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없는 날이지만 오늘 영국은 '아버지의 날'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저녁에 BBC 라디오 2의 'Steve Wright' Sunday Love Song'을 들었다. 날이 날인만큼 아버지를 향한 메시지가 많이 왔다. 코로나 19 때문에 아버지를 18주간 못 봤다는 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처음 맞는 아버지의 날이라는 이. 나도 아버지가 생각나서 오늘 전화드렸다.
아버지의 날이라고 하니 새삼 몇 가지 콘텐츠가 떠올랐다. 신카이 마코토의 6분짜리 단편 '누군가의 시선', 블러의 'Coffee & TV' 뮤직비디오. 누군가의 시선은 아버지와 직접 관련된 내용이고, 커피 앤 티비 뮤직비디오는 가족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다시 봤는데 이건 참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오늘은 유독 울컥하는 느낌이다.
내용은 이렇다. 혼자 사는 딸과 아버지 이야기. 오랫동안 집에서 키운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는데 이 고양이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딸은 세상살이에 지쳐 아버지가 도시락을 들고 집 근처에 찾아와도 거짓말하며 아버지를 돌려보내고. 그러다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집에 가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다.
역시나 이 영상에서 짠한 포인트는 아버지와 딸이 서로를 지켜주기로 결심한 대목, 아버지는 도시락을 사들고 딸의 집 근처까지 왔는데도 그걸 티 내지 않는 모습. 딸이 무심하고 틱틱 대도 그조차 딸의 성장으로 여기고 기뻐했다는 문장에서 눈물이 났다. 때때로 아버지에게 까칠하게 반응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고, 아버지가 틈틈이 보내주시는 카카오톡 메시지도 생각났다.
신카이 마코토 '누군가의 시선'. 출처=유튜브
꼭 아버지의 날 때문만 아니지만 최근 아버지가 보낸 카톡 메시지를 다시 쭉 읽어봤다. 볼만한 유튜브 영상 링크도 보내주시고, 읽을만한 글귀도 보내주신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느낀 점도 말씀하신다. 얼마 전 말뭉치 구축 사업을 다룬 글이 나갔는데 작업 과정이 많이 힘들었다. 정확히는 마음이 힘들었다. 소통 과정에서 언짢은 상황이 있었다. 그로 인해 6월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물론 그 일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마음고생한 글이 나가니 마음에 돌덩이가 쿵하고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글이 나가면 가족, 친척들에게 링크를 보낸다. 원래 단체 대화방에 올리는데 어머니께서 내가 글쓰는 걸 좋아하지 않으셔서 언제부턴가 안 올리고 있다. 원래 어머니도 내 글을 보고 반응도 남겨주셨다. 그러나 내가 겪은 언짢은 상황을 알고 속상해하셔서 그 뒤로 나도 어머니에게는 글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었는데 아버지 메시지를 읽고 짠했다. "전문적이고 복잡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잘 읽었다. 수고했다." 별거 아닌데 그냥 울컥했다. 난 잘했다는 말이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유독 마음이 고달팠던 글이라서. 내 가까운 사람이 고생했다는 것만이라도 알아주는 게 고마웠다. 같은 칭찬도 가족에게서 들으면 느낌이 다르다.
다른 메시지도 읽어봤다. "시간 나는 대로 내려와서 여행도 좀 하고 쉬었다 가거라", "큰 일을 할 사람이 사소한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대범해야 한다", "잘 읽었다. 전문 분야라서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수고했어요", "아빠는 네가 하는 일을 존중한다. 왜냐? 앞으로 큰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저녁 식사했느냐? 네가 이번에 와서 아빠한테 할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아서 보낸다. 너의 눈에 그런 것이 보여서 네가 말하기를 기다렸는데 아무 말이 없더구나. 언제든지 아빠한테 얘기해주면 좋겠다.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게." 아버지는 나도 깨닫지 못하는 내 마음도 헤아려주시는구나. 아버지는 글 너머 내 모습도 봐주고 믿어주시는구나.
블러 'Coffee & TV' 뮤직비디오. 출처=유튜브
그런 아버지와 지금도 대화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오늘 아버지에게 '그 카톡 메시지 읽고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씀드렸다. 2주 전인가 기분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서 '사랑한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이어서 내게도 같은 말씀 해달라고 응석을 부렸다. 그런 말 안 해도 사랑한다고 하시더니 결국은 말씀을 해주셨다. 앞으로 이런 말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러의 커피 앤 티비 뮤직비디오는 집 나간 아들을 걱정하는 가족 모습을 담았다. 우유가 그 메신저 역할을 하는데 우유팩 도면까지 인터넷에 올라올 정도로 인기 있었다. 난 가출한 경험은 없지만 뮤비 속 그레이엄 콕슨과 그 가족을 보면 '우리 가족 마음도 그렇겠구나' 싶다. 언제부턴가 내가 집에 언제 오느냐가 가족들의 큰 관심사가 됐다. 특히 아버지와 언니가 많이 기다리는 눈치다.
요즘 들어 나도 가족이 많이 그립다. 원래 6월 초에 다녀와야 했는데 여러 상황이 걸려서 집에 가지 못했다. 외할머니도, 이모도 보고 싶다. 이번 글을 잘 마무리하면 다녀오고 싶다. 결국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가족이니까. 마음이 복잡할 때일수록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고, 내게 챙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떠올리면서 상황을 객관화하려고 한다. 그때 가족이라는 존재가 중심을 잡아준다.
지금 내가 고민하고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일깨우기 위해 몸부림친다. 결국 그 하잘 것 없는 일로 힘들어하는 게 현실이지만. 마음이 끝간 데 없이 우울해질 때가 있지만 그냥 '내 마음이 감히 한가롭구나'라고 생각해본다. 아이유가 말했던 것처럼 감정에 속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인다. 내가 욕망보다 야망을 더 갖길. 사람을 기대하지도 욕심내지도 않길. 더 초연하고 무덤덤해지길. 이렇게 다짐하지만 내가 상처받길 두려워하는 쫄보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