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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훈 Apr 12. 2023

완전한 삶의 주변엔 무엇이 있을까

얼마 전,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다양한 나라에서 살아온 덕에 4개 국어를 구사한다. 그녀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일반적인” 한국인의 특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어 보였으며 당당했다. 한국계 사람들에게 묻는 단골 질문, 즉 한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국 사람들은 지나치게 치열하게 살고 일을 너무 많이 한다며 부정의 대답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학교 생활이 재미있었다며 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자연스레 한국의 고등학교 생활이 떠올랐다. 과연 한국 교육과정을 밟은 사람들 중에 고등학교 생활이 재미있었다고 몇 명이나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짧은 대화를 통해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를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으나 여러 나라에서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익힌 4개 국어, 그리고 여유롭게 살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잘 쌓아올 수 있었던 배경이 괜스레 부러워졌다. 


이따금 제3자의 입장으로 한국인들을 바라볼 때면 이들은 그저 정해진 길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는 배수로 속 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디론가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며 자신을 부실기업으로 상정하고 끊임없이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는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게으른 것으로 간주되는 이 사회, 무엇이든 노력으로 성취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 사회 속 개인의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치열한 노력은 비교를 통해 형성된다. 그리고 타인과 비교하는 그 마음은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실은 사회구조 속에서 학습된 것이다. 이를테면 학창 시절 우리의 성적은 늘 상대평가되었다. 내 성적이 충분히 좋더라도 옆 친구의 성적이 더 좋다면 만족할 수 없다. 오늘의 친구가 시험 기간의 적이 된다. 


반대로 미국 학교에서의 성적은 절대평가로 매겨진다. 해당 과목에서 요구하는 바를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지에 따라 등급이 정해진다. 누군가가 시험을 못 봐야 나의 등급이 올라가는 치열한 시스템보단 수업에서 요구한 것을 얼마나 성취했는가에 따라 성적을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잔인하게도 한국 사회 시스템은 우리에게 비교를 통한 자학과 노력, 그 끝내 얻는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성취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웰튼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의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둔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학교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책에 있는 것들을 진리라고 배우며 대학을 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군분투한다. 그런 그들에게 키팅 선생님은 진정한 진리를 가르쳐 준다. 그는 말도 안 되는 기준으로 시와 문학을 평가하고 우월을 따지는 교재를 찢어버리라고 한다. 


사랑과 낭만을 흠모하며 삶을 온전히 느끼는 것, 때론 멍에를 내려놓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는 것을 강조한 그의 덕에 학생들은 진정한 의미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학생들이 가장 행복해 보일 때는 단연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그룹을 결성해 동굴 속에 비밀리 모여 휘트먼과 소로우의 시, 그리고 자작 시들을 욀 때다. 



이 영화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Carpe diem”이라는 격언은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기에,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느끼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진심으로 사랑하고 빠져들며 낭만을 잊지 않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되새기게 하는 말이다.


삶이란 결국 죽음으로 향한다. 그리고 무엇이 잘 산 삶인가의 기준은 나에게 있다. 그렇다면 길게는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여행하게 된 이 지구에서의 삶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가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 낭만, 그리고 여유를 삶의 가치로 두며 살아가길 원한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말이다. 


늘 가던 길도 천천히 마주해 보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저 마음의 문제다. 때론 마당에 핀 꽃잎들의 색깔을 살펴보며, 어제와는 조금 다른 바람의 온도와 구름의 속도를 느껴보며, 그리고 나무그늘 아래에 누워 이런저런 공상을 하며 사는 삶은 완전하다. 두 갈래로 난 숲길 중 사람의 발자취가 적게 난 곳으로 가는 사람이 되길.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드리는 일  


-프랑시스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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