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지 않은 정답보다, 나에게 닿는 오답을 쓰기로 했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속도와 효율을 거의 신념처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림은 줄여야 할 대상이 되었고 설명은 요약되었으며 맥락은 없어도 되는 것으로 취급되었어요.
지난 글에서 저는 매끄럽게 흘러간 하루가 왜 유난히 아무 장면도 남기지 않는지에 대해 썼습니다.
분명 바쁘게 움직였고 할 일도 다 끝냈는데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은 거의 없는 날들에 대해서요.
그 글을 쓰고 나서 질문 하나가 계속 남았어요.
그렇다면 생각은 어떨까.
이제는 AI에게 인생의 의미 같은 질문을 던져도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문장으로 정리되어 돌아옵니다.
심지어 매끄럽고 안전하고 평균적으로 옳아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문장들도 많습니다.
무수히 많은 데이터 속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결과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그 답들 앞에서 자주 멈춥니다.
이 문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과
이 문장이 나에게 닿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됩니다.
이렇게나 정답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부족하고 주관적이고 때론 오답같은 내 생각을 써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지가 능력의 척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몇 번의 검색만 거치면
필요한 정보 대부분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이 데이터는 왜 불편한지,
이 기술은 왜 마음에 닿지 않는지,
모두가 편하다고 말하는 방향이 왜 나에게는 숨 막히는지.
이 질문들에 대해서 AI는 답을 주지 못합니다.
AI는 결론을 내려줄 수 있지만 질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찾은 문장을 내 삶의 맥락 위에 한 번 더 올려놓아 보는 일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지금의 나에게 이 문장이 유효한지,
아니면 평균적으로 안전하기만 한지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글쓰기는 생각을 잘 정리하기 위한 도구이기 이전에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정답이 넘쳐나는 환경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내 생각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논리는 너무 빠르고,
또 그럴듯하게 밀려오니까요.
그래서 저는 글을 씁니다.
대단한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디까지가 내 생각이고 어디서부터가 남의 말인지 구분하기 위해서,
또 기록하기 위해서.
내가 내린 주관적인 정의들,
조금은 찌질해서 굳이 말하지 않았던 진심,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불안들.
이런 것들은 어떤 데이터로도 대신 저장 할 수 없습니다.
퇴사를 단순히 비워진 상태가 아니라 나를 설계하는 R&D 기간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일 지 모릅니다.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이 시간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이 감각은 직접 생각하고 기록하지 않는다면
누군도 대신 정리해 줄 수 없습니다.
또, 어쩌면 독자는 정답보다 공명을 원한다고 믿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정의한 브런치는 정보를 찾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타인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보는 장소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와 닮은 망설임이나 균열을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글 앞에 머물지 모릅니다.
AI의 글에는 결핍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전하지만 오래 남지 않아요.
반대로 조금은 확신이 부족한 문장과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생각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체온을 느낍니다.
그 불완전함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닿는 순간들은
한번쯤 경험해 봤을 거에요.
그래서 AI 시대의 글쓰기는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고 정의해보고 싶습니다.
세상이 더 빠르고 정확한 답을 요구할수록
저는 오히려 조금 느리게 생각을 적어봅니다.
문장 사이에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을 남겨둡니다.
이 생각이 맞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정답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겠지요.
정의되지 않음으로써 정의를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정답 대신 생각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