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얇은 얼음 위를 걷는 무용수처럼

나는 거짓말쟁이가 될 생각이 없다.

by 코사인 Cosine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당신은 아마도 '완벽한 승리'를 기대했을지 모른다. 주인공이 디지털 악마를 영원히 봉인하고, 도파민의 노예 상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성인처럼 고결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해피엔딩 말이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쟁이가 될 생각이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 전쟁에는 '종전(終戰)'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날은 오후 4시 40분이었다.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던 시점, 나는 꽤나 오만해져 있었다. 흑백 화면은 익숙해졌고, 책은 술술 읽혔으며, 아침 산책은 상쾌했다. 나는 내가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 서 있다고 착각했다.

그 착각이 방심을 불렀다.

"잠깐 머리나 식힐 겸 영상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것은 '보상 심리'라는 탈을 쓴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작은 틈을 허락했다. 유튜브 앱을 다시 깔고, 흑백 모드를 잠시 해제했다. '딱 하나만.'하지만 그 하나는 댐에 뚫린 작은 구멍이었다.


찌지직. 고요하던 내 의지의 얼음판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화려한 색채가 망막을 강타하는 순간, 잠들어 있던 뇌 속의 도파민 회로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굶주린 맹수에게 피 냄새를 맡게 한 꼴이었다.

영상 하나는 두 개가 되었고, 알고리즘의 파도는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두 시간이 지나 있었고,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은 과부하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음이 깨졌다. 나는 다시 차가운 도파민의 바다, 그 끈적하고 어두운 심연으로 추락했다. 풍덩.


차가운 물이 콧속으로 밀려 들어오고, 폐가 짓눌리는 듯한 익숙한 질식감이 찾아왔다."그럼 그렇지. 네가 뭘 하겠어." "작심삼일도 못 가는 의지박약."물속에서 자괴감이라는 수초가 내 발목을 휘감았다. 일주일간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토록 비장하게 선언했던 '집도'와 '결단'들이 한순간에 우스꽝스러운 연극 대사처럼 느껴졌다. 나는 패배감에 젖어 허우적거렸다. 다시 예전의 좀비 같던 삶으로, 그 9시의 무기력한 침대 위로 떠밀려 갈 것만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이대로 그냥 잠겨버릴까. 편안하게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둥둥 떠다니며 사는 게 내 분수에 맞는 게 않을까.

차가운 유혹이 내 몸을 아래로, 더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때였다. 심연의 바닥에서, 문득 지난 며칠간 느꼈던 '감각'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침 공기의 차가움, 꼭꼭 씹어 먹던 쌀밥의 단맛, 《데미안》의 문장이 뇌리에 박히던 전율, 그리고 창밖을 보며 느꼈던 그 우아한 지루함. 그 선명한 기억들이 내게 구명조끼가 되었다.


나는 알았다. 나는 이미 '맛'을 봐버린 사람이다. 가짜 쾌락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맛이 아니라, 진짜 삶을 씹고 뜯고 맛보는 그 황홀한 해방감을 알아버린 것이다. 한번 그 세계를 본 사람은, 다시는 이전의 맹목적인 어둠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발버둥 쳤다. 자괴감의 수초를 끊어내고,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었다. "푸하!"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는 다시 얼음판 위로 기어 올라왔다. 온몸이 젖어 떨렸지만, 나는 주저앉아 울지 않았다. 대신, 아주 담담하게 움직였다.


다시 유튜브 앱을 지웠다. 다시 화면을 흑백으로 돌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실패를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대신, 그냥 '리셋 버튼'을 한 번 더 눌렀을 뿐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의 변화는 강철 다리를 놓는 공사가 아니었다. 이것은 '얇은 얼음 위를 걷는 훈련'이었다.


우리는 도파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은 온통 우리를 유혹하는 덫으로 깔려 있다. 이 얼음판은 언제든 다시 깨질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또 넘어질 것이고, 또 유혹에 빠질 것이고, 또다시 스마트폰을 붙들고 밤을 새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한 번 빠졌다고 해서 내 인생이 익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건, 물에 빠졌을 때 얼마나 빨리, 털고 다시 올라오느냐는 것이다.


나는 젖은 몸을 닦고 다시 섰다.

발밑의 얼음은 여전히 얇고 위태롭다. 쩍, 쩍, 금 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에 떨며 웅크리는 대신, 자세를 바로잡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나는 무용수(Dancer)가 되기로 했다. 두꺼운 땅 위를 쿵쿵거리며 걷는 둔탁한 걸음이 아니라,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얇은 빙판 위에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사뿐히 발을 내딛는 섬세한 춤사위로 살아가기로 했다.

스마트폰은 여전히 책상 위에 있다. 세상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앱을 지우고, 색을 빼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펜을 들면 된다. 그 '회복의 탄력성'이 바로 나의 근육이고, 나의 춤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흑백의 위로를 전한다. 당신의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자책하지 말고,삼일 만에 무너졌다면, 4일째 되는 날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 반복되는 실패와 시도 속에서, 당신의 영혼은 굳은살이 박히고 단단해질 것이다.


흑백의 세상 속에서, 비로소 나라는 존재만이 유일한 색채(Color)로 빛나고 있는, 이 위태롭고 아름다운 얼음 위에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춤을 춘다.

째깍, 째깍.

다시, 나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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