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다.
책상 위에 엎어두었던 스마트폰이 짧게 몸을 떨었다. '징-'.
그 건조한 진동음은 고요하게 흐르던 나의 시공간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나는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면의 정원을 가꾸는 데 꽤나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 했던가. 무심코 확인한 화면에는 오랜 친구의 SNS 알림이 떠 있었다. "승진 축하해! 이번 프로젝트 대박이더라." 호기심이라는 악마가 내 손가락을 조종했다. 나는 금지된 문을 열듯 앱을 실행했다.
화면 가득, 친구의 화려한 성취가 펼쳐졌다.
잘 차려입은 슈트, 유명 호텔의 라운지, 성공을 축하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의 얼굴. 그 사진 한 장은 완벽하게 세공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었다.
순간, 내 방의 공기가 차갑게 식어버렸다.
방금 전까지 《데미안》을 읽으며 느꼈던 지적 충만함은, 찬물을 끼얹은 듯 증발해 버렸다.
초라함. 그 감정은 눅눅한 안개처럼 바닥에서부터 피어올라 내 발목을 잡고,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마침내 심장을 옥죄었다.
친구는 저토록 높은 곳에서 비행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방구석에 처박혀 스마트폰이나 끄고 켜는 걸 대단한 투쟁이라도 되는 양 유세 떨고 있는 꼴이라니. 남들은 연봉을 올리고 커리어를 쌓아 올리는 동안, 나는 고작 '지루함을 견디는 법' 따위를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타인의 화려한 '결과' 앞에, 나의 치열한 '과정'은 그저 보잘것없는 잉여의 시간처럼 초라해 보였다.
비교는 영혼을 갉아먹는 가장 날카로운 이빨이었다. 나는 친구의 사진(하이라이트)과 나의 현재(비하인드)를 나란히 놓고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불공정한 재판이었다. SNS라는 공간은 거대한 '편집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1초를 잘라내어 전시한다. 지루한 출근길, 상사에게 깨지던 순간, 밤새 야근하며 마신 쓴 커피, 남들 몰래 삼킨 눈물 자국. 그 모든 구질구질한 '비하인드 신(Behind the Scene)'은 가위로 오려내고, 오직 박수받을 만한 클라이맥스만을 이어 붙인다.
하지만 나는 나의 '비하인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늘어진 런닝셔츠, 정리되지 않은 머리, 불안에 떨며 일기장에 휘갈겨 쓴 찌질한 문장들. 나는 타인의 '예고편'과 나의 '다큐멘터리 원본'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너는 뒤처졌어." "네가 방구석에서 도 닦는 동안 세상은 저만큼 앞서갔어."
내면의 비평가가 독설을 퍼부었다. 얇은 살얼음판 같았던 자존감이 '찌지직'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들여 쌓은 탑이, 타인의 사진 한 장이라는 돌풍에 휘청거렸다. 다시 저 화려한 세상으로 뛰어들어야 할까? 나도 그럴듯한 사진을 찍어 올려서 "나도 잘 살고 있어"라고 증명해야 할까? 과거의 습관이, 그 인정 욕구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폐부 깊숙이 들어온 산소가 요동치던 뇌파를 진정시켰다. 나는 문득 창밖의 가로수를 바라보았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겨울 나무.
사람들은 저 나무를 보며 "꽃도 없고 잎도 없네"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차가운 보도블록 밑,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뿌리(Root). 화려한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 흙 속의 어둠과 싸우며 물길을 찾아 파고드는 그 억센 뿌리들의 몸부림. 나의 지난 4일, 아니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지난 모든 시간은 바로 그 '뿌리 내리기'였다.
메이플스토리에 미쳐 PC방 IP를 끌어다 썼던 그 광적인 몰입, 그것을 단칼에 끊어냈던 결단력. 인스타그램 팔로워 1.8K의 성을 미련 없이 허물어버린 그 용기.
그리고 지금, 디지털 마약과 싸우며 뇌의 신경망을 새로 깔고 있는 이 고통스러운 재활의 시간.
이것은 헛된 시간이 아니다. 이것은 남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오직 나만이 아는 '맥락(Context)'이다.
친구의 성취가 빛나는 열매라면, 나의 투쟁은 그 열매를 맺기 위해 땅을 다지는 경작이다. 세상은 결과만을 칭송하지만, 나는 안다. 단단한 뿌리 없이는 어떤 열매도 매달릴 수 없다는 것을. 지금 내가 겪는 이 고독과 불안,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의지는 내 영혼의 뿌리를 더 깊고 넓게 뻗게 하는 거름이다.
"나에게는 나만의 서사가 있다."
타인의 하이라이트가 아무리 눈부셔도, 그것이 나의 비하인드를 비참하게 만들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 영화의 장르는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로맨틱 코미디를 찍고 있다면, 나는 지금 처절한 누아르 혹은 위대한 성장 드라마를 찍고 있으니까.
나는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보았다. 친구의 웃는 얼굴이 더 이상 나를 위협하는 칼날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진심을 담아 '좋아요'를 눌렀다. 그것은 복종도, 부러움도 아니었다. "너는 네 삶의 꽃을 피웠구나. 축하한다. 나는 내 땅을 갈고 있다."
그것은 서로 다른 계절을 사는 농부끼리의 담백한 인사였다. 나는 조용히 앱을 종료하고 휴대폰을 엎어두었다. 그리고 다시 노트와 펜을 잡았다.
흔들렸던 마음, 질투라는 감정의 민낯, 그리고 다시 중심을 잡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록들이 모여 나의 맥락이 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 문장'이 아니라, 나를 지탱하는 '골격의 문장'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가운데 섰다. 발바닥이 바닥에 단단히 붙어 있음을 느꼈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아니,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다. 나에게는 세상의 속도가 아닌, 나의 리듬이 있다.
남들이 만든 지도를 찢어버리고, 나는 내 가슴속에 있는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바늘은 떨리고 있지만, 방향은 명확했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화려한 조명은 없어도, 내가 밟는 이 땅의 단단함만큼은 진짜니까.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탈옥한 나는, 비로소 나의 그림자마저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비하인드 신이 아름다워야, 진짜 명작이다.
내 인생이라는 영화는, 지금 가장 흥미진진한 챕터를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