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adivostok in Russia_2016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지 올해로 15년 차가 되었다.
전공한지는 오래됐지만 '패션 디자이너'로써 내 이름을 걸고 컬렉션을 만들었던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6년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하면서 개인으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경험들을 쌓아왔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 패션 콘테스트'이다.
해외 콘테스트도 저마다의 접근방법이 다양하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러시아는 워낙 폐쇄적인? 분위기라 정보를 얻는데 한계도 있고, 개인이 혼자 참가하는 것도 어렵다. 반드시 러시아 소재의 패션과가있는 학교나 인물의 추천을 받아야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추후에 올릴 '모스크바 패션쇼'편에서 언급할 내용인데, 러시아에서 제일 큰 무대인 '모스크바 패션쇼'는 러시아 지역 콘테스트에서 수상을 한 사람만 모스크바의 무대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그 자격을 얻어 러시아 패션쇼의 끝인 모스크바 패션쇼에 컬렉션을 올리기도 했다.)
2015년도에 대학교 졸업작품 패션쇼를 하면서 해당 작품을 담당 지도교수님의 지도하에 우리 학교와 교류하고 있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V*U*S에서 단체 패션쇼를 올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교 소속으로 2016년 콘테스트 참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참가분야는 총 5개
Прет-а-порте (프레타포르테)/
Дебют(디부트) /
Прет-а-порте де-люкс(프레타포르테 럭셔리) /
Бизнес-идея(비즈니스 아이디어) /
Авангард (Перфоменс)(아방가르드(퍼포먼스))이다.
(러시아어는 이때 이후로 관심이 있어 알파 비트와 간단한 인사 정도만 공부했다.
나중에 제대로 배워보고싶다하길 N년째..)
나는 'Прет-а-порте (프레타포르테)'부문으로 총 5벌의 컬렉션을 준비했다.
컨셉보드와 스타일화, 컬렉션 설명, 필요한 모델 수 등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고,
컬렉션 준비 기간은 대략 한 달이 주어졌다. 당시 대학원을 진학하며 동시에 조교로 근무하던 터라 퇴근 후 야간 잔류를 하며 틈틈이 만들었다.
한 달의 기간 동안 학교 실습실과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준비하고, 출국 당일 아침까지 의상을 손보다가 결국 밤을 새웠다. 컬렉션 짐은 여러 번 확인하면서 잘 챙겼지만 정작 내 개인 옷 짐은 어떻게 챙겼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런 정신에 공항 도착시간도 계산을 잘못해 약속시간보다 3~40분 정도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급하게 짐을 부치려 하는데 함께 출국하는 헬퍼랑 소통 미스로 짐을 하나 줄여햐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내 짐을 하나로 줄이고 캐리어 보관소에 돈 내고 맡겨야 했고, 초과된 짐은 양손에 한가득 들고 타게 되었다.
시작부터 일이 꼬이는 바람에 정신이 더 없었지만, 그런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여유 있게 만난 터라 짐을 해결하고도 여유가 남아 아침식사와 커피 한잔을 할 수 있었다.
탑승시간이 다 되었고, 한국에서 2시간 반 소요되는 가까운 러시아행 비행기로 몸을 실었다.
가까운 거리라 기내식은 안 나오는 줄 알았는데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가 나왔다.
소고기와 야채, 연어샐러드와 치즈케이크, 빵이 나왔는데, 아침을 먹은 배가 꺼지지 않아 거의 남겼다.
영화 한 편 보면서 식사하고 잠깐 눈 붙이고 나니 벌써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닫힌 창문으로 '여기가 러시아구나'라는 걸 알려주듯 공기가 달라졌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나오니 패션쇼 주최 측에서 헬퍼를 보내주셨다.
대기하던 승합차에 타고 40여분을 달려 블라디보스토크 중심지에 위치한 V*U*S에 도착했다.
3박 4일 동안 묵을 기숙사로 안내받았는데 기숙사는 학교 학생들 뿐만 아니라 외부인들도 돈을 내고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시스템은 관리자에게 방 키를 받고 외출할 때마다 반납하는 구조였다. 키를 받을 때마다 발 번호를 말해야 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어의 '러'자도 모르던 때라 폰에 숫자를 적어 보여주거나 손으로 바디랭귀지 했다.
두 명이 한 숙소를 썼는데 거실 하나, 방하나, 침대 두 개, 화장실 하나인 곳을 주셨다.
옷장 하고 TV, 냉장고, 소파도 있고 생각보다 넓어서 좋았으나 화장실이 너무 놀라웠다.
옛날 시골집에서나 봤을까 싶은 구식 변기에 너무 좁고 휴지도 갱지, 씻는 욕실도 한 사람 겨우 서서 씻을 수 있는 정도에 샤워 커튼만 있어 물이 다 튀었다. 숙소도 전반적으로 어둡고 노란 조명이라 눈이 침침했다. 얼른 나가서 화장실 휴지를 사 와야지 생각하며 정신을 차리고 저녁식사를 하러 카페테리아로 나갔다.
학교에서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헬퍼에게 부탁해 근처 마트를 갔다.
식수는 공항에서 오는 길에 탄산수와 일반 생수를 샀고, 휴지와 아침에 먹을 요구르트 등 이것저것 구입했다. 생각보다 품목도 다양해 뭘 사야 될지 모를 정도로 마트 규모가 컸다.
여유 있게 아이쇼핑도 하고 돌아왔는데
홀에서 갑자기 VIP 행사가 시작되었다. 사실 마트에 가기 전에 이곳에서 행사가 있다고만 들어서 가만히 숙소에 있는 것보다 행사 구경을 하고 싶어 먼저 구경시켜달라고 했었는데 복장이며 아무런 준비가 안 돼있었다. 대부분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득했고, 곳곳에 칵테일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이에 슈퍼 비닐봉지를 든 우리...
집 근처 마트 패션을 한 우릴 바라보는 행사 관계자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민망함을 뒤로하고 얼른 숙소로 돌아가 격식 있는 옷과 신발을 찾아보았지만 이런 대규모 행사가 있다고 사전에 전혀 들은 바가 없어 준비해온 게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최대한 깔끔하게 입고 행사장으로 갔다.
쇼는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긴 했으나 밤 10시가 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VIP들끼리 보고 즐기는 분위기라 헬퍼들과 그곳을 빠져나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