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정벌레 May 07. 2024

가정의 달 맞이 방문 상념

정서적으로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의 소중함

출처=딱정벌레

오랜만에 브런치 끼적임. 원래 쓰려는 주제가 있었지만 시간과 품이 더 들어가야 해 미루다가 한 달 가까이 브런치를 쓰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준비하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시작을 더디게 한다. 한 번에 완성하겠다는 한탕주의 생각도. 떠오를 때 바로 시작하고 매일 조금씩 해야 한다. 그래야 결과물이 더 빨리 나올 수 있고. 준비해야 할 일이 있고 아닌 일도 있는데 그걸 잘 구분해야 한다.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만 쓰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주제는 비교적 쉽게 쓸 수 있단 생각에. 도전적이고 많이 고민해야 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오랜 기간 고민하고 털고 싶은 생각과 묵은 마음이 있는데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걸 정리하면 내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 보니 그것부터 먼저 쓰고 일상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업로드 자체를 미루다 보니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시작조차 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 이유와 그럴싸한 변명거리도 있지만. 그걸 탓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의지와 시간을 더 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다시 끼적인다. 뭐라도 다시 써보자는 생각. 설사 벼르고 벼르던 그 주제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짬 날 때 10분이라도 쓰자는 마음. 독서를 10분만 해도 책에서 얻는 정보와 통찰이 상당한데 10분이라도 집중해서 생각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지금은 새삼 거창한 걸 쓰려고 할 필요도 없다 싶다. 일상도 소중한 이야기고, 있었던 일을 단순 나열하는 게 아닌 내 생각을 쓰는 거니까. 원래 쓰려했던 정제된 글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쓰면서 생각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게 되니 약간의 성숙은 기대할 수 있는 활동이지 않을까 싶다. 그때그때 삶을 정리하고 반추하며 회고하는 시간은 필요하니까. 그래서 이제는 뭐가 되든 자유롭게 써보자 싶다. 그 주제도 한 번에 완성하기보다 조금씩 해보자고.

주제와 상관없는 내용을 길게 쓰고 있다. 오랜만에 쓰는 브런치라서 그 배경을 스스로 설명하려다 보니 서설이 길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 건 특별한 일이니까. 내 일상이었던 그 관계와 교류하는 게 이제는 이벤트에 가까운 일이 된다는 게 좀 아쉽고 서글프기도 하다. 그렇다고 일상이었을 때 그 관계가 마냥 평온했던 것도 아니지만. 나이 들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여러 아쉬운 변화 중 하나이긴 하다.

설 연휴 이후니까 3달 만이다. 중간에 가족이 집에 방문해 만난 적도 있지만 모두는 아니다. 내 모든 가족을 만난 게 이번이 설 연휴 이후 처음이다. 이번에는 친구도 오랜만에 만났다. 오랜 친구. 성인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 나도 이제 인생 후반전을 준비할 때다. 친구와의 인연이 이렇게 오래되었다니 신기하고 세월이 무섭기도 하다. 일상이었던 친구를 만나는 일도 1년에 손에 꼽을 일이 되다니.

친척들도 오랜만에 봤다. 현 거주지에서 가까이 살고 있어서 얼마 전에도 봤지만 같이 외식하고 산책도 한 건 오랜만이었다. 이번에 가족과도 외식하고 카페에 가고, 친구와도 카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고. 오랜만에 관계의 기쁨과 평안, 행복을 느낀 듯하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부모님과 형제, 친구와의 관계 밀도는 다르니까. 일로 만난 사이와 이해관계에 덜 얽매인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

그 관계는 이해타산적으로 날 대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날 지지하고 응원해 주고 격려해 준다. 날 기능적 존재로 보기보다 사람으로 보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사람들. 일로 만난 사람들은 지나칠 일도 신경 써주고 살뜰히 챙겨주는 드문 사람들. 그렇다고 사회에서 무미건조하게 산다거나 사람들과 딱딱하기만 한 관계를 맺는 건 아니고, 감사하게도 많은 배려를 받고 있다. 다만 일로 만난 사이라 긴장감이 굉장히 크고 경계심도 들어서 편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더 자유롭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게 기쁘고 감사했다. 특별한 장소에 가거나 남다른 활동을 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 편한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쉼이고 평안이다. 그 시간이 이제는 마냥 주어지지 않고 노력해서 만들어야 할 기회가 되고 있고, 그렇기에 이를 놓쳐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하철 타러 가는 길친구가 배웅해 주고, 버스 탈 때는 온 가족이 배웅해 줬다.

많은 생각이 들었고, 이 일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지금은 내게 허락된 관계와 주어진 모든 게 감사하다. 어린이주일 설교 말씀이 많이 기억에 난다. 행복은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말.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고. 가족과의 관계도 그렇고.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를 만나 특별하고 감사한 연휴였다. 내 생각만 하느라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평안한 지, 불편한 건 없는지 내가 무심했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일지도.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얼마 전 생신이었고 그때 전달드린 선물과 비슷한 걸 이번에도 드리는 건 불편해할 수도 있을 듯해 오랜만에 편지를 썼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길게 쓰지는 못했다. 감사하고 송구하며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 걱정하시지 말라는 게 요지였다. 무뚝뚝한 느낌도 들고, 한편으론 가족이라서 많은 말하지 않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자주 쓰지 않아서 민망했나 싶기도 하다. 편지도 전보다 더 자주 써야 할 듯.

매거진의 이전글 계절의 축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