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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훈 Mar 04. 2023

친구, 그리고 San Antonio

[미국 교환일기 2]


흔히 미국인이라 하면 개방적이고 솔직할 거라는 편견이 들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에도 나처럼 소심한 사람이 있고 반대로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미국도 마찬가지다. 내 방 룸메의 경우 그야말로 단호박이다. 싫으면 싫고 아닌 건 아니다. 반대로 전공 수업을 같이 듣는 Rocky라는 친구는 최대한 나의 의견을 존중하고 살피면서 말을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Rocky는 도서관에서 프린트를 하다가 알게 된 친구다. 두 개의 전공 수업을 같이 들어 얼굴만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옆에서 프린트를 하고 있어 말을 하게 되었고 이후로 전공 수업 사이에 있는 한 시간 동안의 공강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됐다. Rocky는 한국 인디 음악을 즐겨 듣는다. 한국인인 나보다 숨은 인디밴드들을 잘 알아 깜짝 놀랐다. 무슨 뜻인진 몰라도 곡의 느낌이 좋다고 했다. 이야기가 잘 통해서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한다. 함께 영화도 보러 가고 멕시코 음식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Rocky는 'Public Ivy Legue'라고 불리는 UT(University of Texas)에 합격했었는데 코로나이기도 했고 장학금도 여기가 더 많이 줘서 여기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무조건 대학 서열상 좋은 학교로 가려고 하는 한국과는 대조적이어서 놀랐다. 한국에서 누군가 "왜 이 대학을 선택했어"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성적 맞춰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의 경우 "운동할 수 있는 곳이 많아서"라든가 "낚시할 수 있는 호수가 많아서" 등의 대답을 했다. 후자의 경우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에 의하면 수업을 빠지고 호수에 가기도 한다고 했다.


처음 Rocky를 만났을 때 머리가 길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 성별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영화 <Rocky>의 주인공 Rocky가 마초 같은 성격이니까 이 친구도 분명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추측이 들어맞았다. 왠지 모르게 대화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 Rocky는 그런 친구다. 


남자도 자유롭게 긴 머리를 하고 취향껏 학교 안에서 보드를 타고 등교하며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티셔츠를 입고 다녀도 아무 눈치도 보지 않는 여기의 사람들이 멋져 보인다. 외적인 것을 중시하고 튀는 즉시 눈총을 받는 한국의 문화가 가끔은 숨 막히게 느껴진다. 20년 넘게 "일반적인" 존재로 살아온 사람이 아무리 개성의 나라에 있다고 한들 무채색으로 있게 되기 마련이다. 일종의 항상성이랄까.




청계천을 닮은 San Antonio의 Riverwalk


얼마 전, 친구들과 차를 빌려 San Antonio에 다녀왔다. San Antonio는 텍사스에서 인구수가 2번째로 많은 곳이며 미국에서는 7번째로 많은 곳이다. 시골에 박혀 과제만 하던 우리에게 도시는 광야에 내린 만나와 메추라기였다. 차가 많은 것도, 가게에 사람이 가득한 것도 신기했다.


텍사스는 미국의 여러 주들 중에서도 유독 독립성이 강한 주다. 이는 과거 텍사스가 멕시코의 영토였을 때 멕시코의 탄압에 저항해 텍사스 공화국을 설립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 비록 9년간의 짧은 공화국이었지만 이들의 독립성과 자부심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때문에 미국 국기 옆에 텍사스 공화국 시절 국기가 걸려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해당 국기를 디자인으로 한 제품도 많이 판매된다.


The Alamo


San Antonio에는 텍사스 혁명 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알라모(The Alamo)'가 있다. 가장 큰 볼 거리 중 하나이며 다운타운이 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알라모는 과거 스페인의 전도소였으며 원주민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기관으로 사용되다 텍사스 혁명 당시 요새로서 사용되었다. 알라모의 배경과 알라모 전투는 현지 친구들이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혁명의 격전지였던 곳이자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추측건대 텍사스 내에선 남북전쟁 당시 있었던 게티즈버그 전투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띠고 있지 않을까 싶다. 


텍사스로 교환학생을 오지 않았더라면 '텍사스'를 떠올렸을 때의 이미지는 소고기와 목축업, 로데오 정도가 다였을 것이다. 역사나 알라모는 죽을 때까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텍사스 하면 생각나는 목가적인 분위기는 고정관념이었다. 실제와 미디어를 통해 본 것은 너무도 다르다. 사회를 왜 환상(Illution)이라고 하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2주 뒤 Spring Break가 있다. 일주일 간의 봄 방학이다. 룸메이트들과 오스틴, 휴스턴, 뉴올리언스를 다녀오기로 했다. 다음 교환일기는 그에 관한 내용이 될 거 같다. 모두 동면에서 깨어나 따뜻한 3월의 봄을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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