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이 내게 던졌던 고민

디지털 시대에 지면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어제는 첫 직장 동기와 종이 신문의 미래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히는 종이 신문의 미래라기보다 그 동기 회사의 미래. 그 동기는 신문기자이며, 그가 일하는 매체는 전문지다. 앞으로 회사 방향성을 두고 설문조사를 진행하는데 내게도 링크를 보내줬다. 몇 가지 질문에 주관식으로 답변했다. 동기에게도 그 내용을 말했다. 난 이 항목에는 이렇게, 저 항목에는 저렇게 답변했다고. 동기는 그걸 듣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고맙게도 내 의견을 좋게 받아들여줬다.

대화 과정에서 내가 추가로 더 말한 게 있었다. 새로운 건 아니고 요즘 어디는 이런 것도 하니까 거기는 그런 걸 해보면 어때. 그 동기가 회사에도 그걸 제안하고 싶다고, 자신이 추진해도 되냐며 도리어 물어줘서 보람을 느꼈다. 내가 그 동기에게서 배운 점도 있다. '아, 이 친구는 지금도 일에 열정이 있구나'. 일하다 보면 회사에 뭔가를 제안하는 게 내키지 않을 때가 있다. 제안하는 순간 그게 내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은 자세일 수 있다. 그러나 제안하면 내 일이 되는데 내 다른 업무를 줄여주지 않고 일 시키면 싫다.

아무튼 동기와 대화하면서 오랜만에 종이 신문의 미래를 생각했다. 신문사에서 일했던 시절도 떠오르고. 종이 신문의 미래는 한때 내 고민이었으니까. 종이 신문, 온라인 미디어에서 일했지만 내 경력의 3분의 2는 신문기자였다. 온라인 미디어도 그렇겠지만 신문사에서 일할 때는 '신문기자이기 때문에 이래야 한다'라는 원칙이 있었다. 난 신문기자 정체성이 강했고 온라인 미디어에서 그걸 벗겨내려니 어려웠다. 담당 분야도, 매체 환경도, 글 스타일도 달라서 정체성 혼란이 있었다. 내가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거기에 필요한 사람인지 자주 고민했다. 문제는 그런 게 아니지만.

난 종이 신문을 좋아했다. 윤전기에서 갓 나온 신문의 따뜻한 촉감도 좋았고, 신문 특유의 냄새도 좋았다. 분홍빛에 가까운 살구색 지면도 좋았다. 대학시절 학보사에서 일할 때는 단과대별로 기자들이 신문을 직접 배달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트럭을 타고 캠퍼스를 다니며 1만부가 넘는 신문을 비치대에 올려두면 보람됐다. 후배와 넬의 '백색왜성'을 노동요로 부르고, 중앙도서관 근처 내리막길을 트럭 타고 내려갈 때 "오픈카를 탔다고 상상해봐"라는 선배의 뻘소리에 코웃음 치던 일.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진=픽사베이

그러나 사회에서 신문기자로 일할 때는 미래가 정말 안 보였다. 언론 자체가 미래가 불투명하기도 하고. 언론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이 다 그렇다. 그걸 몰랐던 건 아닌데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정통 매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들어와서 느낀 건 역시 안에서 일하는 것과 밖에서 보는 건 다르다는 것. 그중에서도 인쇄매체로서 전문지 미래는 더 애매했다. 첫 직장은 벤처붐이 일던 20년 전 IT 전문지로 시작했지만 10년 전부터 종합 경제지로 정체성을 바꿨다. 거기엔 닷컴 버블이 꺼진 것도 영향을 줬고. 언론사 대부분이 구독이 아닌 광고로 먹고살고 있고 IT 매체는 IT 기업이 광고주인데 그 층이 넓지도, 두텁지도 않다.

경제지가 되면 외연이 넓어지니 협찬받을 수 있는 대상도 늘어난다는 계산. 문제는 그들이 우리에게도 그걸 해줄까라는 거다. 국내에 언론사가 얼마나 많은데. 다들 우리한테도 뭐 좀 해달라고 난리다. 이미 단위 큰 협찬은 주요 매체에 다 배분하고 얼마 남지 않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같은 회사에서 내부 경쟁도 한다. 기자가 영업을 뛰다 보니 같은 회사 광고국과 경쟁할 때도 있고. 거기서 연락 오면 받지 말라고 출입처에 지도 편달하는 데스크까지 있다. 하나의 출입처가 있으면 여러 부서에서 거길 출입하는데 출입처=광고주=돈이다 보니 출입처를 뺏어오려는 경우도 있다. 같은 조직에 있어도 한배에 탔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드는 상황.

매출 구조는 그렇다 쳐도 신문사는 종이 신문을 내는 게 주요 사업이다 보니 디지털 대응에 둔감하다. 발 빠른 매체는 그나마 빨리 준비하지만 그건 규모가 큰 매체 정도만 그렇게 한다. 그조차도 형식적이란 시각도 있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이들은 신문기자 또는 지면 매체에서 일하는 걸 두고 선민의식이 있다. 온라인 미디어에서 일하다가 신문으로 옮기는 걸 목표하는 이들도 있다. 아니면 네이버 CP인 매체로 이직하는 걸 우선한다거나. 종이 신문에서 디지털 부서로 발령 나면 그걸 '좌천'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는 흥미로운 게 온라인 미디어로 시작해서 뒤에 종이 신문을 내는 매체들도 제법 있다.

그런 인식 속에서 종이 신문 살 길을 모색한다고, 특히 전문지가 살 길을 모색한다고 내놓는 방안을 보면 구시대적이고 퇴행적인 발상이 많다. 기존 종합경제지가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하거나. 미래지향적으로 일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사실 갑자기 사업모델을 바꾸는 건 어렵고,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변화해야 충격도 덜하니 이해는 간다. 그러나 첫 직장에서 아쉬웠던 건 IT 콘텐츠, 부서 입지가 줄어드는 점이었다. 보안처럼 일반인에게 어려운 전문 분야는 축소하고, IT 부서를 통폐합하는 등. 난 거기서 IT 담당이 아니었지만 그 분야를 담당한 다른 동기는 힘들어했다. 회사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 기사를 썼는데도 이를 내보내지 않는다는 것. 그게 기자 자존감을 얼마나 꺾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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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변화가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세상에서 IT 콘텐츠를 축소하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았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썩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튼 그런 시대인데. 그러면 관련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야지.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가 거기에서 나오는데. 요즘처럼 변화 속도가 빠른 시대에 이를 주도하는 IT 콘텐츠를 강화해도 모자랄 판인데. 광고 비즈니스를 놓고 보면 큰 돈벌이가 안 되는 거다. 그런 점에서 뉴미디어 업계의 경우, IT 매체가 많이 생기는 게 난 신기했다. 종이 신문 분위기와 정말 달라서. 20~30년 된 IT 매체는 그게 큰돈 안된다고 보고 그 정체성을 바꾸는 경우도 있는데. 수익모델 차이가 있겠지만.

회사에서는 제호도 바꾸려고 고민했다. 사내 공모전도 진행했고. 퇴사 이후에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난 제호 바꾸는 게 싫었다. 그 회사에 입사 지원한 데에는 제호 빨도 컸다.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은 제호와 전혀 달랐지만. IT 매체든 아니든 사회 모든 분야에 디지털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제호를 바꾸면 '원래 어디였는데 뭘로 바뀌었다' 이런 걸 기자가 다 설명하고 다녀야 하는데 번거롭다. 업력이 20년 됐는데 신생 매체로 보일 수도 있고. 공모전에 아이디어를 내지 않아서 당시 데스크가 "왜 공모 안했냐"고 물으시길래 "전 제호 바꾸는 거 싫습니다"라고 말했다. 위와 같은 이유를 들면서. 그분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아무튼 길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응하려면 디지털 콘텐츠를 확충하고, 지속 가능한 오프라인 모임을 기획하거나. 그걸로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오프라인 모임은 사업부에서 움직이는 게 좋은 듯. 이미 언론사 콘퍼런스도 그쪽에서 같이 하지만. 말도 안 되게 비싼 콘퍼런스 말고 합리적 가격에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콘텐츠 제작도 연계할 수 있는 게 필요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폴인 모델이 기성 언론 가운데 나아 보인다) 종이 신문 따로, 온라인 미디어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한국일보가 '신문 중심에서 온라인 중심 조직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건 의미가 큰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한국일보니까 저렇게 움직인다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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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 열독률이 12.3%(10명 중 1명만 읽는 셈,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 언론 수용자 조사', 응답자 만 19세 이상 국민 5040명)뿐인 상황에서 종이 신문 부수를 확장하기 어렵다. 가정 독자는 물론이고, 기업 독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시적인 캠페인으로 바짝 늘릴 수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이미 '아이서퍼' 같은 프로그램으로 종이신문을 보는 기업이 많다. 내부에서 기사를 스크랩해서 보고할 때도 그걸 활용하고. 가정 독자든, 기업 독자든 종이 신문 구독 가치가 없는데 그걸 요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보면 업계에서 정말 관심 있거나 도움될만한 IT 콘텐츠는 기성 언론에서 찾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정말 좋은 IT 콘텐츠를 만들려는 사람 또는 뉴미디어에서는 그런 걸 생산할 거다. 수익성, 대중성, 화제성을 콘텐츠 중심에 놓고 보면 전문적 내용은 기사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세상을 바꿀 중요한 소재는 다루겠지만. 콘텐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장 사람들이 많이 관심 갖지 않아도 알아둬야 할 소재도 있다. 그러나 회사에 도움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겠지. 지식이 풍부하고 글 좀 쓰는 업계 관계자가 책이나 외부 기고로 그걸 풀어주면 감사할 따름. 그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거고.

이런저런 생각을 나열했지만 모르겠다. 그렇다고 종이 신문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쓸모가 있어야 하는데. 가디언의 주간신문 '더 롱 굿 리드' 같은 게 생각나지만 그게 미래가 될 수는 없을 듯하다. 애드버토리얼도 모노클처럼 정보 가치가 커야 하는데 명절 특집처럼 같은 내용, 예전 보도자료를 매체별로 돌려막기한다면 지면 낭비인 것 같다. 회사와의 관계, 협찬 규모를 기준으로 기사 배치하는 종이 신문이라면. 부수 경쟁도, 상품 가치 주장도 의미 없어 보인다. 지면이 정말 가치있게 쓰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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