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애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by 김은서
좋아하던 가수가 죽었다.


엄마의 투병이 길어지던 중학생 무렵. 나의 무력함을 느낄 때마다 태화강변을 걸으며 노래를 들었다. 봄에는 노란 유채꽃이, 가을에는 흔들리는 억새가 가득했던 태화강변의 풍경. 살랑이는 밤바람은 특유의 강물냄새를 실어다 나의 등을 다독여 주었고 바람과 함께 나를 게워주던 노래가 있었다. 노래의 가사는 대부분 나와 관련 없는 사랑과 이별 같은 내용이었지만 맑게 간드러지던 가수의 목소리는 늘 나를 울렸다. 10여 년이 지난 최근, 그 가수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갈수록 상실의 경험이 쌓여간다.


불교철학 시간에 무아(無我)라는 단어를 배웠다. 그대로 풀이하면 자아가 없다는 뜻으로 세상에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에 나의 자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단 의미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니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이나 물건, 상황 같은 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당연한 일이고, 이상할 게 없는데… 그럼에도 슬프다. 겪을 때마다 새삼스럽다. 애정하던 가수가, 자주 가던 가게가, 의미 있던 물건이 사라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으로 가득 찬다. 이렇게 상실은 크고 작게 일상에 도사리고 있다. 앞으로 얼마다 더 많은 상실을 겪게 될까? 나는 상실 앞에서 어떻게 의연해질 수 있을까.


뾰족한 수를 찾고 싶어 '애도'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사라진 존재에 대해 슬퍼하는 것을 애도(哀悼)라 하며, 哀 슬플 애 悼 슬퍼할 도를 쓴다. 애도의 한자 뜻을 보고 생각했다. '상실 앞에서 슬퍼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 따위는 없구나...' 슬퍼하고 또 슬퍼하고 그렇게 충분히 슬퍼하는 게 상실을 이겨내는 방법인가 보다. 하지만 바삐 흐르는 삶은 우리에게 애도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의연한척해야 하는 어른은 시간이 없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슬퍼할 새도 없이 장례를 준비해 손님을 맞고, 다시 일을 나가며 그렇게 우리를 혼자 책임지기 바빴던 아빠의 모습만 봐도 그랬다. 우리는 그렇게 애도하지 못한 슬픔을 덮어두고 살아간다. 감정은 기억과 같아 덮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닌데.


우리 가족은 엄마를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서로의 상처를 조심히 대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것은 충분히 엄마를 애도할 방법이 되지 못했다. 상처받은 마음은 묵혀둔다고 치유되지 않는다. 오히려 구석에서 조용히 곪아갈 뿐이다. 그러니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곪아가게 두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을 내어야 한다. 잃어버린 사람이나 물건, 추억을 꺼내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분명 그것들은 나의 눈길과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멈춰서 나의 슬픔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눈물짓고 싶다. 그리운 대상을 꺼내어 쓸어도 보고, 만져도 보고 싶다.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가 나의 마음 안에서 마저 사라지지 않도록 충분히 애도하고 싶다. 그렇게 상실을 다루겠다. 힘이 드는 언젠가 나는 다시 당신을 생각하겠다. 당신의 노래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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