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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훈 Jun 19. 2023

마이애미, 키웨스트, 그리고 히스패닉 아저씨

[미국 교환일기 4]

짧았던 미국 대학교에서의 봄 학기가 끝났다. 교환 학생을 마무리하는 소회는 다음 글로 미뤄두고 이번에는 귀국 전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미국 교환일기"가 교환 학생 생활보단 여행 중심이 되어가는 거 같아 아쉬움이 남지만 이야깃거리가 늘 여행지에서 생겨난 걸 어쩌겠나.


여행은 자매교가 위치해 있는 미국 남부에서 출발해 동부와 서부를 차례로 방문한 뒤 일본을 경유해 한국으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첫 번째 여행지는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마이애미였다.


MIAMI


마이애미 하면 마이애미비치가 연상되듯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부자들이 별장을 사놓는 곳이기도 한데 슈퍼카나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5월이었음에도 한국의 여름처럼 덥고 습해서 거리를 돌아다니면 체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장점이라고 하면 대중교통이 안전했고 무료였다. 이후 방문한 도시들의 대중교통은 하나같이 경악스러웠어서 돌이켜봤을 때 마이애미의 대중교통이 참 좋았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경전철은 무료지만 버스는 유료다. 하지만 아시아인의 얼굴로 어리숙하게 버스에 탑승해 두리번두리번하면 그냥 들어가라고 신호를 준다. 돈이 없는 학생 여행자는 요령껏 다니기 마련이다. 


마이애미 사우스비치


그 유명하다는 마이애미의 해변은 생각보다 별게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다에서 놀기보단 모래사장에 누워서 선탠을 했다. 나와 친구도 선탠을 하다 바다로 들어가 놀았는데 해초가 많아 수영하기에 불편했다. 결론적으로 나쁘진 않지만 유명세에 비해 대단하진 않았다. 강릉 바다나 주문진 해수욕장같이 고운 모래가 있는 곳과 비교해 보면... 보급형 동해안이랄까...? 


하지만 마이애미에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키웨스트(Keywest)


마이애미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3시간 정도 달려가다 보면 키웨스트가 등장한다. 섬들이 육지까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키웨스트는 미국 가장 남쪽에 위치한 지역이 되었다. 미국 사우스 1번 국도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 키웨스트는 플로리다 키스(Florida Keys)라고 불리는 섬들 중 가장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키웨스트를 가는 길은 바다 위를 차로 달리는 느낌이다. 과장이나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것이 다리와 바다가 한 뼘 차이로 있어 아름답기도 아찔하기도 하다. 사진처럼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은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들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웠을 정도였으니.


헤밍웨이의 집


키웨스트에 도착하자마자 간 곳은 헤밍웨이의 집이었다.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 '무기여 잘 있거라' 등 다수의 작품을 저술했다. 세계적인 작가의 공간은 어떨까 궁금한 마음에 구석구석 살펴봤는데 의외로 평범했다. 다만 그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정오까지 집필실로 가 글을 썼다고 한다.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를 저술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헤밍웨이는 낚시광이었며 그의 오랜 낚시 친구가 '노인과 바다' 속 산티아고(노인)의 모델이기도 했다니 말이다. 



헤밍웨이가 키웨스트로 오게 된 가장 큰 요인도 낚시 때문이었다. 그는 쿠바와 키웨스트 사이의 만류에서 청새치와 같은 대형 물고기를 잡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책은 두 권 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쉽고 간결한 헤밍웨이의 문체를 좋아한다.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키웨스트에서도 남쪽 끝으로 가보면 이런 표지석을 찾을 수 있다. 미국 본토보다 쿠바가 더 가까운 지역이다. 언젠가 남미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이애미는 남미와 인접해 있는 만큼 히스패닉이 많이 살고 있다. 전공 수업에서 배운 바로 히스패닉의 절반은 영어를 못하며 이는 그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텍사스에 있으면서 한 번도 영어를 하지 못하는 히스패닉을 본 적이 없어 늘 의아했었다. 


마이애미에 온 뒤로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다 대화를 하게 된 사람들 중 대부분이 히스패닉이었으며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이곳에서의 며칠은 미국 땅에 있지만 남미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특히나 내가 머물던 '리틀 하바나'란 지역은 그런 특징이 더 두드러졌다. 쿠바의 수도에서 이름을 따 만들어진 리틀 하바나는 쿠바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이 머물고 있는 지역이다. 동네를 걷다 보면 라디오나 노랫소리가 모두 스페인어로 흘러나왔으며 거리의 풍경이나 가게의 모습도 매체를 통해 보던 남미의 모습과 흡사했다.


리틀 하바나의 평범한 주택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리틀 하바나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히스패닉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었다. 중국, 일본, 한국 중에 어디서 왔냐고 묻는 말에 한국이라고 답했다. 아저씨는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머리 스타일이 K-Pop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덥수룩하고 긴 머리 탓이었다. 한국인치곤 조금 까만 것 같다고 말하자 많이 탔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친구의 웃음보가 터졌다. 아저씨는 바하마 제도의 어딘가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곤 자신의 부모님과 친척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어느 나라에 살고 있고 무슨 인종인지를 한 명 한 명 설명해 주었다. 


흘깃 본 갤러리에는 가족사진 몇 장 외에는 사진이 없었다. 그의 말과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약간은 부족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짐작했다. 아저씨는 어디에 머물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리틀 하바나라고 답했다. 그러자 거기는 위험한 곳이라며 경고했다. 할렘만큼 위험하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특히나 어둑어둑한 시간,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타깃이 될 수 있다고 핸드폰을 잘 들고 다니라고 조언해 주었다. 마침 버스가 왔고 같이 타고 갈 줄 알았던 아저씨는 어딘가로 유유히 걸어갔다. 


다음날 우연히 그 아저씨를 같은 정류장 인근에서 마주쳤다. 내가 잘 못 알아보자 아저씨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더니 반가움을 표하며 "You are alive! You are alive!(살아있구나!)" 하고 외쳤다.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내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괜한 연민과 함께 나보다도 까맣던 히스패닉 아저씨의 삶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비행기에서 본 마이애미 다운타운의 풍경


그렇게 나는 마이애미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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