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하기
우리 마을은 50% 이상이 성이 "법"씨이다. 옆집은 큰 할아버지 쪽에 둘째 아들의 장남이 살고 앞집은 거기 형수의 삼촌이 살고 도로 건너에는 그 집의 시어머니가 사는 그런 마을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 애들을 그나마 조금 바운더리를 넓게 두고 키울 수 있는 게 이 마을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큰애가 4학년 때 시골로 이사를 했는데 한창 발발거리고 돌아다닐 때라 밥때에 찾으러 길을 나서면 "니 아들 저 짝에서 놀고 있다"라고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말을 해줘서 단방에 찾아내곤 했다. 시골 마을 전체가 안전했다. 처음에는 우리 집 밥숟가락 젓가락 개수도 알 기세여서 당황했는데 지금은 어디 다녀오고 우리 동네가 보일 때면 마음이 파스텔톤으로 변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한다. 마을 전체가 나를 다 알고 도착하면 인사하기 바쁜 정겨운 일상이 4년 차가 되었으니까.
마을 할머님들을 알고 싶은 게 참 많다. 할머니의 남편도 성이 "법"씨 이기에 나는 큰엄마라고 불러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일 안 하고 왜 갑자기 시내 살다가 시골로 이사 왔냐고 그렇게나 물어보신다. "남편이 할머니 살아계시고 해서 오고 싶다고 해서요. 시내 멀지도 않잖아요^^ 그리고 남편이 참 아기자기해요. 저랑 다르죠 호호. 꽃 키우고 나무 키우고 가꾸고 물 주는 정원이 갖고 싶어서 시골로 이사 왔어요."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저렇게 얘길 하지만 나는 시골로 가기 싫다고 했다. 정말 정말 정말이다.
아궁이에 밥 해 먹는 집이 우리 남편 시골동네인데 중국식 아파트에서 잘 살다가 남편 고향인 시골로 이사 오게 되었다.
아는 중국 지인에게 사진 찍어 우리 집을 보여주니 "어디 회족이 사는 그런 동네보다 더 하네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회족이 뭔지 모르는데 중국 어디 소수민족 사는 동네인가 보다.
코시국이었고 남편이랑 나는 인터넷만 되면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에 지장은 없었다. 그리고 살던 집이랑 거리가 13킬로 정도였다. 그런데 완전 깡시골이다..
그렇게 우리 남편이 원하던 마당 있는 집이 생겼고 나무를 그렇게 사다 나르고 심고 벽돌을 쌓고 그랬다. 한국분들이 생각하는 잔디가 깔리고 데크가 있으며 자갈이 깔린 마당은 아니다. 그냥 시멘트가 깔려있는 폭 3미터 정도 되는 기다란 마당인데 밤낮으로 가꿔댔다.
그런데 갑자기 시골에 있는 시부모님 땅에 가서 슈퍼를 차린다. 사정이야 있었지만 슈퍼를 차리고 뒤에 운동장만 한 터를 가꿔대기 시작한다.
가꾸기 시작한 지 3년째인데 아직도 나무를 사 오고 가꾸고 시멘트를 바르고 돌을 바닥에 다지고 비닐하우스도 만들었으며 닭을 키우며 계란을 받아내고 개도 있고 토끼도 있고 거위도 있었으며 얼마 전에는 산양새끼도 받아냈다. 참 자연을 사랑한다. 좋아하니까 그냥 둔다. 일단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질 않는다. 자기의 소중한 취미이니까 하나하나 돌을 쌓고 묶고 자르면서 손수 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시작인 것이 가축 뭐 가둬놓고 키우면 되는데, 누렁이와 검둥이를 데리고 온다. 한창 강형욱 님이 개 훌륭에서 찬란한 빛을 받으시며 일할 때였다. 너무 열심히 본 탓일까? 우리 집 개들이 마당에 묶여있는 게 눈에 확 들어오게 돼 대형견들과 나의 산책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누렁이 같이 생긴 개가 먼저 왔는데 시골 이웃이 3년 키우다가 못 키우겠다며 우리 집에 왔고 로트와일러 믹스인 그 검둥이 강아지는 생후 2개월에 우리 집에 오게 된다. 그 당시 나는 셋째 육아에 전념 중이어서 그 강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그 개들이 온 지 1년이 지나서였을까. 나와 대형견들의 산책이 시작되었다. 셋째도 유치원에 적응했고 낮에 할 일이 없게 되자 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리드 줄을 하나도 개 구입하고 입마개도 구입했으며 가슴줄도 산다. 그렇게 시작된 대형견들과의 산책.
입마개를 했더니 사람들이 더 무서워했다. 시골이라 그랬던가 이 개는 무는 개냐면서 더 기겁을 했다. 산책할 때 입마개를 풀었다. 시골이다 보니 산책할 때 사람이 없다.
문제는 들개들이었는데 너무 서로 달려들어 싸우는 거였다. 정말이지 힘이 너무 세서 힘에 부쳤다. 그래서 산책을 우리 가게 주변으로만 하게 됐다. 가게 옆에 공터가 있는데 거긴 축구 운동장 2배 정도 되는 것 같다.
가끔 양들이 와서 풀을 뜯어먹고 논다. 그 시간만 피하면 사람도 양도 볼 수가 없다. 들개들도 거기에는 먹을 게 없어서인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서 풀어놓고 뛰놀다 돌아오곤 했다.
그 공터는 두 달 전에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그 운동장만 한 공터는 막아놓은 상태지만 지금도 견사에서 탈출하면 거기 근처에서 놀다 오곤 하는 거 같다. 우리 누렁이는 탈출할 수 있는데 늘 나를 봐준다. 그래서 넘어오지 않는데, 내가 검둥이랑 산책을 가려고 리드줄 잡으면 자기도 가야 된다고 넘어서 나온다. 너는 금방 다녀왔잖아?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검둥이는 견사에서 나오지 못해서 늘 누렁이를 먼저 산책시키지만 누렁이는 항상 뛰어넘어 나온다. 누렁이의 활동량은 정말 감당할 수가 없다.
검둥이는 이제 3살이다. 누렁이는 이제 곧 7살이다.
몸 쓰는 육아가 끝이 나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게 된다. 먹을 것을 매일 배달하는 딸 둘 앞에서도 순종적이다. 하지만 검둥이는 로트와일러 믹스인 것 같다. 로트와일러 위험한 종이라는 건 정말 몸소 체험했다. 공터에서 뛰놀다 갑자기 뛰더니 야생새를 물어왔고 뛰더니 길고양이를 물었고 땅을 파더니 고슴도치를 물어왔다.. 고슴도치를 문 입가에는 피가 조금 맺혔지만 그런 건 상관이 없는 듯했다. 태생이 그런 걸 어쩌랴.. 고슴도치와 길고양이 또 야생새를 물어서 미안하다. 그래서 리드줄을 꽉 잡기로 했지만 자기 속도를 못 이기는 대형견을 보자니 또 마음이 짠했다. 도시에서는 정말 키워서는 안 되는 견종인 것 같다.
우리 누렁이는 엄청나게 독립적인데 점프력이 어마어마하고 뛰어다니면 슈퍼카를 연상케 했다. 하지 말라면 멈출 줄도 아는 총명한 개다.
대형견과 산책 2년 차 너무 사랑하는 반려견이 생겨서 좋지만 이 마저도 우리 남편은 너무 위험하고 혼자는 힘이 달리는 일이라면서 혀를 찬다. 남편은 정원을 가꾸어야 하니 마당에는 풀어놓을 수가 없으며 마당에 묶어두어도 안 돼 또 가게 앞에 나무에도 묶어두면 안 돼 등등 조항이 너무나 많아서 매번 충돌한다.
올 3월부터는 남편이 일이 생겨서 낮에 혼자 가게를 보게 돼 낮에 산책을 할 수 없게 됐지만 밤산책도 좋다.
시골 와서 살기 싫다고 얘기했지만 대형견 키우는 재미가 아주 좋다.
그 밖에도 우리 마을 사람들은 각자 가꾸는 땅이 있는데 파 마늘 땅콩 옥수수 밀 오이 호박 무 각종 채소가 나오는 시기마다 나는 그 은혜를 받으면서 유기농을 먹는다. 먹을 것에 진심은 조금 부족해도 유기농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으랴.
한국에 사는 내 또래 애들은 모를 시골의 삶을 경험 할 수 있어서 축복 받은거 같기까지 한데 내 아이들한테도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