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시선 28
군산의 나포 십자들녘은 지금 노란 등을 켠 듯 밝고 환하다. 특히나 늦은 오후가 가장 볼만한데, 틈만 나면 휙, 그곳으로 간다. 며칠 몸살 하듯 그곳이 궁금하던 차, 깊게 호흡하며 익어가는 벼 냄새가 넘쳐흐르는 들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그리웠던 냄새다. 들녘에 서면 목숨 가진 것들의 애환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노란 물결이 훅, 가슴에 들이친다. 멀리 있는 것들을 죄다 불러 모아 도란도란 저마다의 이야기를 넉넉하게 풀어 놓는 듯 바람에 쓸리는 벼 소리가 은성하다. 햇살의 축포가 선물처럼 쏟아진다.
“있는 것들이나 읎는 것들이나 사는 건 매한가지여. 저 들녘을 보거라. 어디 맺힌 것 있는가. 제 몸 풀어 죄다 먹여 살리잖냐. 쩌그 벼 익어가는 들판을 보면 아무 걱정도 없당게. 내 것 아닌 것이 참으로 넉넉햐. 정직한 땀은 보는 것만으로도 맘이 편하당게.”
들녘 어디선가 먼저 간 이들의 따뜻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농부의 수고를 어디다 비할까. 휠 것 같던 땀방울이 값진 황금으로 빛나건만 갈수록 농부의 터전은 변방으로 쫓기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맘때가 되면 새삼 농사를 버리지 않는, 아니 버리지 못하는 그들의 심성이 귀하다.
십자들녘의 노란 넉넉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수고한 모든 것에게 고개를 숙인다. 손과 발, 몸과 마음을 기울인 것들에게서 얻는 위안은 가만히 있어도 충만하게 차오르는 평화 그 자체다.
멀리서 노란 손짓이 남루한 내 마음을 다독인다. 어루만진다. 노란 위안이 넘실거리는 들녘으로 눈길 한 번 주시라.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등불 하나가 탁, 하고 켜질 테니까. 그러면 알 것이다. 내 마음의 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다만, 조금 흐릿해졌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