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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목소리와 서비스 마인드를 고민하며

'스타일과 목적을 살리는 웹 글쓰기'를 읽으며 든 단상

by 딱정벌레
사진=길벗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한 권을 꼽으라면 단연 이 책을 뽑고 싶다. 길벗 출판사에서 2016년에 나온 '스타일과 목적을 살리는 웹 글쓰기'. 저자는 니콜 펜튼, 케이트 키퍼 리. 니콜 펜튼은 자유 기고가 겸 편집자다. 케이트 키퍼 리는 뉴스레터 서비스인 메일 침프에서 작가와 편집자를 겸하고 있다고 한다. 책이 나온 지 몇 년 됐기 때문에 두 분 다 근황에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트레바리 모임에서 읽는 책을 살펴보다가 이 책을 처음 알았다. 현재 슬로워크 CEO분이 진행하는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선정했다. 내가 그 모임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다만 스티비가 슬로워크 계열사고, 스티비 솔루션을 활용한 뉴스레터들이 괜찮아서 그분이 선정한 책에도 관심이 갔다. 슬로워크의 뉴스레터인 '오렌지 레터'를 평소 구독하고 있고(예쁘다). 슬로워크의 블로그 콘텐츠도 알차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앞서 유데미에서 테크니컬 라이팅 강좌를 들었지만 소양을 더 쌓아야 했다. 꼭 기술 콘텐츠를 쓰지 않아도 요즘 우리가 쓰는 글은 다 웹 글쓰기니까. 이 책에서는 웹 라이터가 하는 일, 글쓰기 전에 해야 할 일, 계획 수립, 웹 라이팅의 기초, 자신만의 보이스, 톤, 고객 커뮤니티 만들기, 주의사항, 스타일 가이드 등을 다뤘다. 처음에는 글쓰기 비법 책인가 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이건 테크니컬 라이터나 기업 블로그 담당자, 마케터, 홍보 담당자에게 두루 도움되는 내용이었다. 특히 브랜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유용할 듯하다. 내가 쓰는 글도 어쨌든 브랜드 콘텐츠로 귀결되기 때문에 도움됐다.

브랜드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콘텐츠 서비스를 운영하는 곳이라면, 특히 웹 콘텐츠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이제 막 시작하는 서비스에서 보면 좋을 듯했다. 한 챕터, 한 챕터 다 머릿속에 새기고 싶은 내용 투성이었다. '이제야 이런 책을 보다니' 조금 아쉬운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봤으니 얼마나 다행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콘텐츠 서비스를 보면 이 책을 읽고 고민해서 기획한 듯한 서비스도 있어 보이고. 단순히 스킬만 나열하지 않고 어떤 관점을 갖고 웹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지 숙고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사진=픽사베이

이 책은 아직 읽는 중이다. 최근에 본 내용 중 특히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 챕터가 있는데 '챕터 5. 자신만의 보이스를 찾자'였다. 여기서는 "고객이 웹사이트에서 글을 읽을 때 자신이 아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 그게 바로 보이스 때문"이라고 했다. "보이스는 조직의 개성이고, 모든 콘텐츠에서 스며 나오며 기업 인상을 좌우한다"라고. 뛰어난 보이스 요건으로 "고객을 우선한다, 기업 문화를 반영한다, 활기가 넘치며 인간적이고 적절하다, 개성을 살리겠다고 이해하기 어렵게 쓰지 않는다, 점차 진화한다" 등을 제시했다. 특히 웹 라이터의 좋은 보이스로는 "마치 독자에게 말을 건네거나 고객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스스로 자연스럽게 느껴져야 한다"라고 짚었다.

이걸 보니 그전에 일했던 회사들과 지금 쓰는 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회사는 이 책에 따르면 자신만의 보이스를 잘 갖춘 듯했다. 기사를 말하는 듯 쓰는 것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짤방을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사 쓰다가 힘들 때 기사에 넣을 'GIPHY' 짤방을 찾는 게 소소한 재미였다. 그게 기업의 보이스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거기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아무튼 어떤 글을 읽으면 '아, 이건 거기 콘텐츠구나'라는 느낌은 들 수 있게 구축한 듯하다. 대부분 언론사는 반말로 기사를 쓰고 있으니까. 독자에게 말을 건네듯 존댓말로 글을 쓰느냐, 반말을 하느냐는 차이가 꽤 크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전자가 좋다. 반말은 싸가지 없어 보인다. 말로나마 형식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느냐, 아니냐도 차별화된 결과를 만든다.

지금 쓰는 글은? 난 그 조직에 소속돼 있지 않은데다 외부인 입장에서 거기에 따로 그 기업의 보이스라는 게 안 보인다. 그래서 '기업의 보이스가 어떻고 이런 걸 지켜달라'는 식의 지도를 받은 건 없다. 내 딴에는 인간적이고 대화나누는 문체로 글을 쓰려고 하지만 그 기업문화는 반영하지 않는다. 그냥 내 스타일대로 쓴다. 조직의 개성은 드러나지 않겠지만 그게 특별히 요구되지는 않고. 거기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어 보인다. 무채색 조직이라면 당장 기업 보이스를 만들고 이를 글에 반영하지 않더라도 일단 친절하게 대화하듯 메시지를 전달하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했다.

또 들었던 생각은 웹 서비스에서 홈페이지에 나타나는 모든 표현(마케팅 문구 등)과 공지사항, 서비스 안내, FAQ 등이 다 브랜드의 보이스라는 것.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둘 수 없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런 문구 하나하나에 기업 이미지가 드러난다는 걸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곳이 많다. FAQ가 없는 서비스도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경향신문 홈페이지는 고객 문의를 체계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이나 댓글 삭제 기준을 꼼꼼히 알려준다. PC로만 봐서 모르겠지만 글씨 크기가 좀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첫 번째 회사에는 우리만의 스타일 가이드가 있긴 했다. 입사하면 수첩 크기만 한 책자를 나눠줬다. 그러나 이건 업무 매뉴얼에 가까웠다. 브랜드의 보이스라고 할만한 건 특별히 없었던 것 같다.

아울러 요즘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는 모임에서 내가 쓴 문구도 떠올랐다. 아주 거칠게 초초 초초 초기 프로토타입이 나왔다. 각자 제시한 아이디어를 일단 넣어보고, 어떤지 살펴보는 과정에 있다. 저번에 회의하다가 '뉴스 신뢰도를 생각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을 5가지 정도 제시하는 게 어떻겠냐'라고 의견을 냈다. 내가 그 문구를 일단 만들기로 했다. 신문윤리실천요강과 JTBC 가짜 뉴스 기준, FACTCHECK.ORG, 연세대학교 바른 ICT연구소+동아일보의 가짜 뉴스 체크 리스트를 참고했다. 이 가운데 공통적으로 제시한 기준과 뉴스 신뢰도를 따질 때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기준을 추려서 5가지 항목을 만들었다. 몇 시간 걸렸다. 외부에서 아이디어를 참고해도 문장은 따로 만들어야 하니까.

사진=픽사베이

처음에 문구를 만들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래, 이 문구도 우리 서비스의 보이스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사용자에게 어떤 느낌을 줄지, 어떻게 다가갈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 이미지는 뭐지?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사용자에게 전하고 싶지? 우리 다운 목소리는 뭐지? 어떤 말투를 써야 하지? 그 말투는 우리 실제 어투를 담을 수 있나?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앞서 언급한 뛰어난 보이스 요건, 웹 라이터의 좋은 보이스 내용을 다시 살펴보니 여기도 당장 개성이 없더라도 위 요건만 충족하면 될 것 같다. 고객을 우선하고, 활기가 넘치되, 인간적이고, 쉽게 쓰며, 대면하면서 말하듯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새삼 그 문구가 사이보그 같지 않은지 다시 생각해본다.

예전에는 좋은 콘텐츠 만드는 게 우선이고, 지금도 그 원칙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드는 고민은 '서비스 마인드를 키우고 싶다'는 것. 좋은 콘텐츠를 쓰면 그게 서비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창작자 중심 사고인 듯하다. 이미지와 표를 보기 좋게 적재적소에 넣는 걸 넘어서. 이 색은 왜 써야 하고, 얼마만큼 띄워쓰기 하는 게 보기 좋고, 전체 바탕색은 뭐가 어울리고, 이미지는 어떤 원칙을 갖고 활용해야 하고. 이게 서비스라는 건 아니고. 여러 콘텐츠 서비스를 보면 이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먼저 밝히고, 내용을 요약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글 중간중간에 시사점 있는 내용을 따로 표시한 게 눈에 띈다. 사소한 거지만 내가 진지하게 생각지 못했던 일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편집자라는 존재가 참 중요하다 싶고. 편집자는 무척 힘들겠지만.

늘 쓰던 입장에 있다 보니 내가 남 생각을 너무 안 했다는 걸 실감했다. 사실 글을 쓰다 보면 서푼도 안 되는 자기 연민이 생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이런 자기 연민에 빠지고 누가 글에 손대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늘 그런 건 아니다. 글을 잘 만져주면 고맙고 좋다. 부끄럽기도 하고. 근데 내가 생각하기에, 나뿐만 아니라 누가 보기에도 이상한 방식으로 글을 난도질해놓으면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첫 번째 회사는 조직이 조직인만큼 늘 데스킹을 거쳐 기사가 나가는 데스크마다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글을 잘 봐주는 데스크가 있는가 하면 똥으로 만드는 이도 있다. 난 그때 너무 죽고 싶었다. 내 이름으로 나가는데 저렇게 나가니까. 나만 그 문제를 느끼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의견이 없어야 했으니까.

돌이켜보면 그건 신뢰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건 참 어려운 일. 믿음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으니까. 살다 보니 믿음이 절대 쌓일 수 없는 상황도, 사람도 있다. 상대방 입장에선 내 기사가 똥이었을 수 있고. 이런저런 상황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자기가 알아서 다 잘해야 한다. 잘못해서 안 좋은 소리 들어도 내가 못해서 싫은 소리 듣는 게 낫다. 억울할 일도 없고. 내가 한 일도 아닌데 내가 덤터기 쓰는 것보다. 아무튼 서비스 마인드를 키워야 하지만 현실은 콘텐츠 만들기도 벅찼고. 이 모든 걸 유연하게 잘 대처하려면 역시 더 훈련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브런치는 개인적 공간이기 때문에 불친절해도 편하게 쓰고 싶다. 결론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눈을 뜨게 해주는 콘텐츠를 만나서 좋다. 요즘 '스타일과 목적을 살리는 웹 글쓰기'를 읽어서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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