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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정벌레 Jan 13. 2024

밥벌이로 글쓰는 어느 하루 이야기

적막 속에 몰입할 때 오는 평안

주말이 순삭되다시피 후다닥 지나갔다. 주말이란 언제나 그런 법이지만 이번 주말은 유독 그랬다. 주말에도 업무를 보는 편이다. 일요일은 원래 다음 날 출근을 준비하는 날이니까. 그래도 그때그때 쓰는 시간은 달랐는데 지난해 11월부터 쭉 적지 않은 시간동안 주말에도 일을 보고 있다. 그래도 보통 토요일은 쉬었다. 그러지 않으면 도무지 충전하거나 힘을 낼 수 없으니까. 이번 주말에는 토, 일요일 둘다 일했다. 어쩔 수 없었다. 다음 주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주말 이틀 둘다 업무를 보지 않으면 안됐다.

이제 배포 일정이 잦아져서 긴 호흡으로 쓰는 글은 거의 상시로 리뷰, 배포 준비를 한다. 이전에는 특정 마감일을 앞두고 작업이 몰렸다. 요즘은 그 일정이 분산됐다. 시스템이 바뀐지 얼마되지 않았고, 변경된 업무 방식에 계속 적응하는 중이다. 이 시스템의 효과나 순항 여부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분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아직 궤도에 본격적으로 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 일은 일종의 소프트 랜딩을 위한 보험 처리를 주로 했고. 앞으로도 가끔씩 보험성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작업하는 콘텐츠가 한가지 유형만 있지는 않기에- 여러 콘텐츠 작업을 하다보면 배포 일정이 몰릴 때가 있다. 특히 제작, 배포 일정이 몰릴 때 많이 긴장되고 걱정도 많이 된다. 다른 사람 글을 리뷰하는 것도 늘 부담이지만 내 글을 작성하는 것도 부담이 많이 된다. 남의 글을 피드백하는 입장이다보니 내 콘텐츠 품질은 특히 좋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내 글을 잘 써야 다른 사람 글을 리뷰하는 명분도 서고, 내 말에 힘도 실릴 테니까. 이와 별개로 단순히 내 콘텐츠이기에 애착도, 책임감도 클 수밖에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작성하는 콘텐츠라서 특히 소중하게 느끼는 까닭도 있다. 그런 마음이 결국 부담으로 이어진다.

리뷰 업무가 주를 이루면서 내 글은 언제나 틈을 내거나 시간에 쫓기며 후다닥 쓰고 급하게 완성할 때가 많았다. 기자일 때는 내 글만 잘 쓰면 됐다. 나도 데스크에게서 리뷰받는 입장이다보니 내 것만 잘해도 그게 조직에 기여하는 일이었다.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조직의 기술 콘텐츠를 관리하기에 나만 잘해서 될 게 아니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다른 멤버들과 함께 잘해야 한다. 같이 잘하는 게 내 일이고, 내가 잘해야 할 일이다. 콘텐츠도 제작부터 배포까지 라이프사이클이 있는데 그걸 조직 단위로 챙기는 게 일이라 내 글만 잘 쓴다고 다가 아니다.

바쁘게 일을 처리하다보니 내 글도- 예전에는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작업했지만 조직 생활을 할 때는 과거 내 글만 잘쓰면 되던 시절처럼 정밀하고 치밀하게 공을 들이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 글을 리뷰하는 데도 공수가 많이 들어가고, 다른 사람의 글이라기보다 조직의 글이고 콘텐츠니까 내가 쓴 글이라고 허투루 볼 수 없고, 내 글처럼 생각하고 정성들여 리뷰해야 했다. 내 생각은 그랬다. 그래야 더 좋은 결과물로 개선할 수도 있고, 리뷰어로서 내 신뢰도 쌓을 수 있을 테니까. 내 일이니까 리뷰도 잘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런 업무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적응했다. 어느날 누가 내게 리뷰가 좋은지, 제작이 좋은지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둘다 내 업무라서 뭐가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렵고, 둘다 잘하고 싶고, 리뷰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그것도 뿌듯하다고 답했다. 그런 마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러 상황을 경험하면서 내 마음이 꼭 그렇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리뷰와 제작 중에 뭐가 더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내 글을 항상 빠듯하게 시간에 쫓기며, 시간을 쪼개며 쓰기만 하기보다 시간적 여유를 길게 갖고 몰입해서 쓰고 싶은 마음을 발견했다.

주말 이틀 내내 업무를 본 이유는 그런 마음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내 글을 써서 배포해야 하는데- 하루라도 시간을 더 써서 긴 호흡으로 여유있게 몰입하고 숙고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공을 들이고, 치밀하고 꼼꼼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해 고품질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업무 특성상 써야 하는 글을 쓸 때가 많은데- 물론 써야 하는 글을 쓰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대체로 좋아한다. 몰랐던 걸 알게 되고, 글쓰는 것만큼 확실한 학습방법도 드물다고 생각하기에 써야 하는 글을 쓰는 것도 내겐 성장의 디딤돌이라 귀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써야 하는 글을 쓰는 것과 쓰고 싶은 글을 쓸 때는 마음의 결도, 작업과정도 좀 다르다. 단독 거리 또는 보도자료가 아닌 취재 기사 배포를 준비할 때 마음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취재 기사도 써야 해서 쓰는 기사도 있지만 보통 당사자가 기획하고 구성해서 쓰니까. '이 내용이 중요하다, 꼭 필요하다, 알리고 싶다, 쓰고 싶다'와 같은 마음이 그때 든다. 직무는 달라졌지만 지금 업무를 위해 쓰는 글 가운데에도 이와 비슷한 글이 있다. 그런 글을 쓸 때는 원해서 택한 주제라서 그런지 더 잘 쓰고 싶고, 준비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업무를, 또는 목표한 업무를 완성도 높게 끝내는 것도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며, 이는 권장받아야 할 활동이다. 그러나 콘텐츠는 그래도 시간을 들인 만큼, 공을 들인 만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짧은 시간에 최소한 노력을 투자해 좋은 결과물이 나오고, 성과도 괜찮을 때도 물론 있다. 그래도 시간이 비례한 노력이 더 세다고 생각한다. 콘텐츠는 시간이 지날수록 달리 보이고, A 시점에서 못 본 문제를 B 시점에서 발견하고 이를 개선할 때도 있으니까. 그게 콘텐츠 품질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고, 여력이 된다면 긴 시간을 두고 그때그때 보고 또 보면서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수정하고 개선하는 게 좋다고 본다.

시간과 더불어 노력과 정성도 당연히 필요하다. 시간이 허락되면 그 시간에 몰입해서 최선을 다해 글을 쓰고 수정해야 한다. 자료가 필요하다면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고, 여러 시각과 관점을 접하고, 내 콘텐츠 관점의 추가 기울어지지 않았는지, 그래서 깊이가 얕은 건 아닌지 점검하고 문제가 있으면 개선해야 한다. 내용의 적절성, 문장의 적절성 두루 판단해야 하고. 절대적인 시간을 얻었으면 그 시간동안 이 작업을 정성들여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최선을 다해 이 글을 썼노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주말에 쉬고 싶다면- 하루 정도는 온전히 쉬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되긴 했다. 월요일의 내가 또는 부득이하면 화요일의 내가 나머지 일을 알아서 할 수도 있으니까. 시간에 엄청 쪼들리고, 빠듯해하며, 밤잠 설쳐가며 치타 수준으로 촉박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쫓겨서 일을 하다보면 품질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고, 틈 없이 일하기에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서 결과물을 돌아볼 여력이 부족하다. 문제를 미리 발견해서 바로잡지 못할 수도 있고.

이때 '이쯤하면 됐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때 이러한 생각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아직 더 노력하고, 정성을 기울여 개선하고 바로잡아야 하는데도 '이정도만 하지'라는 생각으로 도망칠 수 있으니까. 그건 직무유기고 책임회피가 될 수 있다. 주말 이틀 내내 작업할 때는 이따금씩 그런 마음과도 싸워야 했다. 시간에 쫓겨 촉박하게 작업할 때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장인정신을 기울여 결과물을 완성할 만큼 시간을 얻었을 때는 그런 마음은 독이다.

이런 기회도 흔치 않으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내가 던질 수 있는 주사위는 모두 던져보고 싶어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끄럽거나 창피하고 싶지 않아서. 나 정말 노력과 과정에서만큼 그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만큼 열심히 하고, 스스로 떳떳하고 싶어서. 만에 하나 놓치는 문제점을 미리 발견하고 개선하고 바로 잡고 싶어서. 그래서 정말 좋은 결과물을 완성하고 싶어서. 그래서 주말 이틀동안 회사로 출근해 글을 썼다. 집에서 작업하면 늘어질 수 있고, 늦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고,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으니까.

주말동안 아무도 없는 회사에서 혼자 적막하게 몰입하며 하루에 약 5시간~7시간을 글쓰는 동안 한편으로는 평안했다. 이렇게 조용한 환경에서 온전히 글에만 집중해본 게 얼마만인지. 그 전에는 주말에 작업하면 카페가서 글쓸 때도 많았다. 카페는 음악도 많이 나오고 손님들 대화소리도 섞이고, 여기서 혼자 집중한다는 핑계로 결국 나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등 청각 측면에서 방해 요소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작업할 때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스스로 다른 소리를 찾는 일은 안 해도 된다. 그게 몰입하고, 숙고하며 글쓰는 데 더 도움이 됐다.

이런 환경 덕분에 주말에 일하는 게 마냥 억울하거나 아쉽지만 않았다. 평일에는 절대 누리기 힘든 환경이니까. 주말에 일하더라도 이렇게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 환경 속에서 적막 속에 집중하고, 몰입하며 글을 쓴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고 축복이라고. 너무도 감사한 일. 이렇게 환경이 좋으면 나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나만. 그 환경이 아깝지 않도록, 그 어떤 외적 조건을 내가 잘하지 못한 핑계거리로 삼을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온전히 조용한 환경에서 내 글만을 위한 시간을 누리고 싶었고, 그게 너무 필요했고, 드물게 그 기회를 누렸다. 감사했다.

적어도 과정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설사 결과물에 흠이 있더라도 그또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듯했다. 내가 불성실하거나 노력을 덜해서 결과물이 아쉽게 나오면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를 잘 관리하지 못한 탓이기에 많이 화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는데도 부족한 건- 어쩌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였을지도 모르기에 한편으로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생각해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게 변명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주말을 이렇게 보내는 게 마냥 유쾌한 건 아니었다. 토요일은 괜찮았지만(일요일이 있어서 그런가) 일요일은 아침부터 좀 고민됐다. 그러나 이틀동안 이렇게 일하지 않으면 월요일의 나는, 1월 셋째주의 나는 지난 주말의 나를 무척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설사 하루 쉰다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거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문제를 회피하는 게 아니라 직면하고 직접 맞닥뜨리며 문제를 풀어가는거다. 문제를 미루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것. 주일 예배에서 감사하게도 힘을 얻었고, 틈틈이 책을 읽고 동영상 강의를 보고, 팟캐스트를 듣고, 산책을 하고, 지금 이렇게 글도 쓴다. 어디 좋은 데 구경하거나 눈요기하지는 않아도. 해야할 일을 제때 하는 게 내 마음을 더 편하게 하고, 내게 기쁨을 준다. 해야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는 게 더 신나고 즐겁다.

제목에 부합하는 내용일지 모르겠다. 사실 이렇게 주말을 보내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어떤 건 여전히 고민스럽고. 간간히 발견하는, 뭘 더 알아보고 추가하는 걸 귀찮아하는 내 모습 등 조심해야 할 문제는 많다. 혹시라도 주말에 이틀동안 일한 데 만족해서 그 기간에 내가 수행한 결과물을 합리화하려 하고 문제를 회피하려는 건 아닐까 염려도 살짝 든다. 월요일에는 사무실에 많은 사람이 있는 가운데 때로는 집중력이 분산되는 상황도 경험하면서, 글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업무를 함께 수행하면서 컨텍스트 스위칭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도 그 상황을 더 의연하고 지혜롭게 여유를 갖고 대할 힘을 주말 근무로 얻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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