마사토와 흙까지 들고 오려니 무거웠지만 간만에 마음을 잠깐이나마 쉴 수 있고 머리를 잠시 비울 수 있어 좋았다. 식물 쇼핑템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오는 길도 뿌듯했고.
멀리서 왔다고 식물 영양제도 서비스로 받았다. 이제부터 집까지 어떻게 갈 거냐는 직원분 말씀에 "열심히 가봐야죠"라고 답했다. 왕복으로 이동하는 동안 주중에 못다 읽은 책을 마저 읽고 오랜만에 음악도 들어봤다. 내 오랜만의 기준은 생각보다 짧을 수 있지만. 대단한 이벤트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대상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신나며, 감사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잠시나마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고. 해야할 일에 부담이 많지만 그냥 그날만큼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새로 분양한 식물을 두고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아직 분갈이를 못해서 스파티필름부터 분갈이하려고 한다. 멜라니 고무나무는 겉흙이 딱딱한 듯해서 일단 물부터 조금 주고, 역시 더 큰 화분에 옮겨야 한다. 흑고무나무를 아직 포기하지 않아서 멀지 않은 시일 내로 분양하고 싶다. 일상이 여유롭지 않지만 그 언젠가 식물로 위안을 얻고 힘을 받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고작 가끔씩 물 주고, 영양제 꽂아두는 게 내 보살핌의 전부였지만 그렇게 식물 안위를 챙기며 일상의 감각을 느끼고 좁은 곳에서 숨쉬고 마음이 안식했던 그때 그 시절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마음을 쏟는 일은 다양하지만- 지난 연말에 누군가와 식물 이야기를 나눌 때, 나도 모르게 내가 기분이 너무 업되고, 신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내가 정말 식물을 좋아하긴 좋아하나 보다'라고 깨달았다. 아는 지식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 년읊 식물과 함께 살아가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았다. 그 지식이 어떨 때는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스파티필름이 1~2년에 한번 꼴로 꿀꽈배기 모양의 흰 꽃을 피우는 걸 보고 얼마나 감동했던지. 그 순간이 내게 허락됐음에 감사하다. 살아갈 힘, 버티는 힘을 여기서 다시 찾고 싶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