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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 장 목단꽃 보고서

보통날의 시선 38

by 호랑
보통날의 시선 38 목단꽃 그림.jpg


눈 저리도록 혼자서 실컷 보면 될 것을 뭔 오지랖이냐는 마누라 잔소리 못 들은 척 대문을 나섰지, 아, 주먹만 한 목단꽃이 불쑥불쑥 마당을 뒤덮는데 어찌 나만 보것어, 저 기막힌 붉은 환호성을, 마침 오일 장날이라 아침을 서둘러 이슬 내린 목단꽃 모가지 뚝뚝 끊어 자전거에 한 아름 실었지, 집에서 가까운 골목 난전에 자리를 잡았는데, 다 그럴만한 계산이 들어간 것여, 다 팔리면 얼른 가지고 나올 요량이었고, 시들면 후딱 바꿔 놓을 심사였당게, 목단꽃 쫙 펼쳐 놓으니 장터 한쪽이 불그죽죽허네, 장날이면 노상 막걸리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 대문 들어서던 아버지 얼굴 같더라고, 아니면 그런 아버지 닮은 나를 보는 자식들 마음이 그럴 랑가 싶기도 허고, 그나저나 아무도 목단꽃 사는 사람이 읎네, 꽃 볼 줄 몰라 다들, 그 꽃 한번 푸짐허네, 뭔 꽃이 저렇게 크댜, 입맛 다시던 말들 사라지고, 시든 꽃 한 무더기 쭈그리고 앉았네, 누가 보면 돈 궁해서 나왔다 그러것소, 청승이여, 청승, 나이 들어감서 주책스럽긴, 마누라 생각이 나네, 목단꽃을 보면 하고 싶은 말 애타도록 있어 이렇게나 붉고 커다란 것 같아, 피고 지는 내내 마음 서성거렸구먼, 내 맘같이 목단꽃도 그럴 것 같아서, 저것도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듣고 싶은 말 원 없이 들어보라고 장터에 내놓은 것인데, 그런 맘 알지 못하는 마누라여도, 한껏 위로받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지, 오가며 보탠 세상 사람들의 눈길과 말 부조 따위, 지금 이토록 붉으면 되지, 저녁 곱게 접은 자주색 생이여, 목단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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