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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seul Jul 28. 2020

[20191220] 상트에서의 첫 날

길로틴 스크린도어와 노래맛집 Suliko 식당

평탄하고 긴 비행을 거쳐 드디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


비행기 타러 가는 길에서 루스끼 종특 오지랖을 장착한 아저씨를 만났는데,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서도 오지랖 청년을 만났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자꾸 영어로 여기서 내리라던 청년.

알고보니 우리가 지하철을 탈 것을 예상하고 지하철역에서 내리라고 말해준 것이었다. 러시아인들의 정다운 오지랖에 다시 한 번 감탄.


그렇게 지하철역에 도착해 말 그대로 쌩쌩 달리는 러시아의 초특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승강장에 내려갔는데 웬 이상한 철문이 있었다. 알고보니 스크린도어. 거의 길로틴처럼 쓔웅-탁! 하고 닫혔는데 끼면 곧 사망할 것 같았다.


러시아의 길로틴 스크린도어...!


이 스크린도어를 보니 노보시비르스크 공항에서 본 로니쳉의 스탠드업 코미디 내용 중 하나가 떠올랐다. 미국인들은 자기의 권리를 너무 소중히 여긴 나머지 손과 머리를 내주고 열차를 타려고 문과 싸운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그러면 정말 길로틴 스크린도어에 처형을 당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가지고도 C와 한창 꺄르륵 꺄르륵.


또 웃겼던 것은 루스끼들이 계속 보지 않는 척 우리를 곁눈질로 흘끔흘끔 쳐다보며 우리를 도와줄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는 것. 그게 느껴져서 너무 웃겼다. 모두의 시선을 빼앗는 나의 형광노랑 백팩 커버도 단단히 한몫을 한 듯 했다.




숙소가 있던 Nevsky Prospect에 내려서 바라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침은 솔직히 말하면 조금 을씨년스러웠다. 햇빛도 없이, 또 구름도 없이 하늘이 그냥 새하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겨울 러시아의 아침은 이런 느낌이었다. 어둑어둑.


예정된 체크인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지만 다행히도 주인아줌마와 빨리 만나 들어가서 씻고 좀 쉴 수 있었다.


숙소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네스프레소 커피머신도 있고, 세탁기도 좋고. 무엇보다도 아늑했다.  


들어가서 하루치 계획을 세운 C와 나. 우리의 원래 계획은 조금 쉬고 17:30에 나가는 것이었지만, 내가 잠에서 깬 시각은 19:30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20:00 즈음 외출하게 되었다.


밤거리는 아침과 사뭇 달라서 정말 예뻤다. 조명이 다 들어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러시아는 정교회라서 1월에 있는 동방박사의 날에 더 비중을 둘 줄 알았는데 루스끼들... 크리스마스에 제법 진심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너무나도 진심이었던 러시아인들




우리의 목적지는 Cha Cha라는 식당. 하지만 웨이팅을 해야 해서 Suliko로 향했다.


연말모임이 한창인 아늑한 분위기였다. 코로나19가 기성을 부리는 지금 이 시기에는 상상도 못할 북적북적한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 너무 그립다ㅜㅠㅠ


주문한 메뉴는 하차푸리 + 낄깔리 + 양고기 샤슬릭 + 야채구이.

내 친구 C는 낄깔리를 들고 "별로 안 뜨거운데?ㅋ" 하면서 만용을 부리다가 바로 낄깔리에게 육즙 어택을 당했다. 그리고 양고기 샤슬릭과 야채구이는 더할 나위 없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왼쪽 위부터 순서대로 하차푸리, 낄깔리, 양고기 샤슬릭, 야채구이


이 식당에서는 음악에 맞춰 바이올린을 켜주는 언니가 있었는데 갑자기 언니가 익숙한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One way ticket! 고대에 다닌 우리에게 이 곡은 "연세치킨"이라는 학교응원가로 더 익숙한 곡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연세치킨을 들을 줄 몰랐다며 흥분한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응원가 안무까지 선보였다. 이런 게 여행의 소소한 재미가 아닐까.


내 노래 취향을 꿰뚫고 있는 것인지 거기서는 Stevie Wonder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까지 흘러나왔다. 너무 신나 노래를 따라불렀더니 종업원 언니가 흐뭇하게 웃고 지나갔다.


그렇게 배불리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 돌아와서 양치 후 취침.


상트에 다시 와서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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