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행

작은 도전1

by 호랑


여름휴가를 앞둔 어느 날, 찌는 듯한 더위가 밤잠을 설치게 했다. 찌뿌둥한 몸을 심호흡하며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그날 따라 새벽안개 속 웅크리고 있는 산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은 무엇이라도 포용할 것 같은 넉넉한 품이었다.


산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야호’소리였다. 맘껏 지르는 소리가 아닌 어떤 신호를 보내는 듯한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한 치 앞도 보일 것 같지 않은 이 새벽에 누굴까? 궁금했는데 뒤를 이어 또 다른 목소리가 ‘야호’하며 응답하는 것 같았다. 분명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한번 새벽 산에 오르고 싶었다. 그날은 무리였다.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그것도 캄캄한 새벽에 산을 오르다니, 이거야말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온종일 생각했다. 문제는 두려움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 의지를 설명했으나 거절당했다. 오기가 생겼다.


설정한 알람을 끄고 일어나 양치를 했다. 물 한 컵 마시고 옷을 입었다. 혹시 누구든 일어나 함께 가 주지 않을까 싶어 거실을 서성이고 괜히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천천히 운동화끈을 조였다. 그러나 기대를 했던 등허리를 실망으로 펴고 결국 혼자 나섰다. 내 용기를 부축해주고,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다.


뒷산을 오르는 발걸음과 심장이 가볍게 떨렸다. 어둠 속에 잠긴 산이 두려움을 떨어내지 못한 내 어깨를 비웃는 것 같았다.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고 옆을 주시하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시 돌아갈까? 아무도 말리는 사람 없으니.


산 입구에서부터 겁에 질렸다. 거대한 어둠의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산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대로 뒤돌아 집을 향해 뛸 시점은 지금이다 싶게 선택이 필요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러나 하루는 해 보고 그만둬야 식구들한테 면목이 생기지 싶었다. 짧은 순간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칠 즈음 어디선가 부스럭, 하는 소리와 함께 ‘야옹’,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놀라움과 무서움에 나는 이미 산속을 향해 뛰고 있었다.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가는 게 오히려 방해될 만큼 심장은 어딘가 있을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


십 분도 채 오르지 않아 나는 사람을 보았다. 이토록 사람이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제각각 맨손 체조를 하거나 운동기구를 타며 두런두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쭈뼛쭈뼛 자리를 비집고 서서 어색한 손동작을 해보는데 할머니 한 분이 묻는다.


“처음 올라온 거요!”

“네.”

“부지런하네. 이 새벽에 운동을 다 나오고.”


생각해보니 나는 운동을 나왔다기보다 호기심 때문에 나왔다. 내 이런 생각은 아랑곳없이 그들은 새벽을 나선 나를 한껏 칭찬했다.


본격적으로 새벽 산행이 시작되었다. 다섯 시 삼십 분은 되어야 걸을만할 정도인데 다섯 시에 알람을 맞추고 마음을 다진다. 딸각, 현관문을 여니, 한여름인 줄 모르는 서늘한 공기가 잠에서 덜 깬 눈꺼풀을 긴장시킨다. 첫날에 비하면 적응이 다 된 거나 마찬가지다. 마치 처음인 듯 알게 된 사실, 아무리 깊은 새벽이라도 한 발 걸을 때마다 어둠이 걷히면서 아침이 밝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친구가 많이 생겼다. 팔십이 넘은 할아버지부터 할머니, 중년 부부, 젊은 부부, 혼자 올라온 내 또래 여성 등, 며칠 보는 동안 서로 먼저 인사하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마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지막한 동네 뒷산이지만 운동하기에 적당한 높이를 가졌다. ‘야호’소리는 정상에서 난 거였다. ‘야호’소리에 잠을 자던 야생 동물들이 놀라 간혹 새끼를 가졌을 때 새끼가 떨어지기도 한다 해서 조심스럽지만, 이른 새벽이다 보니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간혹 혼자 올라오는 이를 위해서 작은 신호를 보낸다고 했다.


새벽 산행을 하면서 사람 친구만 생긴 게 아니다. 첫날 혼비백산해서 산속을 향해 뛰게 했던 ‘엄마야, 깜짝아!’고양이, 청설모, 새벽하늘, 온 밤을 달려왔을 하얀 달, 모두 새롭게 만난 친구들이었다. ‘엄마야, 깜짝아!’고양이는 처음 산에 오르던 날 고양이 때문에 놀란 내가 지른 비명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는 눈을 번뜩이며 천연덕스럽게 산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고양이의 이름을 ‘엄마야, 깜짝아!’로 짓고 내내 한번은 만나기를 기다렸으나 이후로는 볼 수 없었다.


여름이 끝나고 초가을까지 새벽 산행은 계속되었다. 어쩌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학교 운동장을 돌았는데 산에서 만난 분들이 죄다 운동장으로 모여들 때도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새벽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일들이 가끔 떠오른다. 그 후로 종종 산을 찾는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시도한 첫 번째 도전이고 용기였던 새벽 산행은 내게 자신감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혼자서 해내야 할 나만의 몫이 있다는 것,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격려, 혼자만 끙긍거리다가 뭔가를 시도했을 때 뜻밖에 많은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으며,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또한, 스승은 바깥에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그로부터 나는 비로소 주부라는 일상과 엄마, 아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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