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禁斷): 우아한 지루함을 견디는 법

마라탕 VS 평양냉면

by 코사인 Cosine

흑백모드 3일차 | 나는 자신만만하게 세상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나는 달라졌다'는 오만을 품고,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즐기겠다며 호기롭게 갤러리의 조용한 전시실에 발을 들였다. 아니, 정확히는 들여놓으려 했다.


그러나 그 고요한 공간에 들어선 지 불과 10분 만에, 내 뇌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정지된 그림, 느릿하게 움직이는 관람객,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 그 모든 '느린 것'들이 나를 질식시켰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널뛰었다. 주머니 속의 흑백 폰을 꺼내 보고 싶은 충동이,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흉곽을 긁어댔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캔버스 위의 색채들이 의미 없는 얼룩으로 뭉개져 보였고, 작품 설명에 적힌 텍스트들은 해독할 수 없는 고대 문자처럼 둥둥 떠다녔다.

"지루해. 미칠 것 같이 지루해."

내 뇌는 초고속 데이터 전송에 최적화된 광케이블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스 부호 수준의 느린 정보(그림, 글자)가 입력되자,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키며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15초마다 새로운 자극을 때려 박아주던 쇼츠의 속도감에 절여진 신경세포들이, 1분 이상 정지된 대상을 견디지 못하고 '금단 증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도망치듯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거리의 소음이 차라리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벤치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던가? 스마트폰 하나 껐다고, 텍스트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난독증 환자가 되어버린 것인가? 자괴감이라는 독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내 혀의 감각을 떠올렸다.

나는 매운맛 중독자였다. 혀가 얼얼해질 정도로 캡사이신이 범벅된 마라탕과 떡볶이를 주식으로 삼았다. 그런 내게 슴슴한 평양냉면 육수는 그저 '맹물'일 뿐이었다.

"이게 무슨 맛이야? 아무 맛도 안 나잖아."

그때 나는 평양냉면이 맛없다고 욕했다. 하지만 틀렸다. 육수에는 깊은 고기 향과 메밀의 구수함이 담겨 있었다.

단지, 화상을 입어 마비된 내 혀가 그 섬세한 맛을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 내 뇌가 딱 그 꼴이었다.

디지털 세상의 '마라맛' 자극.

총천연색의 썸네일, 1.5배속의 음성, 1초 단위로 바뀌는 컷 편집. 그 강렬한 조미료에 십수 년간 절여진 내 뇌는 미각을 상실했다. 그러니 책이나 사색, 풍경 같은 '슴슴한 평양냉면' 같은 자극이 들어오자, "아무 맛도 안 나(지루해)"라고 투정을 부리며 그릇을 엎어버린 것이다.


이 불안감은 내 집중력이 부족해서 생긴 게 아니었다.

이것은 병이었다. 화상 입은 혀가 껍질을 벗고 새살을 돋우기 위해 겪는 쓰라림.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나는 지금 정상인이 아니다. 나는 '도파민 중독자'이며, 지금 겪는 이 고통은 치유를 위한 '명현 반응(Healing Crisis)'이다.


"그래, 억지로 하려 하지 말자."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 그 또한 또 다른 형태의 '자극 추구'였다. 나는 과부하 걸린 뇌에게 휴식을 허락하기로 했다.


나는 방 한가운데 의자를 놓고 앉았다.


스마트폰은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책도, 음악도, 넷플릭스도 없었다.

오직 나와, 창문 너머의 풍경뿐.

'아무것도 하지 않기.'

현대인에게 이것만큼 고문 같은 형벌이 또 있을까? 처음 5분은 1시간처럼 느껴졌다. 뇌는 끊임없이 "뭐라도 해! 심심해 죽겠어!"라고 비명을 질렀다.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손톱을 물어뜯고 싶었다.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잡념들이 시끄러운 난상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이 시간을 '재활 훈련'이라고 명명했다.

다리가 부러진 환자가 걷기 위해 재활을 하듯, 뇌가 고장 난 나는 '심심함'을 견디는 근육을 길러야 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지겨움'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지겨움은 검고 끈적한 타르 같았다. 나를 집어삼킬 듯 넘실거렸다. 하지만 그 끈적함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몸을 맡기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거친 파도처럼 날뛰던 뇌파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꽉 채우던 시끄러운 독백의 스위치가 하나둘씩 꺼졌다.

불안이 사라진 자리에, '우아한 정적'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텅 빈 공허함(Emptiness)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가 가득 차오르는 충만함(Fullness)이었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아니, 세상의 해상도(Resolution)가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흐릿한 배경에 불과했던 가로수가, 이제는 수천 개의 초록색 픽셀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하나의 춤사위가 슬로우 모션처럼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청각도 깨어났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바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심지어 내 방 안을 부유하는 먼지의 움직임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자극적인 마라맛이 씻겨 내려간 자리에, 비로소 세상 본연의 '슴슴하고 깊은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훅 끼쳐왔다. 예전 같으면 "춥다"며 닫았을 그 바람이, 오늘은 내 볼을 어루만지는 시원한 손길로 느껴졌다.


나는 의자에 깊이 등을 기대고, 그저 멍하니 있었다.

음악도 없고, 영상도 없는, 완벽한 심심함.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이 심심함은, 내 뇌가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괜찮다."


입 밖으로 나온 그 한마디가 방 안의 공기를 울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았다.

생산적이지 않아도, 성과를 내지 않아도, 그저 창밖을 바라보는 이 순간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지루함은 고통이 아니라, 상상력이 잉태되는 자궁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아주 천천히,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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