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샴푸 3

집 나간 머리카락이 돌아왔다.

by 무딘식칼

그녀는 무언가 무거운 느낌에 잠에서 깼다.목이 뻐근했다. 베개가 이상하게 높아진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뭔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잠이 덜 깬 채로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그대로 굳었다.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이 있었다. 엄청나게. 비정상적으로. 베개를 덮고 이불 위까지 흘러내릴 만큼.

그녀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발에 밟혔다. 자기 머리카락인데 발에 밟혔다.

거울 앞에 섰다.

'…….'

흑인 두피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머리가 어깨를 넘어 허리까지 내려왔는데 숱이 어찌나 많은지 옆에서 보면 머리통이 몸통보다 컸다. 사자 갈기도 이것보다는 얌전할 것 같았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기절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욕실 타일 바닥이었다. 머리숱때문에 욕실바닥에 쓰러지고도 타격이 없었나보다.

일어나서 다시 거울을 봤다. 여전했다. 꿈이 아니었다.

'닥터옥 이 새끼.'

핸드폰을 집으려는데 손목이 이상했다. 팔에 솜털이 있던 자리마다 뭔가 올라와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다봤다.

다리였다. 다리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면도한 지 사흘밖에 안 됐는데 마치 몇 달 치가 한꺼번에 자란 것처럼 복슬복슬했다.

겨드랑이를 확인했다.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녀는 아랫배 쪽을 천천히 내려다봤다.

"……아 씨."

일단 핸드폰을 집었다. 닥터옥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없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전화번호란이 아예 없었다. 대표번호도, 팩스도 없었다. 주소만 달랑 하나, 그리고 온라인 상담 버튼만 있었다.

눌렀다.

[현재 대기 인원 : 999,999명 / 예상 대기 시간 : 약 98시간]

그녀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머리카락이 소파 등받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게 없었다. 홈페이지를 이리저리 눌러보다가 후기란을 열었다. 새벽부터 글이 폭발하고 있었다.

★☆☆☆☆ 이게 무슨 나노샴푸야 좀비샴푸지 미친. 죽은 머리카락이 집으로 돌아오다니! 환불요.

ID: 좀비샴푸실화냐


★☆☆☆☆ 머리숱 늘었어요. 근데 코털도 늘었어요. 콧구멍이 막혔습니다. 환불 원합니다.

ID: 코털요정_44


★☆☆☆☆ 20년 넘게 대머리로 살았는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까 머리가 생겼습니다. 처음엔 기뻤어요. 근데 애기가 아빠를 못 알아봐요. 어린이집에서 울면서 전화왔습니다. 머리 없애는 방법도 알려주세요.

ID: 아빠맞아요제발


★★☆☆☆ 효과는 확실히 있음. 근데 저 여자거든요. 턱에 붙었어요. 수염처럼. 면도해도 다음날 또 나요. 닥

ID: 수염난여자실화


★☆☆☆☆ 샴푸 좋다고 친정엄마한테 선물했는데 엄마 눈썹이 없어진 지 오래됐거든요. 그게 다시 났어요. 눈썹이. 근데 콧수염도 같이 났어요. 엄마가 저한테 화났어요.

ID: 효도는개뿔


★☆☆☆☆ 이 시발놈들아 전화도 없고 온라인 대기만 있고 이게 모냐. 저주냐? 내가 뭘 잘못했냐. 당장 연락해.

ID: 빡친다진짜로


★☆☆☆☆ 고객센터 전화번호가 왜 없어요????? 주소만 있으면 직접 가라는 거예요????? 진짜로 갑니다 나 지금 갑니다.

ID: 간다고했잖아요


★☆☆☆☆ 저주 맞죠? 이거 저주 샴푸 맞죠? 무당한테 물어봤더니 맞대요. 환불 안 해주면 저도 뭔가 할 겁니다.

ID: 무당도인정함


후기를 읽다가 발끝에서 뭔가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내려다봤다.

엄지발가락이었다. 엄지발가락 옆 모공에서 머리카락 한 올이 조용히 파고들고 있었다. 방금 어딘가에서 기어온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한참 발가락을 바라봤다.

[대기 인원 : 999,999명]

그때 화면 위로 팝업창이 떴다.

⚠️ 닥터옥 긴급 공지

불편을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지금 즉시 본사를 방문하시면

① 왕복 교통비 전액 지원

② 위로금 지급

③ 시술 전 원래 모습으로 완전 복구 24시간 운영 / 언제든 방문 가능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닥터옥 공식 문자] 고객님, 긴급 안내드립니다. 현재 발생한 불편 사항은 본사 방문 즉시 해결 가능합니다. 오늘 방문 고객에 한해 교통비 전액 및 사례비를 지급하며, 샴푸 사용 이전 상태로 완전 복구해드립니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000 닥터옥빌딩. 24시간 운영하오니 편하신 시간에 방문해 주세요.

그녀는 팝업창과 문자를 번갈아 봤다.

'원래 모습으로 복구.'

그녀는 샴푸병을 집어들고 한참 바라보다가 싱크대 밑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쿵.

그리고 다시 꺼냈다.

'100프로 환불이라고 했지.'

그녀는 베란다 창고 문을 열었다. 홈쇼핑에서 시킨 6병 세트, 아직 뜯지 않은 것들이 박스째 쌓여 있었다. 그녀는 박스를 끌어안고 현관으로 나갔다.

머리카락 뭉치를 양손으로 끌어올린 채 꾸역꾸역 옷을 입었다. 평소 입던 후드티는 터질 듯 팽팽해졌고,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흡사 거대한 검은 솜사탕 같았다. 머리가 어찌나 무거운지 목이 앞으로 쏠렸다.


닥터옥 본사는 강남 한복판 번듯한 유리 빌딩이었다.

빌딩 앞에서부터 이상했다. 인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건물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다들 뭔가 달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무릎까지 내려온 사람, 온몸이 털로 뒤덮여 코트인지 털인지 구분이 안 되는 사람, 턱수염이 배꼽까지 자란 여자. 그리고 저 멀리, 입구 쪽에서 유독 눈에 띄는 남자 하나.

옷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온몸을 빽빽하게 뒤덮은 머리카락이 그 자체로 옷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고릴라처럼, 아니 그보다 더했다. 남자는 그 상태로 번호표를 뽑으려고 태연하게 줄을 서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로비 안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환불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로비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이거 사기야 사기! 경찰 불러!" "저 목 못 움직여요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목디스크 왔어요?"

머리카락들이 서로 엉키고 바닥을 쓸고 다녔다. 에어컨 바람이 불 때마다 털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날렸다.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옆 사람 입에 들어갔고 그 사람이 퉤퉤 뱉으며 또 싸움이 붙었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확성기를 들고 "고객님 진정하세요"를 외치고 있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때 2층 계단 위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닥터옥이었다.

하얀 가운에 반짝이는 머리, 부드러운 미소. 홈쇼핑 화면 속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가 손을 들자 신기하게도 로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고객 여러분, 불편을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희가 즉각적인 처치 서비스를 준비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직원들이 사람들을 안쪽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복도 끝, 평소엔 잠겨있었을 법한 문이 열려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멈칫했다.

방이 이상했다. 천장에는 미세한 구멍이 숭숭 뚫린 패널이 가득 덮여 있었고,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격자 모양의 그물 바닥, 그 아래로 어두운 공간이 내려다보였다. 마치 거대한 하수구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방 한쪽 벽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나노 중화 처치실 / 1인당 소요 시간 약 30초

천장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노 중화 미스트는 두피에 직접 작용하므로 옷을 벗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편안하게 서 계시면 됩니다. 처치 중 따끔한 느낌이 드실 수 있으나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처치 완료 후 바닥으로 낙하된 모발은 저희 측에서 위생적으로 수거합니다."

방 안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봤다. '위생적으로 수거'라는 표현이 왜인지 찜찜하게 들렸지만 딱히 따질 겨를이 없었다. 천장에서 미스트가 쏟아졌다.

치지직.

차갑고 미세한 안개가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온몸에서 머리카락들이 툭툭툭, 일제히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리도, 겨드랑이도, 머리도. 그 많던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쏟아져 바닥 격자 사이로 빨려 내려갔다. 아래쪽 어둠 속으로 조용히, 아주 깔끔하게.

따끔하다 싶은 순간 온몸에서 뭔가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솜사탕처럼 부풀어 있던 후드티 모자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푹 꺼졌고, 두툼했던 아랫도리도 순식간에 홀쭉해졌다.

격자 바닥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천 올의 머리카락들이 어둠 속에서 꾸역꾸역 한 방향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제각각 다른 주인에게서 떨어져 나왔지만 나노 입자들의 신호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들. 어딘가 깊은 곳, 데이터 센터 방향으로. 그 아래 어딘가에서 머리카락과 나노 입자가 분리되어 유전자 정보만 추출되고 있었다. 차곡차곡, 아주 정교하게, 닥터옥의 서버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여다봤다. 팔이 매끈했다. 다리도 원래대로였다. 머리는 샴푸 쓰기 전 상태, 그러니까 탈모 고민하던 그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아.'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었지만 딱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안 돼 안 돼!"

출구 쪽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고릴라 아저씨였다. 그랬다. 그 아저씨는 옷이 없었다. 미스트가 쏟아지자 양손으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들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소중한 곳을 가리려고 했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올 때처럼 갈 때도 자기 마음대로였다. 툭툭툭,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바닥 격자 아래로 사라졌다. 아저씨는 텅 빈 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직원이 황급히 담요를 가져왔다.

아저씨는 담요를 두르고 나왔다. 아까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닥터옥은 그 광경을 로비 난간에서 내려다보며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

아주 잠깐, 아주 작게, 입 꼬리가 더 올라갔다.

환불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처치실을 나오면 바로 환불 데스크였다. 영수증을 내밀면 직원이 확인하고 계좌로 입금해줬다. 181,818원. 거기에 차비와 위로금 명목으로 20만 원이 추가로 입금됐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냥 받았다. 바야바 아저씨는 옷까지 받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입금 알림을 받고 건물을 나섰다.

버스 창밖으로 닥터옥 물류센터 트럭이 경쾌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트럭 옆면에는 새 문구가 크게 적혀 있었다.

나노샴푸 2.0: 이번엔 진짜 머리카락만.

그녀는 창에 머리를 기댔다.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 카카오톡 알림이었다.

[닥터옥 공식] � 고객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보상으로 나노샴푸 2.0 출시 기념 50% 할인 쿠폰을 드립니다. 유효기간 71시간 58분.

그녀는 알림창을 바라봤다. 한참을.

껐다.


같은 시각, 닥터옥 본사 지하 3층.

어떤 안내판도 없는 그 층에는 서버실 하나만 있었다.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서버 랙들이 낮게 윙윙거리는 그 방 한가운데, 닥터옥이 홀로 앉아 있었다. 아까의 하얀 가운 차림 그대로였다.

그의 앞 대형 모니터에는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대한민국 전도. 수천만 개의 점이 시뻘겋게 빛나고 있었다. 점 하나하나가 샴푸를 쓴 사람, 즉 DNA 정보가 수집된 사람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점 하나를 눌렀다.

이름, 나이, 주소, 직업. 그리고 그 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수치들. 지능 지수 예측값, 수명 예측값, 유전 질환 확률, 성격 유형 분류, 자녀에게 전달될 유전자 등급.

그는 잠시 그 수치들을 바라보다가 마우스를 움직였다. 화면 오른쪽 상단 버튼. 버튼에는 딱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등급.

그가 클릭하자 점의 색깔이 바뀌었다.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그는 다음 점으로 넘어갔다. 또 수치들. 또 잠깐의 침묵. 이번엔 빨간색 그대로였다.

모니터 하단에는 실시간 카운터가 돌아가고 있었다.

수집 목표: 51,000,000명 | 현재 수집: 100,247명... 100,891명... 101,539명...

닥터옥은 커피잔을 들었다. 식어 있었다. 그는 개의치 않고 한 모금 마셨다.

그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혼잣말을 했다. 유창한 한국어였다. 오랫동안 준비한 사람의 한국어.

"코리아."

그는 짧게 웃었다.

"이 나라는 참 흥미로워. 고속도로가 뚫리는 데 3년, 전국 인터넷망 까는 데 5년. 다른 나라였으면 20년 걸렸을 일들이야. 뭐든 한번 움직이면 멈추질 않아. 테스트베드로 이보다 완벽한 나라는 없어. 내 샴푸가 전국에 먹히는 데 딱 석 달 걸렸어."

그가 화면을 확대했다. 수치들이 쏟아졌다. 평균 지능, 유전적 다양성, 면역 지표. 수치마다 초록색 화살표가 위를 향하고 있었다.

"유전자도 우수해. 예상보다 훨씬."

그는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만만하게 봤지. 작은 나라니까. 근데."

그는 잠깐 멈췄다.

오늘 하루 처치실 앞에서 본 것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환불 181,818원을 받으러 네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도 끝까지 줄을 서있던 사람들. 쓰러지지 않았다.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냥 끝까지 버텼다.

닥터옥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 나라 사람들은... 꺾이질 않아."

그것이 변수였다. 계획에 없던 변수. 데이터로는 측정되지 않는 것. 수천 년을 버텨온 민족 특유의 무언가. 짓밟혀도 일어서고, 빼앗겨도 되찾고, 어떤 위기 앞에서도 이상하리만치 똘똘 뭉치는 그것.

그는 잠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굴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다시 모니터를 봤다. 31,847,209개의 점. 31,847,209명의 유전자. 이미 수집됐다. 이미 분류됐다. 이미 등급이 매겨졌다.

"이미 다 가져왔잖아."

그는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다음 점. 또 수치들. 또 등급 버튼.

그런데 그 순간, 모니터 한쪽 구석에서 작은 경고창이 떴다.

[ANOMALY DETECTED — UNCLASSIFIED SIGNAL] [이상 신호 감지 — 미분류 신호]

닥터옥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는 경고창을 클릭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노이즈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찜찜했다.

그는 창을 닫고 다시 다음 점으로 넘어갔다. 그의 등 뒤에서, 하얀 가운 아래에서, 촉수들이 천천히 뻗기 시작했다. 전국의 하수구와 배관을 타고 임무를 마친 나노들이 하나둘 돌아와 촉수로 흘러들었다. 대한민국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해 돌아오고 있었다.

서버들이 조용히 윙윙거렸다.

그의 책상 한쪽에 나노샴푸 2.0 시제품이 놓여 있었다. 병 옆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그의 필체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다음 타깃 - 유럽 출시 Q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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