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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일 - 좀작살나무

보통날의 시선 56

by 호랑
보통날의 시선 56 좀작살나무 그림.jpg

호수공원 한쪽에 올해도 여전히 보라색 좀작살나무가 자주색 열매를 맺었다. 해마다 그 자리에 잘 살아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나무다. 일 년에 두어 번씩 시에서 공원 풀베기를 하는데, 언제 잘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크기를 가진 나무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다른 풀들과 어우러져 있어 위태롭다.


“어서어서 자라서 네 존재감을 나타내거라. 그래야 누구도 너를 베어버릴 생각 하지 못하잖니!”라는 마음으로 지지하는 나무다. 좀작살나무는 어떻게 여기에 처음 심어진 것일지 궁금함이 일기도 했으나, 자라고 있는 주변 상황을 보면 흙에 딸려 왔고, 누군가 그저 무심히 심은 나무일 수도 있으나, 사실 그럴 확률은 낮다. 아마도 새들이나 다른 동물의 배설물에 의해 우연히 심긴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이만큼이나마 자라고 있는 것이라는 추측이 그중 가깝다.


가을 햇살, 특히나 해가 지고 있을 무렵의 자주색 열매는 보고 있는 사람에게 뭔가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나 여기 있으니 꼭 기억해 줘.”라며 살랑살랑 존재감을 떨고 있다. 처음 그 열매를 보았을 때 얼마나 앙증맞고 어여쁜지 작은 탄성을 질렀다. 그리곤 바로 중얼거렸다. “엄마에게 사주고 싶었던 브로치 같아.”


엄마는 멋쟁이였다. 아니, 천생 여자였다. 집안 행사가 있으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을 줄 알았고, 자기만의 경대(화장대)를 갖고 싶어 했으며, 미용실도 거르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조금만 길다 싶으면 어김없이 한 곳밖에 없는 마을 소재지의 미용실을 찾았다. 가끔은 시내에 있는 미용실을 다녀오는 길에 짜장면을 사 먹고 오는 길이라면서 멀리 있는 딸에게 공중전화를 걸기도 했다. 계절마다 바뀌는 옷이며 가방, 구두까지 신경을 쓰곤 했는데 딸은 그런 것에 도통 관심 밖이었으니 엄마는 어지간히 애가 탔을 것도 같다.


농사꾼의 아내로 살며 호기심과 낭만을 잃지 않았던 엄마, 커피 마시는 딸들 옆에서 뭔 맛으로 그 쓰디쓴 것을 마시냐면서도 “그것이 그렇게나 맛있으면 어디 나도 한 모금 마셔보자!”라면서 한 컵을 쭉 들이켜기도 했다. 대체로 조용한 성품의 엄마, 한 번도 큰 소리 내 자식들 나무라지 않았다. 속으로 꾹꾹 눌러 담으며, “쟤들 왜 그런지 모르겄어. 에이 속상혀 죽것어.”라고 말하면 그뿐이었다. 어지간히 무던한 사람, 그게 엄마였다.


조용필의 신곡 ‘허공’이 나왔을 때 노트에 또박또박 가사를 적어 틈나는 대로 부르며 익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처음 조용필이 TV에 나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던 1970년대 중반 그의 모습을 처음 본 후로 팬이 되었는데, 가수가 나올 때마다 친구 대하듯 “용필이 나왔네. 어찌 바쁘다더니 나왔다냐. 야 노래는 들을 만혀.”라면서 은근히 진짜 팬임을 과시하는데 사실 우리도 용필이 오빠를 좋아했으니, 엄마와 딸들이 같은 가수를 좋아한 것이다.


월급을 타면 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참 많았다. 그런 중에도 나는 엄마의 브로치를 자주 샀다. 호기심과 여성스러움, 낭만을 갖춘 엄마에게 브로치처럼 반짝이는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던 지극히 소박한 내 마음을 전한 것인데, 변변찮은 브로치를 보고 엄마는 크게 기뻐하곤 했다. 내가 민망해할 사이도 없이.


아끼느라 자주 착용하지 않고 케이스에 넣어두고 틈날 때마다 한 번씩 열어 보곤 했으나, 사실 농사일로 바쁜 엄마가 외출할 일은 그다지 없어서 겨우 동네나 이웃 마을 친인척 행사뿐이었다. 그것도 동네잔치 때는 착용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몇 개의 브로치가 서랍에 쌓이기만 했다.


늘 잔잔했던 미소와 생활 속 유머가 툭툭 튀어 나와 우리를 즐겁게 했던 엄마처럼 나이가 들어도 낭만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쓰는 삶이길 스스로 주문하곤 한다. 엄마 없는 가을 하늘이 텅 빈 듯해도 저녁 무렵 날아오는 기러기 떼를 보면 하늘도 참 많은 얘기를 안고 있어서 우리가 이토록 오래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하늘이야말로 우리에게 크고 넓고 깊은 품을 주는 곳이구나 싶다. 가을이 깊어 간다. 아름다운 보석을 줄줄이 달고 있는 좀작살나무를 볼 수 있다는 일은 삶의 틈새에서 건질 수 있는 뜻밖의 선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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