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스위치를 켜는 나의 아침

작은 루틴이 삶을 주도한다

by 혜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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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책 작가: 이해인


“좋은 인생을 만들고 싶다면 오늘 하루부터 내가 주도해야 한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거창한 결심이나 인생 계획표보다 먼저 떠오른 것이 있다. 아침의 스마트폰 알람으로 눈을 뜨고 알람을 끈 뒤 충전기 전원을 끄는 순간이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 뒤 충전기 전원 스위치를 끌 때 나는 딸각의 소리가 귀에 맴돈다. 어쩌면 나에게 ‘하루를 주도한다’는 말은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일이 아니라, 아주 작은 행동 하나를 스스로 선택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나만의 루틴을 따른다. 특별할 것 없는 동작들의 연속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충전기 전원을 끄고, 몇 초간 몸을 늘려주는 스트레칭을 한 뒤 욕실로 향한다. 그 과정 어디에도 대단한 의식이나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성공 공식은 없다. 하지만 그 평범한 흐름 속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이 시간만큼은 나의 시간이다”라는 조용한 선언 같은 것이다.

욕실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면도다. 나에게 면도는 단순히 외모를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번째 버튼에 가깝다. 면도기를 손에 쥐고 거울 앞에 서면,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정신이 서서히 현실로 돌아온다. 뜨거운 물에 적신 얼굴과 면도 크림의 감촉, 면도날이 지나가는 소리까지도 하루의 리듬을 깨우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면도가 매끄럽지 않은 날이 있다. 평소보다 수염이 잘 밀리지 않거나, 같은 자리를 여러 번 반복해서 밀어야 할 때다. 그럴 때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사실 몇 분 더 걸린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 반복적인 면도질 속에서, 오늘 하루가 왠지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갈 것 같은 예감이 스며든다. 아직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미 하루가 나를 끌고 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반대로 면도가 깔끔하게 끝나는 날도 있다. 손목의 움직임이 부드럽고, 거울 속 얼굴도 한결 정돈되어 보이는 날. 그런 아침에는 마음이 조금 가볍다. 오늘 하루를 내가 다루고 있다는 착각에 가까운 확신이 생긴다. 아주 사소한 차이지만, 그 차이가 하루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면도를 마치고 샤워를 한 뒤, 물기를 닦고 화장품을 바른다. 피부에 로션을 바르는 그 짧은 시간도 나에게는 중요하다. 급하게 대충 바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일부러 몇 초 더 시간을 들인다.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좀 더 갖는 것이다. 그리고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마친다. 이 모든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분 정도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짧거나, 반대로 너무 길게 느껴질 수도 있는 시간이다.

이 20분은 반복적인 루틴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거의 같은 순서,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단순한 반복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루틴을 통해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나의 하루를 갖기 위해 준비한다고 생각한다.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변수들, 회사에서 벌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 속에서도, 적어도 아침만큼은 내가 설계했다는 감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바꾸려면 큰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대단한 계획을 실행해야만 삶이 달라질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그렇게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흘러가고, 그 속에서 조금씩 방향이 정해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좋은 인생’이라는 말이 ‘완벽한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는 등 이 모든 일의 하루의 합’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출근 준비가 하루의 기분과 방향을 결정한다는 말은, 결국 삶의 주도권을 어디까지 내가 쥐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타인의 소식과 일정에 휩쓸릴 것인지, 아니면 잠깐이라도 나만의 리듬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인지. 그 선택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꾼다.

물론 모든 아침이 완벽할 수는 없다. 늦잠을 자는 날도 있고, 면도가 잘 되지 않는 날도 있으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은 채로 집을 나서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의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짧은 시간만큼은 “오늘 하루를 내가 시작한다”로 출발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부터 내가 주도해야 한다”는 문장은 그래서 나에게 다짐이자 질문이 되었다. 나는 오늘을 얼마나 내가 선택하며 살았는가. 누군가 정해준 흐름에 떠밀려간 것은 아닌가. 면도기 앞에 서 있는 그 몇 분 동안, 나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만으로 하루는 조금 다른 결을 갖게 된다.

좋은 인생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아마도 매일 아침의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처럼 충전기 전원 끄기, 스트레칭 몇 초, 면도를 시작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내가 주도했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이미 충분히 잘 살아낸 하루가 아닐까. 그리고 그런 하루들이 모여, 결국 내가 원하는 인생에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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