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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훈 Mar 28. 2023

미국 남부 로드 트립 - 휴스턴, 뉴올리언스

[미국 교환일기 - 3]

미국에서는 봄 학기가 절반쯤 지나갈 무렵, 다시 말해 중간고사 기간 직후 Spring Break(봄 방학)가 있다. 주말을 포함해 9일이라는 긴 휴식기간을 맞이한다. 이 기간을 이용해 많은 학생들이 여행을 떠나거나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는 다람쥐들과 극소수의 기숙사생들만이 남게 된다. 나는 한 달 전부터 2명의 룸메이트들과 로드 트립을 떠나기로 계획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총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휴스턴에서 1박, 뉴올리언스에서 2박, 오스틴에서 1박을 하는 일정이었다. 


오스틴에서의 가장 큰 계획은 수영이었는데 날씨가 추워 무산되면서 한인마트와 쇼핑몰, 공원에서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본지에는 휴스턴과 뉴올리언스만을 다룬다.



자매 대학이 위치한 샌 앤젤로에서 휴스턴까지 총 5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중간에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는 등의 시간까지 합하면 6시간이 넘게 걸렸다. 


텍사스의 도로는 재미가 없다. 똑같은 풍경과 동일하게 오르내리는 도로가 데자뷔 인가 의심하게 만든다. 이와 반대로 텍사스 옆에 위치한 루이지에나는 텍사스의 풍경과 길 모양이 색달라 재밌었다. 예를 들어 텍사스에서 보기 힘든 논을 본다거나 맹그로브 나무처럼 물속에 뿌리를 내려 사는 나무들이 있었다. 때마침 꽃과 새싹들이 막 피어날 시기라 창밖을 보며 로드트립을 하기에 적합했다.


Hermann Park

휴스턴의 도시 이름은 텍사스 혁명 당시 지도자 샘 휴스턴 장군에서 따왔다. 텍사스에서 가장 큰 도시답게 휴스턴은 기존에 갔었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게 높은 건물들도 많았고 도시도 컸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고가도로들 탓에 운전하기 조금은 까다로웠다. 


남자 셋끼리의 여행에는 대단한 계획이 없었다. 하루에 하나 정도 큰 계획만 세우고 나머지 시간은 즉흥적으로 보내기로 했다. 휴스턴에서 갔던 Hermann Park도 그러했다. NBA 경기까지 대략 5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서 친구가 급하게 인터넷 서칭을 하던 중 찾게 된 곳이다. 


Hermann Park에는 오리 배를 탈 수 있는 큰 연못들과 언덕이 있는 넓은 공원 등이 있었다. Japanese Garden, 동물원, 자연사 박물관과 붙어 있어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화창한 날씨에 평화로운 분위기의 공원은 여유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나는 친구에게 "일정을 빡빡하게 잡았으면 공원을 여유롭게 거니는 것은 불가능했을 거"라며 계획 없는 여행이 좋다고 강조했다. 한편 도시 한 가운데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것이 조금은 부러웠다.



가려고 찾아본 쇼핑몰이 문을 닫아 농구 경기장 근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기로 했다. 나는 마냥 앉아만 있기 조금 따분해 앞에서 혼자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에게 다가가 같이 하자고 말을 건넸다. 처음엔 둘이서 공을 차다 아이의 누나, 다른 아이들, 그리고 함께 간 룸메이트들까지 참여하더니 축구 게임을 시작했다. 히스패닉 아이와 누나, 백인 아이들, 흑인 친구와 한국 친구, 그리고 나. 이제 와서 보니 다양한 인종이 서로 모여 공 하나를 가지고 거리낌 없이 놀았다. 


Nasa Space center

휴스턴을 대표하는 건 Nas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운타운에서 4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Nasa Space Center가 있다. 늦게 가면 사람이 많단 얘기를 들어 오픈 시간 9시에 맞춰 갔다. 스페이스 센터에서는 나사의 역사, 진행했던 프로젝트들과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들 등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들을 보고 배울 수 있다. 위의 오른쪽 사진의 경우 우주 비행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시설이다. 



외부로 나가 트램을 타면 해설사분께서 각 건물들이 어떤 연구소인지 소개해 주신다. 트램은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대기시간이 한 시간을 넘어갈 정도로 길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먼저 예약하고 타는 것이 좋다. 


우주선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전시관도 있는데 여기에는 수많은 알 수 없는 기계들과 작동 장치들, 그리고 우주 비행사들이 무중력 상태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재현해놓았다.



달에서 채집한 돌이나 흙을 전시해 놓기도 했는데 단순한 돌이긴 하지만 달에서 왔다고 하니 괜히 신비로워 보였다. 나사는 그 자체로 미스터리하게 느껴지는 기관이기도 한데 아마 우주를 탐구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충분히 시간을 가지며 스페이스 센터 전부를 관람하는데 3시간 반에서 4시간이 걸렸다. 진보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엄청난지 느낄 수 있으며 과학을 잘 모르더라도 설명이 잘 되어있어 이해하기 용이했다. 미국 자국민들에겐 "국뽕"을 심어주기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Bourbon Street


저녁 8시쯤 뉴올리언스에 도착했다. 뉴올리언스는 루이지애나 주에서도 동쪽에 위치한 탓에 휴스턴에서 차를 타고 5시간 반 정도를 달려가야 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Bourbon Street였다. 


주차할 자리를 못 찾고 서성이던 중 아무것도 모른 채 일방통행인 도로로 우회전을 했다. 맞은편에서는 큰 차가 천천히 오고 있었고 뒤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 차 위에 파란 불이 켜지고 사이렌이 울렸다. 경찰차였다. 나는 식은땀을 삐죽 흘리며 도로에 잘못 진입해도 벌금을 내야 하나 걱정했다. 그때 경찰관이 내려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창문을 내렸다. 경찰관은 일방통행이니 후진해서 반대쪽으로 나가라고 말한 뒤 차량을 유도해 주었다. 다행히도 친절한 경찰관이었다. 차 트렁크를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조심히 피해 우리는 적당히 거리가 있는 곳을 찾아 주차했다(무료라고 좋아했던 이 주차장을 낮에 가보니 사유지라 주차하면 견인하겠다는 살벌한 문구가 있었다).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는 수많은 바들이 줄지어 있었다. 거리에는 홈리스들이 적잖게 보였지만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굳이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았으며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보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하며 빠르게 그들을 잊었다. 


거리에는 대마초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대마향이 진동했다.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모두 대마초가 불법임에도 담배처럼 이미 만연해 있어 냄새가 진동을 해도 경찰들은 잡지 않는다. 사실상 합법이라 봐도 무방하다.



Bourbon street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단연 재즈바였다. Maison Bourbon Jass Club이라는 이름의 이곳은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리듬 타기를 멈출 수 없는 곳이다. 30분에서 40분 정도 진행되는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보면 여기가 단연 재즈의 도시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팁을 주는 게 아깝지 않을 정도로 흥겹게 관람할 수 있었다.



뉴올리언스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기타와 색소폰, 피아노의 단출한 조합으로 독자적인 재즈 음악을 만들어낸다. 바퀴가 달린 가벼운 피아노에서 얼마나 좋은 소리가 나려나만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고 그 자체로도 충분히 멋진 가락을 만들어낸다. 


흥에 겨워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사람들, 그들의 연주에 대해 논평하는 사람들, 사소한 발짓으로 재즈를 즐겨보려는 나와 같은 사람들, 모두가 재즈 속으로 녹아든다. 뉴올리언스에서의 이틀은 그야말로 재즈 그 자체였다.



루이 암스트롱의 출신지답게 '암스트롱 공원'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한 손에는 트럼펫, 다른 한 손에는 손수건을 쥔 그의 모습을 보며 한 사람이 한 도시, 그리고 한 주에 얼마나 큰 영향을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이제는 당연하게도, 공원에는 트럼펫과 색소폰, 기타 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잠시 공원에 앉아 쉬었다.


뉴올리언스에는 미시시피강이 흐른다. 돈을 지불하면 큰 증기선을 타고 강을 한 바퀴 돌 수 있지만 갈색빛 물 위를 떠다니는 페리를 굳이 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 도시는 과거 프랑스,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탓에 거리와 건물들에서 유럽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뉴올리언스의 중심지 프렌치 쿼터(French Quater)의 이름도 그 영향일 것이다. 


도심 곳곳에는 철도가 있는데 경전철과 유사한 빨간색 대중교통이 다닌다. 속도가 느리고 대략 100m에 한 번씩 정차하기 때문에 교통수단이라기보단 관광용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잭슨 광장과 세인트루이스 대성당의 모습이다. 두 명소가 함께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으며 주변으로 거리 공연이나 캐리커처, 타로가 발달해 있다. 잭슨 광장의 이름을 따온 앤드류 잭슨은 미국의 7대 대통령이자 2차 독립전쟁이라고도 불리는 뉴올리언스 전투(1815)에서 영국군에 맞서 승리한 장군이다. 미국 최초의 서민 출신 대통령이었지만 원주민 강제 이주 및 학살 등의 이유로 양립적 평가가 존재한다. 


1718년 완공된 세인트루이스 대성당은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세밀하게 그려진 벽화와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있다 보면 대성당이라는 이름의 위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성당이 위치한 뉴올리언스에는 아이러니하게도 Voodoo라는 주술적인 토착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해골 모형이나 가면, 유령의 집 등 Voodoo를 상품화한 것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랑스, 스페인, 아프리카의 문화가 혼합되면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생은 젊어서 한다고 로드트립도 그나마 젊은 나이에 하는 것이 좋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신나고 설렐 때도 있지만 따분하기도, 몸이 뻐근해지기도 한다. 다음에 또 로드트립을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보류할 것이다. 웬만하면 비행기를 타는 편이 심신 건강에 좋긴 하니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로드트립은 미국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좋은 문화적 경험이 되었다. 


어느덧 학기의 중반이 지나가고 있다. 느슨하게 살아가는 미국에서의 삶에 몸은 적응했지만 아직 마음에는 조급함이 남아있다. 언어, 문화, 관계 등에서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으며 앞으로의 삶에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 확신한다. 설령 남는 것이 없다 한들 어떤가.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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