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2주 차.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점심 세미나에 다녀왔다. 양재 AI 허브에서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주제로 짧은 세미나를 열었다. 발표자는 핀터레스트 개발자. 재택근무 중이신 것 같긴 한데 이 세미나 때문에 귀국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 시국에 글로벌 IT 기업은 어떻게 일하는지 이야기도 잠깐 들을 수 있었다. 갈지 말지 고민했는데 온라인 중계가 되는 건 아니라서 가는 쪽을 택했다. 참석자는 10명이 안 됐던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도 있을 거고, 양재 AI 허브가 외진 데 있는 까닭도 있을 듯.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핀터레스트는 사용자의 콘텐츠 반응 확률을 딥러닝 모델로 예측한다는 것. 이 콘텐츠를 저장할 확률, 클릭할 확률을 각각 예측한다. AI 인력 수는 100명은 넘을 걸로 추정한다고. 피드, 검색, 시각 이미지 데이터, 광고, 이메일 모델 등 담당 분야도 다양하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프로세스도 다시 짜는데 스탠드업 미팅은 슬랙으로 한다고 했다. 재택근무를 하면 성실 근무를 하고 있는지 회사에서 의심하고 감독하려 할 수도 있는데. 실리콘밸리 기업은 주어진 시간 안에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 확립돼 있기 때문에 거기서 동기 부여되는 게 크다고 했다. 이 내용이 인상 깊었다.
강남에 나온 건 오랜만은 아니지만 그쪽 동네는 오랜만이었다. 오프라인 행사가 활발할 때는 거기서 AI 강연을 종종 들었다. 인터뷰나 미팅하러 가기도 하고. 강남에 나온 길에 어딜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문을 연 노브랜드버거 역삼점이었다. 노브랜드버거의 미래형 매장이라는데 서빙로봇이 있고 번과 패티를 굽는 자동조리도구도 있다고 했다. 플래그십 매장처럼 새로운 메뉴를 체험할 수도 있고. 얼마 전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 매장 사진이 올라왔는데 중요한 매장이라서 그랬나 보다 했다.
노브랜드버거 서빙 로봇의 배달 장면. 촬영=딱정벌레
조리 로봇이나 서빙로봇도 로봇 카페나 우아한 형제 사례로 이제 귀에 많이 익었다. 관심 있는 사람에게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다 보니 노브랜드버거 서빙 로봇을 처음 들었을 때 신선하지 않았다. 그래도 신세계가 하면 뭔가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는 있다. 자율주행 카트 일라이가 그랬고. 기술을 도입한 미래형 매장이 아니라고 해도 전부터 나뿐만 아니라 유통업계 종사자 일부는 신세계가 하면 일단 기대치가 높았다. 식당도 잘할 것 같고. 오너 말을 들어보면 시야가 넓고 통찰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물류의 중요성을 아는 것도 그렇고. 거기서 뭔가 하면 위협적이란 느낌이 있었다. 이건 감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종합했을 때 그랬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노브랜드버거 역삼점은 플래그십 매장 느낌도 있어서 강남 나온 김에 방문키로 했다. QR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다. 키오스크 근처에 픽업 장소가 있었는데 '로봇 온리(Robot Only)'라고 쓰인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여기에는 세대의 서빙 로봇이 서 있었다. 쟁반을 넣는 칸이 세 개 있었고. 점원이 테이크아웃용으로 포장한 먹거리를 이 칸에 올려놓고 주문번호(였던 것 같다)를 입력하면 로봇이 천천히 움직여 픽업 장소 근처에 있는 고객 앞으로 가는 식이었다.
그러나 매장에서 고객이 경험할 수 있는 로봇은 이 정도였다. 자동조리도구도 있다고 하지만 회전초밥집처럼 번이나 패티가 투명한 관(?) 안에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 걸 보는 정도랄까. 그것만 봐선 그게 자동조리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듯. 햄버거를 맛보면 '아, 이게 자동조리 산물이군' 이렇게 느끼려나. 코슬로우 치킨버거를 먹었는데 맛은 있었다. 매장은 크고 넓었다. 역삼에는 회사 출근하는 이가 많은지 거리두기 좌석제를 운영해도 사람이 제법 많았다. 피자 메뉴도 있고. 다른 노브랜드버거 매장에서 못 본 메뉴도 있었다.
노브랜드버거 역삼점 내외부, 코울슬로 치킨버거. 사진=딱정벌레
서빙 로봇은 괜찮은 구경거리이긴 했다. 역삼점의 주인공이라고 봐도 나쁘지 않을 듯. 아마 이거 구경하러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펙터클한 재미를 주는 건 아니다. 로봇이 천천히 움직이기도 하고. 그냥 내게 다가오는 모습을 조심스레(?) 바라볼 뿐이랄까? 장점이 있다면 픽업 장소가 이렇게 구분돼 있기 때문에 매장에서 식사하고 가는 고객이 먹거리를 받아갈 때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픽업 속도는 사람이 직접 가서 직원에게 받는 게 훨씬 더 빠를 듯했다. 로봇이 빨리 움직이지 않으니까.
유통업계에서 미래형 매장은 이제 새롭지 않다. 지금은 너무 흔해진 키오스크도 한때는 매장에 들이면 미래형 매장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유통 대기업에서는 미래형 매장을 다양하게 실행했다. 손등 정맥 인식으로 매장에 출입하고, 결제할 수 있는 무인 편의점도 있고. 아마존 고 같은 저스트워크아웃 기술을 접목한 매장도 있다. 로봇이 물류를 처리하는 건 물론이고. 상용화된 건 아니고 일부 매장에만 시범 도입하지만. 그런 걸로 '우리가 리테일 테크를 혁신한다'는 이미지를 선점하려고 경쟁했다는 생각도 든다.
기억에 남는 사례는 신세계에 더 많았다. 신세계는 창고형 할인점, 대형마트 할인점 등에서도 로봇을 선보인 바 있다. 2018년에 몇 개를 공개했다. 가장 먼저 접한 건 자율주행 카트 '일라이'였다. 개발도 이마트 디지털 기술 연구 조직인 S-랩에서 주도했다. 트레이더스 하남점에서 처음 공개했는데 많이 관심받았다. 일라이는 사람을 인식하는 센서와 음성인식 기능, 상품 무게 인식 센서 등을 갖췄다. 음성 인식으로 매장 내 상품 위치를 검색하고 카트가 해당 위치로 스스로 움직였다. 고객은 카트를 따라가면 된다.
AI 카메라 구글 클립으로 찍은 자율주행 카트 '일라이' 주행 장면. 촬영=딱정벌레
카트에는 결제 기능도 탑재됐다. 바코드 인식 센서와 무게 감지 센서가 있어 상품을 고른 다음 바코드를 읽혀 나중에 합계 금액을 결제할 수 있다. 카트에 담긴 상품과 실제 계산되는 상품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무게로 감지한다고. 쇼핑이 끝나면 카트가 스스로 움직여 충전소로 복귀했다. 카트에 LCD 화면이 있는데 여기서 전단 상품 등 쇼핑정보를 안내했다. 쇼핑 소요 시간과 혜택 금액, 주차 위치도 알려줬다. 휴대전화 유무선 충전도 할 수 있고.
처음 시연했을 때 일라이 모습은 썩 완벽하지만 않았다. 말귀를 정확히 알아듣는 것 같지 않았고, 시연하기 전 충전을 더 해야 해서 시작도 지연됐던 것 같다. 이날 일라이 공개 장면은 돌잔치 같기도 하고. 아기가 걸음마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인상 깊은 게 있다면 장애물이 보이면 마치 사람이 멈칫하듯 카트도 멈칫한다는 것. 일라이는 시연이 끝난 뒤에도 트레이더스 곳곳을 돌면서 열심히 일했다. 인상 깊은 자리라서 난 AI 카메라 구글 클립으로 일라이 주행 장면을 촬영했다.
이마트 안내 로봇 '페퍼' 안내 장면. 촬영=딱정벌레
그로부터 한 달 뒤, 이마트 성수점에서는 매장 안내 로봇도 공개했다.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의 페퍼 로봇에 매장 안내 기능을 더한 건데- 역시 S랩이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았다. 이름을 물으면 답하고, 행사상품을 알려달라고 하면 태블릿 화면으로 알려주는 식이었다. 역시나 매장이 시끄러워서 음성을 정확히 인식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매장 쉬는 날이 언제야?"라고 물으면 못 알아듣고 "휴점일이 언제야?"라고 물어야 답하는 건 아쉬웠다. 그래도 페퍼 눈에는 카메라가 달려서 이미지 인식 기술로 맥주 상품을 인식할 수도 있었다. 충전한 뒤 6시간 움직일 수 있다는 점도 한계라면 한계일 수 있을 듯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 중인데 이런 소소한 구경거리를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거리를 걷고 있으면 일상이 아주 멈춘 건 아닌 것 같은데 불 꺼진 가게나 의자를 엎어놓은 카페를 지나치면, 마스크로 중무장한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요즘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것 같긴 하다. 퀸의 '라디오 가가' 뮤직비디오를 보면 마스크까지는 아니고 방독면을 쓴 사람들이 나온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온 플라잉 카가 오늘날 현실이 됐듯- 1980년대에 나온 라디오 가가 뮤비 속 사람들 모습도 이렇게 실제로 구현되다니. 피로를 덜어줄 소식도 있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자기 일을 충실히 하며 중심을 잘 잡는 게 우선'이라는 교과서 답변을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