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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seul Jul 20. 2020

안도 다다오의 세계 속으로

유민미술관을 방문하고,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읽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별다른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저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 올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하고 오겠다 다짐하던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제주도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방문하기’였다. 그렇게 방문하게 된 것이 휘닉스파크 내부에 있는 유민미술관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6월 29일, 그 유일한 계획을 지키고자 택시를 타고 휘닉스파크로 향했다. 미술관까지 가는 산책로에서는 자연의 정취가 물씬 느껴졌다. 촉촉히 내리는 비는 정취를 더해주었고, 구불구불한 길 옆에 난 초록빛 풀잎들은 산들거리며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오르막길의 끝에 있던 섭지코지가 훤히 보이는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미술관 앞에 도착하자, 안도 다다오의 시그니처 ‘노출 콘크리트’가 눈에 띄었다. 낮은 콘크리트 벽면으로 구성된 입구는 “안팎 모두 노출 콘크리트로 일관하는 금욕적인 공간, 철저히 기하학에 의지한 단순한 구성”이라는 안도 다다오 건축물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또 재미있는 것은 그가 미술관 입구를 제주도의 돌담 뒤에 살포시 숨겨 놓았다는 점이었다. 바람, 여자와 더불어 돌이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에 알맞은 설정이었다. 고베 기타노마치의 ‘로즈가든’ 등을 통해 ‘장소에 특정한 건축’을 강조했던 안도 다다오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구석이었다.



티켓을 끊고 입구로 들어서면 특이하게도 미술관 내부가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진 야외공간이 등장한다. 낮게 깔린 돌담 사이사이로 초록빛 식물이 자라고, 풀꽃과 나무들이 춤을 춘다. 과연 안도 다다오스러운 구성이다.


안도 다다오는 '효고현립어린이회관'을 지을 당시, 충분히 하나의 건축물로 구성될 수 있는 어린이회관을 세 건물로 나누어 연못과 나무를 벗삼아 걸을 수 있는 길로 연결했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자연을 한껏 느끼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이 공간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 공간을 통해 관람객들이 비바람 치는 날씨까지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지점에서 “다소 불편하더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생활”을 추구하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관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야외공간을 지나면 돌담을 쌓아 만든 벽이 나타난다. 드디어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는 진짜 시작점이다. 돌벽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앞에 보이는 통로로 들어간다. 콘크리트 벽면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는 이 짧은 통로를 지나면, 틈새를 통해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벽이 나타난다.



이 틈을 액자 삼아 저 멀리 유채꽃밭과 성산일출봉을 바라본다. 일렁이는 유채꽃과 안개에 가려 신비롭게 드러난 성산일출봉이 참 아름답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돌담은 마치 풍경화처럼 이 장관을 묵묵히 담아낸다. 길을 따라 동적으로 움직이던 관람객들은 이 지점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정적인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멍하니 돌담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긴다. 콘크리트와 돌벽으로 만들어진 미로 같은 길이 등장한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제주도의 빛, 바람, 소리, 향을 오롯이 느낀다.


지붕이 없는 덕에 하늘 위에서 쏟아지는 비 또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안도 다다오가 자서전에서 기록한 “벽이 잘라놓은 공간 분할과 비춰 드는 빛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알몸뚱이 건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오직 자연광만 존재하는 이 길이 다른 계절, 다른 시간 대에 비추는 다른 빛 아래에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문득 궁금해진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면 같은 길을 되돌아 원래 입구 쪽으로 퇴장하게 된다. 분명 같은 길이지만, 반대 방향에서 보는 길은 새롭고 또 낯설다. 안도 다다오는 “사람들 마음에 그저 공간 체험만을 남길 수 있는 간소하고 강력한 공간”을 말했다. 이 공간은 내게 바로 그런 공간이었다. 


콘크리트라는 인공물과 돌담의 조화를 통해 제주도의 자연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적인 공간. 그렇게 나는 안도 다다오의 세계에 풍덩 빠져버렸다.



*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라는 문화예술 사이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8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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