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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콘이 사는 법 Jun 22. 2018

처음으로 "소비"를 해보았다

실험실

첫 번째 실험 ‘아드만 애니메이션’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혼자서요. ‘이 나이가 되도록 어떻게 한 번도 전시회를 가보지 않았냐’고 하면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소비”의 관점이 달랐어요. 제 관점에서 보았던 소비는 의, 식, 주 해결을 위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 항상 “돈 없다, 돈 없다”하셔서 정말 집에 돈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원하는 걸 참아 내는 것”그게 효도하는 길이자 돈을 아끼는 착한 아이의 덕목인 줄 알았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소비의 패턴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행지를 가서도 기념품은 쳐다보기만 했고, 친구들이 콘서트를 가고 연극을 보러 가도 저는 가지 않았어요.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어요. 가장 큰 문제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봐도 사지 못해 생긴 미련을 죄책감이 덜한 의, 식, 주에 푸는 이상한 소비습관으로 변해버렸다는 점입니다.


 소비패턴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건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였습니다. ‘내 정성이 들어간 물건’ ‘잊지 못할 추억이 있는 물건’ ‘컬렉션’ 등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을 찾으래야 찾을 수 없었거든요. 지금 당장 토네이도가 제 방을 쓸어간다 하더라도 다시 찾지 못할 마음에 대성통곡할 만한 물건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휘저어놓아 버렸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거지만 그 사실이 저를 더욱 무의미하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에 대한 정의가 없다 보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시작이 쉽지 않더군요. ‘좋아하다’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했습니다.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좋아한다’의 정의(덕후의 기질이 있는 것, 아무리 해도 지루하지 않은 것)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제가 내린 ‘좋아하다’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마음 또는 행동이 움직이는 것, 지금은 마음이 떠나도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 이렇게 정의하고 나니 엄청난 리스트가 만들어지더군요. 신기했어요. 정의를 조금만 바꾸어 봤을 뿐인데 제가 좋아하는 것을 이렇게나 많이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많아졌다는 인식을 하고 나니 세상에 대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라면 보고도 지나쳤을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지하철 벽면에 붙어있던 ‘아드만 애니메이션 전시회’ 포스터였어요. 이 전시회에 가는 건 ‘LIKE LIST’에 있던 ‘아드만 애니메이션’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지 실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 후기를 보니 굿즈도 판매하고 있길래 “여기다!”싶어 표를 구매했습니다. 네, 아드만 전시회 티켓은 제게 의미 있는 "첫 소비"가 되었습니다.



#아드만
 “아드만”이 실존인물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더군요. 공동창업자들(피터 로드+데이비드 수프 록스톤)에 의해 만들어진 “아드박(아프리카 땅돼지)+슈퍼맨”이라는 사실을 아셨나요? 이게 좋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라는 건가 봅니다. 뭐랄까, 전시회를 보면서 마음이 열리니 머리도 많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드만

 1966년 12살이 되던 해 볼렉스 카메라(태엽식/16mm)를 빌려 만든 첫 애니메이션, 자신들의 캐릭터들이 살아나 움직이는 모습을 잊지 못해 '아드만'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깊은 전율을 느꼈으면 1976년 스튜디오를 설립하게 되었을까요? 이래서 어른들이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말씀을 하시나 봅니다. 발상의 전환도 대단하게만 느껴집니다.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나서 BBC에 내보내기 위한 캐릭터를 구상하던 중 '점토'를 소재로 한 '모프'를 만들었어요. 점토 애니메이션(스탑모션)의 위대한 시발점이 된 거죠. 이후 닉 파크의 합류로 명작 중의 명작 '월레스와 그로밋_화려한 외출'이 탄생하게 됩니다.



#치즈

진정한 먹방

 만약, 아드만 스튜디오에서 제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주저 없이 '월레스와 그로밋_화려한 외출' 세트장을 통째로 달라고 말할 겁니다. 치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제 식성을 바꿔버린 작품이니까요. 이 작품을 보면서 지금도 속으로 말합니다. '이건 진짜 천재적이다. 어떻게 치즈를 가지러 우주로 나갈 생각을 한 거지? 와...... 이런 게 진정한 발상의 전환이다.'라고 말이에요. 더구나 전시회에서 이 장면이 만들어 지기까지의 과정을 보고 나니 우주선을 뚝딱 만들어 치즈 행성에 가서 치즈를 쓱 썰어내는 이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그 어떤 먹방 BJ도 월레스 치즈 먹방은 이기지 못할 거예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 살아 움직인 다는 것

 전시회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았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섬세함의 끝판왕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벅찰 정도로 말이에요. 캐릭터 하나가 만들어 지기까지 노트 한 권이 전부 쓰였고, 세트 제작은 말해 뭐할까요? 모든 물건에 축소 레이저를 쏘아 가져다 놓은 것처럼 모든 게 진짜 같았습니다. 수많은 스케치에서 탄생한 캐릭터들은 우리에게 안녕을 하기 위해 손가락 한마디 한마디를 몇천 장 사진으로 찍어 냅니다. 정말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관절 하나하나를 움직여 찍은 사진을 빠른 속도로 돌려 자연스러운 영상으로 보여줘요.

 이 배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식당'에 사용되었던 모형인데, 모터만 없지 그냥 진짜 배라고 생각해도 되겠더군요. 사람이 탈 수 있는 배를 만들듯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천 조각마다 색이 다른데 이 또한 모두 철저히 계산된 모습이에요. 간단히 말하면 레고를 만들기 위해 레고 부품을 직접 만들어 조립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판자, 줄, 배에 필요한 소품들이 모두 하나하나 그 디테일에 소름이 돋아요. 꼭, 피터와 데이비드가 처음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을 때 느꼈을 것 같은 소름이 저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드만 애니메이션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빛'이에요. 스탑모션으로 촬영할 때 사람의 손으로 움직이는 게 대다수이지만 빛으로 움직이는 효과를 주기도 합니다. 위 사진처럼 바다에 떠다니는 느낌을 주기 위해 구석진 부분에 조명을 설치한 후 색감을 바꿔주게 되면 큰 물체는 힘을 들이지 않고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해요. 정말 예술적이지 않나요? 디테일의 끝판왕!! 감히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드만'입니다.



#시작, 성공적

 첫 실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나'를 위한 물건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첫 목적지 '아드만'.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올바른 소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올바른 소비란 나를 위한 물건을 사되 절제하는 소비를 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그래서 '숀'인형도 사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절대 과하지 않게 '나'를 찾기 위해 지도를 채워 나갈 거예요.



앞으로 더 멋진 나를 위한 유니콘 실험실 운영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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