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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콩 Apr 15. 2023

Call me My name.

내 이름을 불러 준다면


아직 해도 뜨지 않아 고요한 아침.

엄마는 소프라노 가수처럼  높은 옥타브로 나를 부른다.


‘선우야’, ‘선우야’

어둠 속에서 시간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다. 잠꼬대처럼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어휴… 지겨워)‘제발 좀 그렇게 부르지 마라고.


 ‘선우’는 내 첫째 아이의 이름이다.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는 까먹은 건지. 귀찮은 건지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대신 나를 ‘밥~통’으로 불렀다.


아이 젖 먹일 시간이 되면, 엄마는 고함을 친다.  ‘밥~통 어디 갔노?’ ‘밥~통’ 황당해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서글펐다. 안 그래도 밤중 수유로 깊은 밤을 자지 못해 다크서클이 점령한 눈 밑. 떡진 머리를 보며. 귀신같은 몰골이 따로 없구나.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데 난데없이 ‘밥통’이라는 새 별명을 붙여 주시다니 엄마가 가끔은 남보다 낯설고 멀게 느껴진다.


고민하는 사이 이미 수유 쿠션을 펼치고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만큼은 엄마의 눈에는 내가  ‘밥’으로 보였던 것일까? 까무룩 잠이 들다 가다, 난생처음 듣는 단어에 기분이 이상했지만, 너무 예민하게 보일까 봐, 그저 엄마가 내민 밥상 앞에서 ‘죄 없는 미역국’의 꼬투리를 잡고 타박을 시작한다.


‘이기 무슨 냄새고?’

‘생미역으로 끓였나? 참나… 너무 비리다니까. 마른미역이 수북한데, 만다고 그라노?, 병원에서 산모는 싱겁게 먹어야 된다고 하더라이가. 완전 소태네. 소태. 소금을 그냥 들이부었지?


어수선한 부엌 한구석에 기대어 서서 큰 대접에 미역국을 후다닥 말아먹고 있던 엄마는 말없이 밥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다시 물을 한 대접  붓고, 다시 가스레인지 불을 올리며 마음도 함께 졸인다.  


관절염과 당뇨와 혈압에 시달리는 육십 대 초반의 친정엄마는 나의 출산과 산후조리를 위해 우리집에 강제 수감되었다.


그 오래전 우리를 키웠던 육아 기억을 더듬어, 신생아 목욕시키기, 미역국 끓이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등 끝나지 않는 나의 가사노동을 대신 수행하고 있다.


엄마의 돌봄 노동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 ‘딸 가진 죄인‘ 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손목에 힘이 생길 무렵, 엄마는 겨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엄마의 일상으로 돌아가 달달한 믹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아침 드라마를 볼 여유를 되찾았다.      


첫째가 돌이 될 무렵,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경단녀’의 낙인을 피하기 위해 틈만 나면, 취업 사이트에 지역과 나이, 업종을 설정하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준비했다. 직장이 생기면 그곳에서는 모두가 나를 예전처럼 ‘진희씨’ 라고 불러 주겠지. 나만의 책상과 컴퓨터도 생기겠지.


‘이제 목이 늘어진 티셔츠에 밥풀 안 붙이고, 가끔은 영화관에도 갈 시간이 생길 거야.’라는 기대에 잠시 설렜다.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간에 혼자 컴퓨터 앞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을 펼친다. TV에서 본 그녀들처럼 완벽하고 싶었다.


서툰 엄마가 아닌 ‘빛나는 자리’ 어딘가에 있을 나의 자리를 찾고 싶었다. 수십 곳이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단 한 곳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갑자기 잠이 오는지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달래 시간이 없어, 급하게 아이를 포대기에 업었다. 신발장에 묵혀둔 먼지가 쌓인 구두를 닦아 신어 본다. 잠시 휘청거린다. 이제 나는 나만의 무게가 아닌, 아이의 무게를 함께 감당해야 하는 엄마였지?      


다음날 아침,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준비했지만, 예상보다 출발이 늦다. 택시를 타고, 겨우 시간에 맞춰 면접장에 도착했다. 옷매무새 한번 고치고, 눈에 눈곱이 붙어있는지 때려고 하는 순간. 담당자가 나를 부른다.      

‘3번 박진희 님 들어오세요.’       

어색하게 의자가 앉고, 면접관은 나를 보지 않고, 서류만 열심히 보다. 입을 연다.      


“아이들이 어린데, 야근할 때 아이를 돌봐 줄 곳이 있나요?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참, 대책 없네요.”     

면접관이 그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우물쭈물하다 보니, ‘가까운 곳에 친정어머니가 계셔서 급할 때는 전화해서’ 말을 더듬으며 겨우 대답을 마치고, 면접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보기 좋게 낙방했다.      


그렇게 또, 또, 지겨울 만큼의 수많은 면접을 보고, 또 낙방하고, 시간이 흘러, 계획에 없던 둘째 지우를 임신했다. 그 시절 나는 단란한 가정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나와 친정엄마는 여전히 ‘밥통, 미역국이 짜다. 싱겁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둘째 지우 산후조리를 같이 버티고, 힘을 겨루며 시간이 흘렀다.      


이제 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외출하는 것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고, 여전히 엄마는 나를 ‘선우’라고 부른다. 이제 60대 중반의 엄마에게 다시 한번 부탁했다. ‘엄마, 나 이름 있잖아.’ 선우‘는 엄마 손자, 내 아들 이름이고, 응? 제발 좀 …….      


엄마는 애절한 눈빛으로 말한다. ‘참, 별나다. 그게 뭐 중요한 일이라고?’ 엄마는 홈쇼핑에 나오는 자반고등어를 바라본다. 입맛을 다시며, 동그랗게 열어 나를 부른다.      


“......(작게) 지우야. 고등어 한 손에 저 가격이면 엄청 싸네, 우리 저거 사다 놓을까?”


생각지도 못한 둘째 이름으로 엄마는 나를 부른다. 우리 사이에는 3초간 정적이 흘렀다. 나는 괜히 화가 나 TV화면을 잠시 노려보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엄마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현관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이제 어디로 가지? 막상 나왔지만 이 몰골로. 이 마음으로 갈 곳이 생각나지 않는다. 무작정 강둑길 따라 길을 걷는다. 말라버린 풀들도 부스스 소리내며 흔들리고. 보랏빛 제비꽃도 한창이네.


'끼룩끼룩'. '깍깍' 머리 위 하늘로 날아가는 저 새들도 제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엄마가 뭘 잘못한 건 아닌데. 나의 산후우울증이 엄마의 말 하나에도 쉽사리 상처 받은 게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겪었던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누구보다 나를 열심히 공부시킨 엄마. 없는 살림에도 내가 필요하다고 한 건 무리해서라도 장만해 주고 싶었던 사람. 막상 대학원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한다고 했을 때 가장 반대 한 사람이 엄마인데. 큰 마음 먹고 시작한 공부인데. 결혼은 좀 더 미루어도 괜찮다고. 내가 고집부려 결혼하고 애기 낳고는 가장 옆에서 고생하는 엄마를 탓한 걸까.


나와 엄마 그리고 세상의 아이를 낳은 모든 여자들은 이제 영영 이름을 잃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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