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전 2
첫 독서지도사 수업 강의가 열리는 날, 그 두근거림을 잊지 못한다. 우연히 본 신문 소식란에 ‘시민복지회관’에서 수강생 모집을 하고 있었다. 나를 위한 수업이라는 생각으로 수강신청을 했다.
‘독서지도 원리’에서부터 ‘독서 논술’, ‘아동도서 이해’, ‘교육 심리’, ‘글쓰기 지도’등 독서 논술 전반에 관한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스펀지처럼 수업을 빨아들였다.
삼 개월의 수업이 끝났다. 이대로 끝내기에 너무 아쉬웠다. 가자, 서울로! ‘한우리 독서문화운동본부’에 수강신청을 하고 시험이 끝나기까지 거의 반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때만큼 열심히 산 적이 있을까 싶게 바쁘고 신 났고 행복했다. 그 사이 못했던 대학 공부도 겸했다. 마흔을 넘기고 있었다.
함께 공부한 여덟 명의 선생님들과 배운 대로 실습하고 토의하는 과정을 통해 각자 상황에 맞게 현장 실습을 나갔다. 처음 각 지역 문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손에서 땀이 났고 발음은 자꾸 꼬였다. 왜 그렇게 아이들은 질문이 많은 걸까? 당연한 일인데도 ‘제발, 질문 하지마!’하는 맘으로 수업을 견뎠다.
선생님들과 만나 서로 수업 시간에 있었던 얘기를 나눴다.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며 보완할 점에 대하여 토의했다. 정기적으로 모여 스터디를 하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의젓한 독서지도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집에서 독서지도 책방을 열었다. 잘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수업은 우리 아이 친구들, 즉 동네 아이들이었다.
“갑자기 선생님이라고 부르려니 잘 안 나와요.”
“이게 뭐 하는 수업인데요?”
“나 책 되게 싫어 하는데 엄마가 가래요.”
“우리 엄마가 맨날 책 읽으라고 잔소리해요.”
특별 대책이 필요 했다. 야외수업이었다. 방과 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뒷산에 갔다. 물론 각자 책과 노트를 들고서. 책은 ‘이게 뭔지 알아맞혀 볼래?’였다. 주인공 한광이와 친구들이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고무찰흙’ 같기도, ‘똥’같기도 한 것을 맛나게 먹으며 행복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다가 그것이 쑥개떡이란 걸 알고 집을 향해 달려간다는 ‘박완서 작가’의 그림책이었다.
언덕에 앉아 큰 소리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독후활동으로 아이들이 직접 쑥을 뜯었다. 뜯은 쑥을 모아 다음 주에 떡 만드는 수업을 할 것이라고 하니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기대를 품었다.
미리 불려 놓은 쌀과, 데쳐 놓은 쑥을 들고 방앗간에 가서 빻았다.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만든 모양’의 떡을 찜솥에 안쳤다. 수업하는 동안 주방에서는 떡이 익어가고 있었다.
“와~이거 쑥 냄새 맞죠.”
“진짜 떡이 되나요?”
“궁금해 죽겠어요.”
다 익은 떡을 한김 식히고 난 후 떡을 먹었다.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만든 개떡이었다.
“쑥개떡이란다.”
“선생님! 정말 맛있어요. 담에 또 만들어 먹어요.”
“야외수업 또 해요.”
“독서 수업 너무 재밌어요.”
마음 가는 대로 독후활동을 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을 보내고 책상에 앉았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참 좋은 작업이구나.”
이후로 아이들은 두고두고 야외수업 얘기만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초등학교 앞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독서. 논술 학원을 열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학원 이름을 궁금해했다.
좋아하는 동화책 중 하나인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책 이름에서 따왔다. 버려진 황무지에 씨앗을 심는 할아버지가 나온다. 나무가 자라는 동안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오고 꽃이 피고 새가 울며, 말랐던 시냇물이 흐른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런 낙원이 저절로 생겼다고 생각한다. 노인의 땀과 눈물, 고독과 성실한 인내가 깃든 곳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학원이 한 톨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책을 읽는 일도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천천히 성장하는 일이라는 내 생각과 의지를 설명하던 기억이 새롭다.
사람은 책을 통한 간접 경험에서도, 여행이나, 살면서 부딪치고 겪는 직접 경험을 통해서도 성장하지만, 사람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만큼 값진 성장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독서지도사의 일이었다. 독서지도사는 책을 통해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세상을 새롭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20여 년 가까이 독서지도사로 살고 있다. 내 꿈은 할머니 독서지도사로 사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고 읽히는 할머니. 함께 책을 읽으며 이야기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삶의 향기와 고민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현장 독서, 어른 만큼 바쁘게 사는 아이들에게 이런 바람이 지나친 것일까? 책을 읽고 밖으로 나가 읽은 책의 내용을 체험하고 만지고 느낀 후, 돌아와 책을 다시 펼쳐 읽는 일, 이런 독서수업을 꿈꾼다.
지금도 생각난다. 첫 독서수업을 시작했던 봄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쑥 향기, 참 재미있는 수업이라고 동네 아이들에게 입에게 입으로 전해지던 날로부터 많은 아이를 만나고 있다. 나를 성장시키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모두 내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