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힘든 한 해였어요.
힘든 시기일수록 감사를 놓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12월 어느 날 만난 지인으로부터 감사일기 작성 밴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고,
감사하게도 곧 초대를 받았지요.
그래서 2026년 1월부터 지인들로 구성된 감사일기 작성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 1~2회, 세 가지 정도의 감사한 일을 기록해요.
퇴사까지 2주 정도 남은 시점에 작성한 감사일기를
브런치에도 남겨봅니다.
1.
퇴사일이 임박해 연차 소진을 시작했어요.
여러 날을 붙여 쉬는 건 아니지만,
쉬고 싶을 때 하루씩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주중에 방문한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이걸 정말 무료로 봐도 되나’ 싶은 전시를 발견했어요.
금기숙 디자이너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완성도와 밀도가 높아 한참을 서서 보게 됐고,
이런 전시를 비용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어요.
제주도에서 거주하던 시절,
나는 내가 어떤 환경을 욕망하는 사람인지 알게 됐거든요.
도시에 살고 싶어 하고, 잘 관리된 시설과 문화적 인프라를 누리고 싶어 한다는 것.
그래서 서울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나에게 한국에서 태어났고 수도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커다란 감사라는 걸 다시 떠올렸어요.
2.
최근에 건강검진을 했습니다.
혈압은 83/30, 맥박은 45. 전저점을 돌파했는데요.
총 세 번을 측정했지만 이완기 혈압은 끝내 50을 넘지 못했습니다.
작년에 심전도 이상으로 정밀 검사를 받았었는데
다행히 부정맥은 아니었고 서맥 판정을 받았습니다..
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면 약이나 치료는 필요 없다는 설명을 들었지요.
숫자로만 보면 불안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통증 없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몸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분명해졌습니다.
몸의 감사함을 잊지 않게 해주는 신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점이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3.
마음이 유난히 힘든 퇴근길에 들르던 로또 가판대가 있어요.
오늘의 힘듦이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찾던 곳이었는데,
유난히 인상 좋은 아저씨가 늘 웃는 얼굴로 반겨주던 곳입니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2주쯤 앞둔 어느 날,
오랜만에 들렀더니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계셨어요.
지인으로 보이는 다른 손님과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됐는데, 아저씨는 주무시다 소천하셨다고 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의 아주머니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어 보는 나도 마음이 아팠어요.
괜찮으신지 마음에 걸려 간간이 들러 자동으로 구매하곤 했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눈가가 발갛던 아주머니는
조금씩 상태가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어요.
어제 오랜만에 구매한 로또를 맞춰보니
그중 하나가 4등에 당첨됐습니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만원 이상의 당첨금은 처음이라 얼떨떨하면서도 기뻤어요.
오늘은 오랜만에 그곳에 들러볼 생각입니다.
아주머니가 조금 더 괜찮아진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내 억눌린 감정의 바닥에는 억울함이 꽤 깊게 깔려 있습니다.
챙김 받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늘 타인을 먼저 챙겨야 했던 환경에서 자라
남을 살피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버거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향해 다시 한번 마음을 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이번에는 솔직하게 감사해 보기로 했어요.
4.
매주 월요일은 기상이 빠릅니다.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투덜거리며 요가를 시작했어요.
문득 이렇게 추운 날, 실내에서 요가를 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을 나서 출근길에 봉은사에 들렀어요.
아침의 고요한 풍경을 잠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봉은사를 등지고 서면 사찰의 처마와 고층 빌딩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뷰를 참 좋아해요.
감사함으로 벅찬 아침입니다.
감사일기를 쓰며 느낀 것은 둘러보면 감사할 것들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걸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날의 마지막 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