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이 없는 세계의 이방인]
세상은 나에게 '적당함'을 요구했다. 꾸준함이 미덕인 사회,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성실함이 정답이라고 가르치는 교과서들. 사람들은 잔잔한 호수처럼, 혹은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가는데, 왜 나의 영혼은 폭포수 아니면 메마른 사막인 걸까.
나는 '중간(50)'이 없는 인간이었다. 나의 에너지는 언제나 0 아니면 100이었다. 스위치가 켜지면 태양처럼 타올라 주변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질주하다가도, 그 열기가 식는 순간, 거짓말처럼 차가운 재가 되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수학 시간에 배웠던 코사인(Cosine) 그래프. 1에서 시작해 바닥을 뚫고 -1까지 추락했다가 다시 치고 올라오는 그 극단의 곡선. 그것이 내 영혼의 설계도였다. 남들은 평탄한 직선 도로를 달릴 때, 나는 혼자 롤러코스터에 묶여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가장 괴로운 것은 추락의 순간이었다. 뜨겁게 몰입하던 대상이 시들해지는 찰나, 나는 깊은 늪으로 빠져들었다. 어제까지 나를 숨 쉬게 하던 열정이 오늘은 짐짝처럼 느껴질 때, 나는 스스로를 혐오했다. '너는 왜 끝까지 하지 못하니?' '너는 왜 항상 싫증을 내니?' 스스로 던진 질문들이 화살이 되어, 무기력의 늪에 빠진 나를 확인 사살했다. 나는 고장 난 기계였다. 엑셀과 브레이크만 있고, 핸들이 없는 폭주 기관차였다.
[폐허가 된 왕국들]
기억의 태엽을 감아 열네 살의 시절로 돌아가 본다. 그 시절, 나의 우주는 '메이플스토리'라는 디지털 세상 속에 있었다. 학교는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일 뿐, 나의 진짜 삶은 모니터 속에 펼쳐진 버섯 마을과 엘리니아의 숲에 있었다. 단순한 유희가 아니었다. 나는 그 세계에 살기를 자처했다. 집에서도 PC방 혜택을 받기 위해, 부모님 몰래 업자를 통해 'PC방 IP'를 구매해 내 방 컴퓨터에 이식했다. 나의 좁은 방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요새가 되었다.
마우스 클릭 소리가 빗소리처럼 방을 채우던 어느 날이었다. 잠시 로딩 화면으로 넘어가는 1초의 정적. 검게 변한 모니터 화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구부정한 어깨, 퀭한 눈,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 그것은 영웅이 아니었다. 동굴 속에 웅크린, 낯선 '고블린' 한 마리였다.
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이 척추를 타고 뇌를 강타했다. 재미가 없어진 게 아니었다. 게임 속의 레벨이 오를수록 현실의 나는 레벨 다운되고 있다는 그 명백한 증거 앞에서, 나는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를 느꼈다. 나는 그길로 게임을 껐다. 아니, '삭제' 버튼을 눌러 그 세계를 폭파해 버렸다. 수개월을 공들여 쌓아 올린 나의 왕국은,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데이터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미련은 없었다. 혐오가 사랑을 이긴 것이다.
이 패턴은 성인이 되어서도 유령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키울 때도 그랬다. 팔로워 숫자 1이 오를 때마다 도파민이 터졌다. 사진의 톤을 맞추고, 해시태그를 연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분석하며 밤을 새웠다. 팔로워 1.8K. 누군가에게는 작은 숫자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내가 건설한 또 다른 성(城)이었다. 하지만 그 성벽이 높아질수록 안주인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좋아요 알림이 울릴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는 나 자신이, 화려한 사각 프레임 속에 갇혀 연기하는 광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겨워."
그 한마디와 함께 나는 또다시 성문을 닫아걸었다. 계정을 폭파하고 앱을 지웠다. 열정의 온도가 100도에서 0도로 급냉각되는 순간, 나는 다시 텅 빈 방에 홀로 남겨졌다. 생산력은 마비되었고, 타오르던 엔진이 멈춘 자리에 깊은 우울이 고였다. 연애도,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몰입의 끝에는 언제나 차가운 권태와 단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끈기가 없는 걸까? 아니면 그저 싫증을 잘 내는 어린아이인 걸까?
[리듬의 재발견]
이 깊은 무기력의 늪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오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지겨움과 불쾌함, 그리고 모든 것을 끊어내고 웅크린 이 시간들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라. 게임을 끊어낸 그 '불쾌함' 덕분에 나는 현실로 돌아와 공부를 했다. 인스타그램을 끊어낸 그 '지겨움' 덕분에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시간을 벌었다. 내가 느낀 혐오감은 단순한 싫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 본능이 울리는 사이렌'이었다. 나의 영혼이 더 이상 이 가짜 세상에 갇혀 있으면 썩어버릴 것 같으니, 당장 탈출하라고 뇌가 보내는 긴급 구조 신호였던 것이다.
나는 고장 난 기계가 아니었다. 나는 '스포츠카'였다. 연비가 좋은 경차처럼 꾸준히 달릴 수는 없지만, 엑셀을 밟으면 폭발적인 속도로 질주하는 고성능 엔진을 가진 존재. 그런 엔진은 과열되면 반드시 시동을 끄고 식혀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겪는 이 무기력은 고장이 아니라, 뜨겁게 달아올랐던 엔진을 식히는 '냉각기(Cooling Time)'였다.
코사인 그래프가 음수(-1)의 바닥을 찍는다는 것은, 곧 다시 양수(+1)를 향해 솟구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음의 영역, 즉 이 어둠과 침묵의 시간은 추락이 아니라 도약을 위한 웅크림이다.
[바닥을 치고 오르는 힘]
나는 이제 나의 이 '극단성'을 사랑하기로 했다. 미지근하게 사느니, 차라리 뜨겁게 타오르고 차갑게 식어버리는 쪽을 택하겠다. 꽂히면 끝장을 보고, 아니다 싶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끊어버리는 이 기질. 이것은 산만함이 아니라 '결단력'이고, 변덕이 아니라 '몰입의 깊이'다.
지금 나는 유튜브와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적을 끊어냈다. 남들은 "적당히 보면 되지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끊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에게 '적당히'란 없다. 불을 끄려면 아예 산소 공급을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지금 나는 코사인 그래프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 서 있다. 주변은 어둡고, 춥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이 바닥을 발판 삼아, 나는 다시 솟구칠 것이다. 이전보다 더 높고, 더 거대하고, 더 아름다운 파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나의 에너지가 방향을 잃고 썩어가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 그 에너지는 응축되고 있다. 폭발하기 직전의 화약처럼, 고요하고 위험하게.
나는 펜을 들어 책상 위 노트에 적었다."나의 무기력은 휴식이 아니다. 나의 침묵은 멈춤이 아니다. 나는 지금, 다음 타겟을 조준하고 있다."
지금 느끼는 이 '지겨움'은 나를 죽이는 독이 아니라, 나를 깨우는 각성제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 대한 혐오를 연료로 삼을 것이다. 과거에 랜선을 뽑아버렸던 그 결단력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날려버렸던 그 과감함으로, 나는 다시 한번 내 삶의 판을 뒤집을 것이다.
나의 그래프는 지금 최저점을 지나고 있다. 이 말은 즉,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어둠이 가장 깊은 곳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찬란한 빛을 본다.
준비는 끝났다.
바닥을 박차고 튀어 오를 시간이다.
나의 코사인 함수가 다시 양수(Positive)의 영역을 향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