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의미 : 당신은 무슨 재미로 살아가십니까?
학창 시절 개근상을 놓친 적 없고, 생기부에는 모범적인 학생이라는 말이 즐비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인서울 4년제 대학 입학.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재수나 휴학, 해외여행 따위는 인생에 있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은 사회의 인정과 거리가 먼 것들이니까. 나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렇게 2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대기업에 입사했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한 완벽한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에서 나름 상위권에 속한다는 집단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자부심에 매일 설렘과 호기심으로 눈을 번뜩였다.
당당하게 사원증을 매고 커피를 마시며 여의도 공원을 거닐 때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지난날들의 노력이 빛이 되어 나의 삶은 절정밖에 남지 않았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러한 황홀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유 모를 공허함이 내 안을 조금씩 잠식하기 시작했다.
목표에 대한 성취와 타인의 인정을 내 삶의 목표이자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나에게, 매주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회사생활은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회사의 업무는 실적을 위해 억지로 하는 과제에 가까웠고, 누가 수행하는지에 관계없이 제시되어 개인의 특성은 철저히 배제되는 듯 보였다.
모든 것의 초점이 회사에 맞춰져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다수의 불합리와 모순은 '돈' 을 받는다는 이유로 묵인되었다.
이러한 광경을 목격하며 나는 회사생활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A야 너는 무슨 재미로 살아?"
팀 선배들이 줄곧 내게 했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주변 동기들과 사뭇 달랐다. 보통의 또래들은 번 돈으로 물질을 소유하거나,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등으로 인생의 재미를 얻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기념일과 용돈, 몇 안 되는 주변사람들에게 밥을 사는 정도 외에는 좀처럼 나를 위해 돈을 쓰는 일이 없었다. 26살이 되도록 해외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도, 정작 홀로 있을 때의 나는 교통비조차 아까워 걸어 다니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붕어빵 하나를 사 먹기까지도 몇 번을 망설였다.
늘 남에게는 관대했지만, 나에게는 인색했다.
“나도 변해야겠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재미가 필요함을 느낀 나는 남들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15년 된 컴퓨터를 새로 사고, 뒤판이 부서진 스마트폰을 최신 기종으로 바꾸고, 연애를 하고, 동호회에 나가 사람들과 교류하며 새롭고도 어색한 일상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에서 오는 재미는 잠시였을뿐, 내 안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커졌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회사생활을 하며 책임은 점차 늘어나는데, 정작 나는 변한 게 없으니 조금씩 무기력해졌다. 주변에 조언을 구해도 돌아오는 말은 비슷했다.
"네가 돈을 쓰는 방법을 몰라서 그래"
“사회 초년생은 원래 처음엔 힘든 거야”
“그 정도의 돈과 대우를 해주는 직장이 얼마나 있는데?”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야”
대부분 나의 나약함을 꼬집었다.
나는 그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는 지금까지 사회가 말하는 정답을 벗어나 본 적 없었으니까, 그저 버티면 다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악화되었다.
무기력은 집중력 저하·업무 실수로 이어졌고 이는 상사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어느새 나는 팀 내에서 신뢰를 잃고 겉도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평판은 타 부서에도 흘러가 나는 폐급·금쪽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알지도 못하는 팀의 회식자리에서 내 얘기가 빈번하게 나온다는 동기의 말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내 시선은 늘 바닥을 향해있었고, 떨어진 자존감은 주변 사람에게 가벼운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렵게 했다.
타인의 인정으로 살아온 내게, 이러한 상황은 꽤 치명적이었다.
반년이 넘도록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나는 자기혐오가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타인의 멸시는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 되었다.
그래도 버텼다. 나는 지금까지 무너져본 적 없으니까. 버티고 노력하면 더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수없는 고민 끝에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다. ADHD 약을 처방받아 매일 아침 삼켰다. 집중력 문제를 해결하면 다 해결되리라 믿었다. 밤에는 수면제를 먹고 침대에 누워 내일은 좀 더 나아지는 꿈을 꿨다.
하지만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심장의 두근거림과 초조함이 극도로 증폭되어 공황에 빠졌다. 회사 화장실에서 매일같이 울었고, 그마저도 힘들 땐 회사 밖에 나와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다 그만두고 싶다고 절규했다.
하지만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두자니 나 따위가 밖에서 무얼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이 지경에 이르렀어도 타인의 시선은 여전히 두려웠다. 이렇게 회사를 나가면 주변사람들의 기억 속에 나는 그저 패배자로 남을 테니까. 부모님도, 친구들도, 주변사람들도 다 실망할 테니까.
이제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죽음”
삶의 이유였던 타인의 시선이, 이제는 죽음의 이유가 되었다.
매일 내 어두운 안색을 살피며 눈치를 보는 부모님의 모습에, 나는 자기혐오를 넘어 주변에 악취를 풍기는 썩은 음식물쓰레기가 된 것 같았다.
부모님의 고통을 두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순간순간이 너무 버거웠다. 잠시라도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매일 퇴근 후 내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 거울을 보고 두 손으로 목을 졸랐다.
간신히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을 때면 오늘이 내 마지막이었길. 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길을 걸을 때는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며 내가 치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가 나를 덮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죽음이 조금은 불쌍해지면 좋지 않을까. 그럼 나의 도망도 합리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남의 시선을 걱정했다.
그렇게 어두운 안색이 검은색이 될 때 즈음, 지난날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날이 있었다.
대부분 검은빛을 띠었으나 유일하게 순백색으로 색칠된 기억이 있었다.
"내가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꼈던 기억"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듯 넘겼다. 하지만 이후에도 자꾸만 이 기억이 머리를 맴돌았다.
혼란스러웠다.
내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검은빛이 저 작은 하얀 점 하나로 뒤틀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계속 곱씹으며 깨달았다.
나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왔을 뿐, 내가 스스로 설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삶의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은 적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정답이라는 궤도에서 벗어나야 살 수 있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