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수들의 눈을 찌르다
[천재들의 카르텔]
인정해야만 했다. 이것은 애초에 공정한 싸움이 아니었다.
내 손바닥 위에 놓인 6인치의 검은 거울. 그것은 단순한 통신 기기가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 실리콘밸리의 가장 비싼 빌딩 숲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하다는 천재 엔지니어들과 심리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설계한 '디지털 덫'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뇌가 무엇에 취약한지, 어떤 색깔에 동공이 0.1mm 확장되는지, 어떤 진동 패턴에 심박수가 빨라지는지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오늘은 일찍 자야지"라고 다짐하는 그 순간에도, 그들의 알고리즘은 내 의지보다 수만 배 빠른 속도로 내 취향을 난도질하고 분석하여, 가장 거절하기 힘든 미끼를 던졌다.
붉은색.
유튜브의 재생 버튼�, 넷플릭스의 'N' 로고, 인스타그램의 ♥️, 읽지 않은 알림 배지(Badge)에 찍힌 숫자 '1'.
그 선명하고 자극적인 붉은색은 맹수의 핏빛 눈동자처럼 어둠 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각 정보가 망막에 닿는 순간, 이성은 마비되고 본능만이 튀어 올랐다.
"딱 5분만 볼까?"
그것은 악마의 속삭임이자, 간수들이 던져주는 마약 사탕이었다. 5분은 50분이 되었고, 50분은 5시간이 되었다. '쇼츠(Shorts)'라는 이름의 짧은 영상들은 마치 기관총처럼 내 뇌를 향해 도파민 탄환을 쏘아댔다. 다음, 또 다음. 손가락을 위로 튕기는 그 단순한 동작 하나에 나는 영혼을 저당 잡혔다.
밤마다 나는 패배했다. 뇌는 흐물거리는 순두부처럼 녹아내렸고, 의지는 불에 탄 종이처럼 재가 되어 바스라졌다. 맨몸으로 이 거대한 카르텔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었다.
협상은 불가능했다.
공존은 환상이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이 세계를 물리적으로 파괴해야만 했다.
[썩은 부위를 마주하다]
결단의 시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멍하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내 손가락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꼴을 내려다본 순간이었다. 마치 전기가 통하는 실험실의 쥐처럼, 화면이 번쩍일 때마다 움찔거리는 내 모습.
그 비참함이 임계점을 넘었다.
'도려내야 한다.'
단순한 '절제'나 '줄이기'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실패를 통해 알고 있었다. 암세포가 퍼진 환자에게 "건강을 위해 암세포를 조금만 줄이세요"라고 처방하는 의사는 없다. 살기 위해서는 환부를 완전히 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내 살점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상실감을 줄지라도.
나는 스스로 집도(執刀)의가 되기로 했다.
수술대는 내 지저분한 책상 위였고, 환자는 '중독된 나의 뇌'였으며, 메스는 나의 '검지 손가락'이었다. 마취제는 없었다. 나는 맨정신으로 나의 쾌락을 난도질해야 했다.
[첫 번째 칼날, 소음의 소거]
나는 비장한 심정으로 스마트폰의 설정을 켰다. 이것은 정밀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할 대수술이었다.
가장 먼저 알고리즘의 혀를 잘랐다.
유튜브 설정에 들어가 '시청 기록'과 '검색 기록'을 모조리 삭제했다. 그리고 '기록 중지' 버튼을 눌렀다. 경고창이 떴다.
"맞춤 동영상을 추천받을 수 없습니다."
그 문구는 마치 "너는 이제 재미없는 세상에 갇히게 될 거야"라는 간수의 협박처럼 들렸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확인 버튼을 눌렀다.
구독 중이던 채널들을 하나씩 취소했다. 내 취향을 분석해서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던 그 편리함들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순식간에 홈 화면이 텅 비었다. 시끌벅적하던 장터가 순식간에 폐허가 된 듯한 적막. 하지만 그것은 폐허가 아니라, 비로소 내가 주인이 되어 채워넣어야 할 '텅 빈 도서관'의 고요함이었다. 나의 인터넷은 이제 화려한 쇼윈도가 아니다. 내가 검색하고, 내가 찾아야만 열리는 능동의 세계다.
[두 번째 칼날, 시각의 거세]
이제 가장 결정적인 한 방, '숨통 끊기'가 남았다.
나는 [설정] > [손쉬운 사용] > [색상 필터]로 진입했다. 깊숙이 숨겨진 그 메뉴는 마치 핵미사일 발사 버튼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위치를 켰다. '흑백 모드'.
그 순간, 세상의 채도가 증발했다.
총천연색으로 유혹하던 넷플릭스의 썸네일들이 순식간에 잿빛 묘비처럼 변했다. 뇌를 자극하던 그 붉은색 로고는 차갑게 식은 아스팔트 색깔이 되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눌러줘! 나를 봐줘!"라고 아우성치던 앱들이, 색을 잃자마자 그저 의미 없는 픽셀 덩어리로 전락했다.
달콤한 사탕인 줄 알고 집어 들었는데, 알고 보니 딱딱한 돌멩이였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 허무함.
화려한 화장이 지워진 스마트폰의 민낯은 건조하고, 지루하고, 차가웠다.
바로 그거였다. 나는 나의 뇌에게 '재미없음'을 선사했다. 도파민의 연결 고리를 시각적으로 끊어버린 것이다. 시신경을 타고 흐르던 쾌락의 전류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수술은 끝났다.
놀랍게도, 내 인생을 좀먹던 그 거대한 디지털 괴물을 해체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분이었다.
넷플릭스에서 '오늘 뭐 볼까'를 고민하며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던 시간보다, 킬링타임용 쇼츠 한 편을 멍하니 보는 시간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구원은 이토록 허무할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단지 내가 그 버튼을 누를 용기를 내지 못했을 뿐.
[환경의 재설계 - 갑옷을 입다]
수술은 몸 밖으로 이어졌다.
나는 스마트폰이라는 적을 죽였지만, '게으름'이라는 공범은 여전히 내 방 곳곳에 숨어 있었다. 어질러진 침대,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아무렇게나 벗어둔 잠옷. 이 공간 자체가 나약함을 배양하는 인큐베이터였다.
나는 옷장을 열었다. 며칠째 입고 있던 무릎 나온 츄리닝을 벗어던졌다. 그 옷은 나를 침대로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았다.
대신 깃이 빳빳하게 선 셔츠를 꺼내 입었다. 집 밖으로 나갈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내 정신을 위한 제복이 필요했다.
단추를 하나씩 잠글 때마다, 흐트러졌던 내면의 척추가 하나씩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옷감이 피부를 적당히 조여오는 긴장감.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었다. 나는 전장에 나가는 장수, 혹은 감옥을 탈출해 황야에 선 탈옥수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책상에 앉았다.
흑백으로 변한 폰은 책상 한구석에 시체처럼 놓여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갔지만, 화면을 켜는 순간 마주한 그 칙칙한 회색빛에 뇌가 반응하지 않았다.
"아, 재미없어."
뇌가 실망감을 표출하며 관심을 껐다. 승리였다.
폰이 침묵하자, 비로소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째깍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나는 종이와 펜을 꺼냈다. 하얀 종이 위에 잉크가 스며드는 그 사각거리는 마찰음이, 어떤 ASMR보다 더 생생하게 고막을 울렸다.
"지금, 나는 회복 중이다."
나는 꾹꾹 눌러 썼다.
방금 전까지 나를 지배하던 무기력과 불안감, 앱을 지우며 느꼈던 묘한 공포심까지 전부 종이 위에 박제했다. 활자로 적혀진 감정은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했다.
밤 10시. 나는 내일 아침에 입을 옷과 양말을 미리 꺼내두었다. 내일의 나에게 건네는 작전 명령서였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머리맡에는 충전기 대신 안대와 귀마개가 놓여 있었다.
오늘 밤, 나는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꿈이 아니라, 내가 직접 꾸는 꿈을 꾸러 간다.
어둠 속에서 나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폐부 깊숙이, 낯설지만 상쾌한 자유의 공기가 차올랐다.
탈옥은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진짜 싸움은, 이 광활하고 지루한 황야를 걷기 시작할 내일 아침부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