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평안의 힘

나에 삶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_평안(平安)

by 혜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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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안정감 수업
책 작가: 쑤쉬안후이


아주 오래전,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평안(平安)’이라는 단어를 유독 자주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왔다.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그렇다고 단순한 바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주 꺼내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짧은 인사말 끝에도, 하루를 정리하며 남기는 글의 마지막에도 나는 자연스럽게 ‘오늘도 평안하기를’이라는 문장을 덧붙인다. 마치 그 한 단어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배의 닻처럼 흔들림을 잡아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안정감 수업』이라는 책 소개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안정감을 습득하는 과정은 나를 지키는 힘을 다시 쌓는 일입니다.”
읽는 순간, 그동안 내가 무심코 사용해 왔던 ‘평안’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안정감’을 갈망하는 마음의 다른 표현임을 알게 된다. 평안은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 위에서 비로소 머무를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꽤 오랜 시간 안정감과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살아왔다. 항상 다음을 준비해야 했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으며, 잘하고 있다는 확신보다 잘못되지는 않았는지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성격 탓일 수도 있고, 환경이나 조건의 영향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건, 바깥의 기준에 맞추어 나를 끊임없이 조정하였고 '나'가 점점 희미해졌다는 사실이다.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며,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은 누구나 안다. 실제로 몸이 아프면 마음도 쉽게 무너지고, 경제적 불안은 사소한 감정까지 날카롭게 만든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깊은 불안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어도, 마음이 불안정하면 평안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조건이 좋을수록 ‘잃을까 봐’ 더 불안해지는 아이러니도 자주 경험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평안을 조건의 문제로만 보지 않으려 한다. 조건은 분명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정감이란 결국 외부에서 흔들릴 때마다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주는 내부의 힘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예상치 못한 사건, 계획의 어긋남에도 ‘나는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나를 지키는 힘이고,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나를 지키는 힘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선택과 태도의 반복 속에서 조금씩 쌓인다. 무리한 약속을 줄이는 일,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 연습, 비교의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는 용기.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굳게 자리 잡은 근육처럼 작동한다. 예전 같으면 쉽게 흔들렸을 상황에서도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평안을 향한 나의 집착은 어쩌면 그동안 나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의미이었는지도 모른다. 바쁘게 달리느라,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느라, 정작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살피지 못한 시간들. 그래서 ‘평안’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쓰며,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괜찮아지고 싶다고, 조금은 덜 흔들리고 싶다고. 안정감을 갖는 과정은 화려하지 않다. 대단한 깨달음이나 극적인 변화보다, 오히려 지루할 만큼 반복적인 자기 성찰에 가깝다. 오늘의 피로가 어디서 왔는지 묻고,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이름 붙여보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나 자신을 평가하지 않는 태도다. 잘하고 있느냐, 뒤처지지 않았느냐보다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인가”를 묻는 연습이 안정감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안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에 가깝다. 도착하면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불안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불안을 무조건 없애려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안이 찾아오면, ‘아, 지금 나를 지킬 힘이 조금 약해졌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쌓아 올리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아마도 평안은 완벽한 상태에서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불완전한 삶 속에서도 나를 지키려는 태도이자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평안을 향한 길은 멀고도 가깝다. 오늘도 나는 완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향으로 한 걸음 정도는 내디뎠다고 믿고 싶다. 그 정도면, 오늘 하루는 충분히 평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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