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시선 23
오늘은 써야겠다. 그 작약꽃 사내 이야기를.
아침 산책길에 보았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며칠 눈여겨 본 공원 화단에 오늘 드디어 몇 송이의 작약이 붉고 환하게 앉아 이슬을 말리고 있다. 몇 장의 사진을 휴대전화에 담아 오면서 문득 작약꽃이라 불리던 그 사내가 떠올랐다.
우리 동네에는 작약꽃 사내가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명칭은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지만, 동네 사람 몇몇은 사내를 작약꽃과 관련하여 그리 불렀다.
“왜 하필 작약꽃이랴.”
“긍게 말여. 작약꽃에 뭔 사연이라도 있는 가벼.”
“사연은 무신. 술에 취해서 분간 못하는 행동인 것여.”
“아니 근데, 왜 약국 앞에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차라리 작약꽃을 죄 뽑아 버리고 싶어요. 증말.”
약국 여자의 하소연이 꽃이 지는 내내 이어졌다.
사내는 쉰 살이 조금 넘은 듯 보이는 사람으로 평소에는 농사일하며 열심히 살았다. 어쩌다 가끔 마주칠 때 보면 오토바이에 농기구며 거름 포대를 싣고 들녘으로 내달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누가 보아도 성실한 가장이었다. 아내는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시내로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또 시작됐구먼. 뭣이 저렇게 못된 것이 씌었을까이. 당최 모를 일여.”
그랬다. 사내는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논으로, 밭으로 다니며 자기의 일터를 소중히 아끼고 가꿨다. 그 기간은 술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 내게는 술이 있었지, 왜 그걸 몰랐지? 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며 동네 슈퍼에 들르는 날부터 꼬박 열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 물론 아내는 온전하지 못했다. 피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집안 살림은 엉망일 게 뻔한 일.
“저 사람이 여그 토백이는 아녀. 한 십여 년 전에 이 동네로 이사 왔지 아마. 각시 말로는 수재였댜. 서울에서 거시기 뭐, 큰 회사도 댕겼고. 헌디 뭣이 잘못되었는지 당최 말도 안 하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이 동네로 흘러온 것이댜.”
술만 마시면 거의 반미치광이가 되어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가 술에 곯아떨어져 자는 곳이 약국 앞 작약꽃밭이다. 파출소에서 출동해 여러 번 모셔? 가기도 했다.
나는 사실 이 광경을 보고, 또 동네 사람들의 말을 주워들으며 시(詩)로 쓰려고 몇 번을 시도 했다가 결국 쓰지 못했다. 써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붉은 작약이 필 무렵이면 가장 먼저 그 사내가 떠오른다. 무슨 아픔이 있길래 그토록 자신을 방치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 또 어떤 간곡한 사연이 있어서 술에 취하면 붉은 작약 밑으로 기어들어가 낮잠을 자거나 새벽이슬을 맞으며 자신을 학대했을까? 싶은 것이다.
작약 밑에서 실컷 자고 나오는 사내의 얼굴이 작약만큼이나 붉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거나, 어쩌면 그 사내의 얼굴이 바로 오월의 작약인지도 모를 일이었다고 여기곤 했다.
사연이라는 것이 꼭 햇살처럼 투명하게 밝혀져야 할 이유란 없다.
그저 어느 한때 내가 살았던 동네에 한 사내가 있어 술에 취하면 작약꽃 아래 누워 웅크리고 잠을 잤다더라. 그리하여 그 사내의 얼굴이 술에 취한 것인지 작약이 짓이겨져 붉은 것인지 알 수 없을 어느 오후라던가, 새벽이 있었다더라. 그런 시절을 묻고, 또 우리의 생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흘러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작약꽃이 피었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꽃에 깃든 사연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오래 시를 쓰지 못하고 결국 산문으로 마무리 짓는 내가 있듯이 끝내 명쾌하게 말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으나 그게 뭐 별 대수인가.
작약은 붉어 세상을 기웃거리고, 고단한 어느 인생이라도 다 품을 듯이 커다랗게 일렁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