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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GUCCI



구찌 2020 FW 런웨이 장면 (참조 : 구찌 유튜브)



몇 년 전 필자가 대학에서 브랜드 디자인 수업을 진행할 때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말 그대로 빈사 상태까지 몰렸다가 재기에 성공한 애플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라고 물은 것이다. 학생 대부분은 마이크로소프트에 관해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 ‘윈도’, ‘빌 게이츠’ 등을 언급했다. 반대로 애플에 관해선 ‘독특하고 창의적이며 굉장히 멋진 브랜드’라는 답이 지배적이었다.


한 학생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애플에서는 단순히 유려한 디자인과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현실에 도전하는 모습이 비친다고 답했다. 또 자신이 애플의 제품을 사용할 때도 그런 창의적인 면모를 닮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든다고 답했다. 비단 이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대답도 비슷했다. 한마디로 애플은 깊이가 느껴지는 영적인 존재와 같았다. 반대로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이미지는 크고 대단한 회사인 것은 분명하나 애플만큼의 깊이는 없다는 대답이 일관됐다.


구찌 이탈리아 피렌체 매장 전경 (사진 참조 : 구찌 홈페이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매출 기록


애플처럼 지옥에서 천당으로 단숨에 위치를 뒤바꾸며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게 된 브랜드가 또 있을까? 패션 분야에서 2017년 구글 검색 건수 3500만건 이상으로 1위를 차지했던 ‘구찌(Gucci)’라면 이와 견줄 수 있을 것이다. 구찌는 현재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의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모회사 케링그룹 소속이다. 그룹 매출의 80%를 혼자서 올리는 독보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구찌는 루이뷔통, 샤넬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매출을 올리는 럭셔리 브랜드가 됐다. 2019년 3분기 기준 분기 매출이 273억유로(약 35조3000억원)를 기록하며 전 분기 대비 11% 증가세를 보일 정도로 성장세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그런데 사실 구찌가 이렇게 화려하게 부활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014년까지만 해도 구찌의 연 매출은 35억유로에 불과했다. 또한 5년 넘게 매출 감소가 지속되면서 더 이상 고급 브랜드가 아니라 보급형 매스티지 브랜드로 전락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해 말 신임 대표로 부임한 마르코 비자리가 12년간 디자이너로 일하던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내부 승진시키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구찌 수석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레(사진: 보그코리아)

1972년생인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펜디의 액세서리 디자이너 출신이긴 하지만 이렇다 할 포트폴리오가 없는 무명에 불과했다. 임명 당시 내부에선 미켈레가 구찌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엔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파다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구찌는 미켈레를 중심으로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새로운 구매 목표층을 확보해 브랜드 정체성을 새롭게하는 리브랜딩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과거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톰 포드가 구축한 쾌락주의와 섹시 이미지를 과감하게 탈피했다. 톰 포드의 전략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시대의 조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신 경계와 규칙이 없는 프리스타일 디자인으로 변모했다. 그동안 패션산업에서 지배적으로 깔려 있던 이분법적 구조와 문화적 금기를 깨기 시작한 것이다.


 성별이나 인종, 국적, 문화 등의 경계를 초월하는 한편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활용해 일종의 ‘대안패션’ 기조를 선보였다. 나아가 기존 럭셔리 브랜드에서 볼 수 없었던 하위문화, 즉 스트리트 브랜드나 빈티지 브랜드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특성마저 끌어안았다.


구찌에서 출시된 다양한 상품들 (사진 참조 : 구찌 홈페이지)

그렇다면 미켈레는 단순히 구찌의 전통을 거부하고 혁신적인 면모만 고집했던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창업자 구찌오 구찌의 이니셜에 따온 상징적인 로고를 다양한 색상과 확대된 패턴으로 변경하면서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또한 로고 외에도 브랜드 정체성을 상징하는 패턴이나 심벌, 패치워크 등을 구찌의 오랜 역사 속 아카이브에서 복원해 리브랜딩에 적절하게 활용했다.


따라서 단순히 전복적인 변화만으로 성공했다기보다는 브랜드가 지닌 오랜 신뢰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마음속에 의미를 더해줄 이야기를 덧붙여준 셈이다. 특히 패션 상품을 하나의 아이템으로 인식하고 자신만의 편집권을 행사하는 성향이 강한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일종의 대안적 스타일을 제안한 방향이 주효했다.



과거 이미지 탈피한 디자인 혁신


나아가 구찌는 브랜드를 알리고 소통하는 전략도 과거와 달리 밀레니얼 세대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꾸준히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화제에 오르는 횟수를 늘리는 한편, 신진 예술 디자이너와 협업해 온라인 한정판매 컬렉션을 내기도 한다. 광고 체험 및 아트 프로젝트 등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에 특화된 콘텐츠도 양산하고 있다.



최근 구찌는 디즈니와 함께 미키마우스 등의 캐릭터가 프린트된 가죽·신발 제품 등을 선보이면서 끊임없이 상품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나아가 온라인 통로를 적극적으로 판매에 활용하면서 국내에서는 카카오톡 기프티콘으로 구찌의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구찌의 이러한 행보는 ‘버버리’의 리브랜딩 사례와 비교하면 많은 명품 브랜드가 선택하는 전술로 볼 수도 있다. 버버리도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유명 연예인이나 유력 정치인이 입었던 옷으로 상징적인 전통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특유의 타탄 체크무늬와 베이지 색상을 제외하면 새로운 시대의 소비자들에게 더 이상 아무 매력이 없는 브랜드가 되고 말았다. 본고장인 영국에서조차 중년들이 입는 노후한 브랜드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임명되고 나서 다양한 색상의 패턴으로 버버리의 체크를 선보이는 한편, 남발되고 있던 라이선스 문제를 해결하고 최고급 라인을 만들면서 소비자들에게 새롭게 다가갔다.


일각에서는 구찌의 매출이 다시 주춤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밀레니얼 세대의 급격한 소비패턴 변화를 쉽게 좇아갈 수 없기 때문에 또다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구찌는 버버리와 달리 이 새로운 세대에 보다 더 특화된 통합 브랜딩 커뮤니케이션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젠더리스’와 ‘시즌리스’ 같은 새로운 시도로 패션계의 관행에 반기를 드는 한편 이를 지지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충실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빠른 유행에 민감한 시대에 구찌는 또 한 번 다양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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