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미래를 살고 있다. 2024년 1월 1일이 내겐 그런 날이다. 매년 내가 생각지 못한 모습으로,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측하지 못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2024년 1월 1일 내 일상도 불과 1년 전만 해도 가늠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생각지도 않은 먼 미래를 살고 있는 나.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은데 돌이켜보면 큰 사고 없이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데 감사하다. 한 살 더 먹은 나이에 부담이 없지 않으나 그저 연륜에 걸맞게 성숙해지길 바라고, 노력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싶다.
이 글의 발행일은 1월 1일이지만 실은 난 1월 2일 새벽 4시에 이 글을 끼적이고 있다. 종무식 이후 휴무 기간을 거쳐 새해 첫 출근을 앞둔 새벽. 잠은 쉽사리 오지 않고 출근 이후 해내야 할 업무 부담이 있다. 당장은 시무식에서 수행할 활동도 염려되고, 새해 첫 업무도 역시 신경이 쓰인다. 배포를 앞두고 있는데다 휴무 기간에 업무를 조금씩 보기는 했지만 출근한 뒤에 마무리해야 할 일도 있고, 배포 전까지 시간을 잘 확보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셈도 해보고 이번 주 할 일, 다음 주 할 일, 이번 달 할 일을 정리하다보니 이 시간이 됐다.
새해 첫 날은 다음 날 출근을, 새해 첫 업무를 준비하며 스스로를 재정비하고 재장전하는 날이었다. 떡국은 구정 때 먹기로 하고, 부대찌개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주말이나 휴가 때가 아니면 손수 내려마시기 힘든 학림다방 원두를 수동으로 갈아 마시고, 붕어빵도 구워먹었다. QT 책을 미리 사지 못해서 서점에 들러 구입했다. 정초라서 그런지, 지식과 정보를 탐구하며 체계적으로 새해를 준비하려는 사람들로(뇌피셜이지만) 서점은 북적였다. 사고 싶은 달력이 서점에도 있었는데 온라인 서점 판매가가 더 낮아서 내려놓았다.
서점에서 언니와 통화한 다음, 발걸음을 석촌호수로 옮겼다. 바로 석촌호수에 간 건 아니고, 롯데월드몰을 거쳐갈 수밖에 없어서 지하로 방문했다. 정초라서 그런지 지하철 상가도, 몰도 휴무인 가게가 많았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혹시 내가 찾는 달력이 있나 궁금해서 들렀는데 없었다. 다시 몰로 돌아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에 올라갔다.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을 무심히 지나쳐 밖으로 나왔다. 베르테르 가든은 아직 연말 분위기를 자아내는 금빛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난 타워를 배경삼아 가든 사진을 찍었다.
가든 근처에는 회전목마도 생겼다. 겨울에만 한시적으로 운행하는 모양인데 유원지 분위기도 나고 좋아보였다. 난 회전목마를 좋아한다. 타는 것보다 보는 걸 더 좋아하는데 일단 화려하고, 밤에 조명이 켜졌을 때 아름답고, 어릴 적 동심을 떠올리게 해서 마음에 든다. 여러 놀이기구 가운데 회전목마에는 어딘가 낭만적인 구석도 있다. 생각해보니 뮤지컬 '쇼맨'에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무대가 유원지로 바뀌면서 천장에서 번쩍이는 뭔가가 내려오고 회전목마를 연출하던 모습이었는데- 혼자 유원지에 가도 회전목마를 보면 덜 쓸쓸한 느낌도 든다.
이동하는 동안에는 동영상 강의를 스트리밍 서비스 삼아 들었다. 앉아서 볼 짬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오디오처럼 들었는데 어제 오늘 그러고 있다. 그러다 듣똑라 팟캐스트를 몰아서 들었는데 '휴가기간에도 내가 포모 증후군에 빠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를 내려놓고 마냥 쉬기만 할 상황이 아니기도 했지만 너무 푹 쉬었다가 일에 감각이 떨어지고, 긴장감이 부족해지고, 복귀했을 때 업무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까봐 노파심도 생겼다. 교육과 훈련의 부담도 있어서 동영상 강의를 좀 봐야겠다 싶었는데 구색 맞추기도 같기도 하고.
듣똑라 팟캐스트를 몰아 들으면서 한동안 무심했던 사회, 경제 현안을 되돌아봤다. 이런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플랫폼이 이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쉬웠다. 듣똑라를 처음 들은 게 언제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만큼 많이 익숙했던 채널이었다. 팟캐스트를 많이 듣지는 않지만 한때 김현정의 뉴스쇼와 더불어 꼭 챙겨듣는 콘텐츠였는데 한동안은 밀린 콘텐츠를 몰아서 듣겠지만 더이상 새 콘텐츠가 올라오지 않으면 많이 서운할 것 같다. 출연진도 다 좋았는데- 언젠가 좋은 기회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석촌호수를 짧게 돌아보고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오늘 나의 작업실인 카페파스쿠찌 소마미술관점에 가려고 했다. 역시나 이 매장은 오늘도 사람들이 많았지만 운좋게 창가 옆에 자리가 생겨 앉았다. 오늘의 독서 할당량을 채우고, 이나모리 가즈오의 '마지막 수업'을 완독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달력을 구매하고, 휴대전화 케이스와 강화유리를 새로 구입했다. 케이스는 투명해서 그런지 곧잘 더러워지고, 강화유리는 1년 반 정도 썼더니 금도 가고 기스도 나서 바꾸기로 했다.
릴리즈 노트를 곧 발행해야 해서 후속 작업을 거쳤다. 원래는 기능 4가지만 담으려 했는데 메인 기능 업데이트는 5가지라서 나머지 하나를 더 추가했다. 생각해보면 난이도에 따라서 어떨 때는 초고를 빨리 쓸 수도 있는데- 편집이 생각보다 좀 걸린다. 작성 매뉴얼이 있고, 하이퍼링크도 걸어야 하고, 중간 제목도 수정하고, 메타 데이터도 채우고, 캡션도 쓰고. 이런 편집 작업에 생각보다 시간이 들어간다. 회사에서 쓰는 용어, 업계에서 쓰는 용어와 싱크가 맞는지도 점검하고. 이 시간도 더 단축해야 한다.
영상 원고도 우선 초고부터 쓰는데 영상은 영상대로 문법이 있어서 원고도 좀 더 사람 입말에 맞춰 쓰고, 편집하려고 한다. 이 시간도 이제 더 줄여야 하는데- 확실히 블로그 버전으로 쓸 때와 이걸 누가 읽고 말하고, 누군가는 이걸 귀로 듣는다고 생각할 때는 글 구성도, 어미도 많이 달라진다. 영상 원고는 좀 줄여서 쓰다보니 불필요한 내용을 빼기 더 수월하기도 하다만. 말하는 사람이 이걸 읽을 때 편해야 하기에 여러가지 고민하며 쓰고 수정한다. 이것저것 점검할 일이 많아서 우선 초고만 썼고, 출근한 뒤에 더 수정하려고 한다.
귀가해서 새해 첫 뉴스레터 초고도 작업하는데 우선 기초적으로 들어갈 내용만 먼저 채워넣었다. 기존에 준비된 내용을 추가하고 좀 다듬으면 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메시지는 좀 숙고해서 써야 한다. 신경을 더 써야 할 이유는 여러가지다. 새해 첫 뉴스레터라는 점, 기고자의 작성 의도와 글의 핵심 내용을 잘 추려서 가독성 좋게 전달해야 한다는 점, 매번 조금씩 더 개선하고 나아진 콘텐츠를 선보여야 한다는 점, 편집자 역할을 맡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부담이 더 들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것도 출근 이후에 더 시간을 써서 수정해야 한다.
이어서 1월 기술블로그 콘텐츠 아이템을 조사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평소 생각해둔 아이템도 있고, 구상했다가 까먹은 아이템도 있을지도 모르겠고, G사 블로그를 보면서 주의깊게 봐야 할 주제, 사용자나 회사에 도움이 될만한 주제, 콘텐츠 마케팅 목적에 맞게 개량하거나 비틀어서 쓸만한 주제 등을 살펴보고 정리했다. 이밖에도 더 조사해야 할 내용이 있는데 양이 방대해서 출근 이후에 분산해서 진행하려고 한다. 그러고 잠시 쉬다가 시무식 활동과 관련된 자료를 보며 내가 해야 할 일, 세워야 할 계획을 좀 생각했다. 업무 계획을 정리하고,
간만에 휴무 기간을 마무리하기 아쉬워선지 새해 첫 날 기록을 뭐라도 남기고 싶어선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새해에는 지난 2년 반 시간보다 더 성실히 기록해보려고 한다. 연말부터 조금씩 시도하고 있는데 잘 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하고 있다. 이런 글은 업무용 글쓰기보다 부담을 조금 덜 갖고 쓸 수 있으니까. 작년에는 비공개로 생산성 도구에 기록을 남겼다. 그 도구에 쓰는 것도 좋지만 습관을 형성하기에는 공개 플랫폼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냥 이 공간에서 나름 많은 글을 썼기에 살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새해 첫날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