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동안 '먹는 척'을 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과 정갈한 반찬이 놓여 있었지만, 나의 시선은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 내 눈은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사각 창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왼손은 기계적으로 숟가락을 들어 입으로 밥을 퍼 날랐고, 오른손은 쉴 새 없이 화면을 스크롤 했다.
그것은 식사가 아니었다. '주유'였다.
내 위장은 연료 탱크였고, 음식은 그저 배고픔이라는 경고등을 끄기 위한 휘발유에 불과했다. 혀는 맛을 느끼는 감각 기관이기를 포기하고, 그저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컨베이어 벨트로 전락했다.
입으로는 밥을 씹고 있었지만, 뇌는 유튜브 속 예능인의 잡담을 씹고 있었다. 시각과 미각의 끔찍한 불일치. 나는 내 앞에 놓인 생명의 양식을 모독하고 있었다.
비단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정보를 대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활자 중독자처럼 하루 종일 인터넷 기사와 블로그 글을 읽어댔지만, 그것은 읽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핥는' 행위였다.
어마어마한 양의 텍스트가 내 망막을 스쳐 지나갔지만, 뇌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머리는 밑 빠진 독이었다. 들이부으면 붓는 대로 흘러내렸다. 밤이 되면 눈은 뻑뻑하고 머리는 멍했지만, 정작 "오늘 무엇을 배웠지?"라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문장이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거대한 '소비 기계'였다.
세상이 토해내는 콘텐츠를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먹고, 소화도 시키지 못한 채 배설해버리는, 영혼이 없는 포식자. 그것이 나의 초라한 자화상이었다.
디지털 디톡스를 선언한 후, 나는 책장에 꽂혀 있던 먼지 쌓인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스마트폰이 사라진 빈자리를 고전으로 채워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책을 펼친 순간, 나는 절망했다.
문장이 읽히지 않았다.
눈동자는 글자 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의미는 뇌의 표면에 닿자마자 기름 바른 공처럼 미끄러져 나갔다.
'한 문단만 읽었는데 벌써 딴생각이 나네.'
유튜브 쇼츠의 15초 호흡에 길들여진 내 뇌는, 한 페이지를 넘기는 그 긴 호흡을 견디지 못했다. 문장의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눈은 이미 다음 줄, 그다음 줄로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었다.
빨리 결론을 내놓으라고, 빨리 도파민을 내놓으라고 뇌가 보채는 통에, 나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활자를 '스캔'하고 있었다.
책을 덮었을 때 남은 것은 '글자를 봤다'는 시각적 잔상뿐, 그 어떤 감동도 내면에 스며들지 못했다.
나는 내가 난독증이 된 줄 알았다. 아니, 그보다 더 심각했다. 나는 '생각하는 능력'을 거세당한 상태였다. 누군가가 요약해 준 유튜브 영상, 3줄 요약이 없으면 긴 글을 읽지 못하는 바보.
책상 앞에 앉아 펴놓은 책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마치 이빨 빠진 호랑이가 고기를 앞에 두고 씹지 못해 끙끙대는 꼴 같아 비참했다.
변화는 식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새벽 6시. 창문을 열어 겨울의 찬 공기를 방 안으로 들였다. 정신이 번쩍 드는 냉기였다.
나는 식탁 앞에 앉았다. 늘 내 밥상머리를 지키던 스마트폰은 침실에 감금해 두었다. 오직 밥그릇과 나, 단둘뿐이었다.
숟가락을 들었다. 하얀 쌀밥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씹었다.
평소라면 두세 번 우물거리고 삼켰을 밥알을, 의식적으로 30번을 세며 씹었다.
하나, 둘, 셋... 열... 스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했던 쌀밥에서, 씹으면 씹을수록 뭉근하고 깊은 단맛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혀끝을 감싸는 전분의 달콤함, 밥알 하나하나가 터지며 내는 고소함. 그것은 갓 지은 밥이 내게 건네는 수줍은 고백이었다.
'나는 원래 이렇게 달았어. 네가 몰라줬을 뿐이지.'
반찬 하나하나의 식감, 국물의 온기. 그 모든 감각이 살아서 내 몸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소화'란 단순히 위장의 일이 아니라, 온몸으로 대상을 받아들이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식사를 마치고 다시 《데미안》을 펼쳤다.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나는 밥을 씹듯, 문장을 씹기로 했다.
눈으로 훑는 속독은 집어치웠다. 한 문장을 읽더라도, 그 문장이 내 뇌수에 스며들어 피와 살이 될 때까지 씹고 또 씹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예전 같으면 "아, 좋은 말이네" 하고 1초 만에 넘겼을 그 문장 앞에서, 나는 멈춰 섰다.
펜을 들었다. 그리고 문장 밑에 밑줄을 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종이가 찢어질 듯 꾹꾹 눌러 그으며, 나는 그 문장을 내 안으로 초대했다.
싱클레어의 투쟁이, 껍질을 깨부수는 그 고통이, 활자라는 감옥을 탈출해 내 가슴속으로 뛰어들어왔다.
나는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내가 갇혀 있던 '소비자의 껍질'이 깨지는 소리였다.
나는 더 이상 정보를 눈으로만 마시는 구경꾼이 아니었다.
노트를 펼쳤다. 하얀 백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방금 읽은 문장을 내 언어로 다시 적어 내려갔다. 저자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따라 쓰는 필사가 아니었다. 내 삶의 맥락(Context)을 섞어, 새롭게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번역'이었다.
"나의 알은 무엇인가? 나를 감싸고 있던 스마트폰, 알고리즘, 타인의 시선. 그것이 바로 내가 파괴해야 할 세계였다. 나는 지금 투쟁하고 있다. 이 고통은 알을 깨는 아픔이다."
펜끝에서 태어난 문장들이 노트 위를 수놓았다.
그 순간, 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객체에서, 사유를 생산하는 주체로 변모했다. 뇌의 회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유튜브를 볼 때의 멍청한 열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창조의 열기였다.
밤 10시.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는 또 하나의 '생산'을 준비한다.
내일 입을 옷을 꺼내 옷걸이에 걸고, 가방에 책과 노트를 챙겨 넣는다.
이 사소한 행위는 내일 아침의 나를 위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과정이다.
"내일의 너는 허둥대지 않을 거야. 우아하게 일어나서, 준비된 갑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갈 거야."
잠자리에 드는 내 머리맡에는 스마트폰 대신, 나의 생각이 빼곡히 적힌 노트가 놓여 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미소 지었다.
내일 아침, 나는 알을 깨고 나온 한 마리 새처럼, 더 높고 넓은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나의 날개는, 내가 씹어 삼킨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