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도처 유상수

보통날의 시선 66

by 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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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상수(上手)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를 밝혀낸 이들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 상수들이었으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필부 또한 인생의 상수들이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 인생 도처 유상수/유홍준/창비.


‘인생 도처 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란 말을 ‘유홍준 작가’의 책에서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그렇구나. 인생의 상수들은 곳곳에 널려 있구나.”


참 좋아하게 된 말이다. 성실하게 노력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 좋다. 시대를 풍미하는 어느 유명한 사람이든, 생활 전선에서 자신의 생업을 위해 인생을 바쳐 치열하게 사는 보통의 사람이든,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생활 전문가’라 부른다. 그들로 인하여 삶은 보다 수월하며 윤택함을 영위할 수 있다.


돌아보면 삶의 깨달음을 주는 것들이 차고 넘친다. 모두가 상수(上手)다. 사람은 물론이고, 자연과 사물, 계절의 변화, 생물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길 수 없는 것들이 있어 배움과 성장을 끊임없이 추동한다.


“나무와 식물, 꽃과 동물 등 자연을 알아야 풍부한 생을 살 수 있고, 세상 공부를 부단히 해야 좋은 글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스승은 말했다. 그때부터였던가. 식물의 이름과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려고 몸을 기울였다. 사람을 보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고 알아야 할 것이 산 넘어 산이다. 스승의 말은 등에처럼 수시로 채찍질한다.


학원을 운영할 때였다. 연말이면 유난히 잡상인 출입이 잦았다. 크지 않은 동네여서 누가 몇 번을 오는지, 무엇을 팔려고 오는지 빤히 알 수 있다. 언제나 같은 물건, 비슷한 말로 돈을 요구한다. 큰돈은 아니지만 번번이 줄 수 없는 형편이어서 약간의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그런 어느 해 한 장년의 신사가 노크함과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례하다고 느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었고, 그를 상대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가져온 물건도 없었다.


“지금 수업 중이니까 다음에 들러 주세요.”라는 말을 두어 번 했는데도 꿈쩍 안 했다. 그를 현관 입구에 두고 수업하러 들어가는데 호통을 치는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학원에 퍼졌다. “다음이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합니까? 선생님은 다음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며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심장이 후들거렸다.


그가 원했던 것은 몇 푼의 돈을 위한 습관적인 말이었을까. 아니면 살아보니 정말 다음이란 우리가 믿고 싶은 허상에 다름없음을 몸으로 깨달은 교훈일까. 느닷없이 던지고 간 이 말은 내 오랜 화두가 되었다. 어쩌면 그가 인생의 상수는 아니었을까. 십여 년이 넘은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게 가르침을 주는 말이다. 결코 다음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늘 따른다.


사람 위에 사람 없으니, 만나는 사람 누구나 한 가지의 가르침을 준다. 낯선 이에게서 손을 거두는 6개월 아기로부터 생의 이치를 본다. 무엇을 알아서 내밀려던 손을 거두는 것일까. 아기는 내 무해한 스승이다. 늙음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무나 늙을 수 없음을 알고부터이다. 늙고 싶어도 늙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늙고 싶었다. 그래서 씩씩하게 늙고 있다. 어찌 보면 곱게 잘 늙은 사람도 본받을 상수가 아닌가.


책을 통해서 인생의 기쁨과 설렘, 삶과 죽음을 배우고,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기도 한다. 음악은 소리 하나만으로도 위로와 격려, 슬픔을 치유받는다. 상처를 입은 사람도 상처를 입힌 사람도 결국 사람으로 인하여 갱생할 수 있고 보면 상수는 사람 안에서 피는 성숙한 꽃이다.


곳곳에 있는 ‘생활 전문가’인 그들이 상수라고 인정받고 대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동네 빵집을 오래 열고 있는 사람, 옷 수선을 하며 인생을 다 보낸 사람, 오늘도 여전히 누군가의 치아를 들여다보는 머리 희끗한 치과 원장님, 사랑방 같은 미용실을 열고 동네 어르신들의 머리를 매만지는 사람 모두 상수다. 등 구부리고 앉아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의 뒤통수도 상수임을 안다. 어찌 꽃 피고 새가 우는 문밖을 기웃거리고 싶지 않겠는가. 낡은 것을 새것으로, 고장 난 무엇인가를 기어이 본래의 모습으로 고쳐 놓는 사람, 이들이 곧 삶의 기술자이다. 주춧돌 같은 그들이 있어 세상은 탈 없이 굴러간다.


나는 무엇에 내 소용(所用)을 쓰고 있는가. 내 쓸모를 생각하게 하는 ‘인생 도처 유상수’ 즉, 고수(高手)들의 피나는 노력, 생에 대한 순응과 순리를 따를 줄 아는 사람이 세상을 밝히는 시대의 등불이다. 이런 배움의 숲에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스승은 하늘에서 나지 않는다. 여기 이곳 내가 발붙인 곳 어디에나 스승은 있다. 그러하니 스승이 많은 나는 부유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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