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는 단순히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화려함과 웅장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각 영화 속에서는 심도 싶은 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그렇기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디즈니가 남녀노소 불문,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뮤지컬로 제작되어 지금까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라이온킹’은 길을 잃은 이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별과 같은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동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뮤지컬 ‘라이온킹’은 2018-19년도에 이어 2022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데 이어 21개국 1억 1천만 명이 관람한 뮤지컬인 만큼 그 규모와 무대, 연출이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원숭이 주술사 라피키가 아프리카 줄루족의 언어로 심바의 탄생을 축하하는 주문을 외면 메인 테마곡이자 오프닝 곡인 ‘Circle of life’가 시작되면서 무대의 포문이 열린다. 뜨거운 아프리카의 태양이 무대 위로 떠오르고 영양과 치타, 기린과 사슴이 하나 둘 등장한다. 순식간에 수많은 동물들로 가득해진 무대는 사바나 초원으로 변모된다. 모든 배우들은 동물과 혼연일체가 된다. 배우는 가면 뒤로 숨거나 가리지 않고 오롯이 드러난다. ‘동물을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인식보다 그저 ‘사바나의 동물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몸짓과 동작은 정교하다.
감독이자 연출가인 줄리 테이머는 동식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기 위해 뮤지컬에 마스크와 퍼펫을 이용했다. 그는 아시아의 가면극과 인형극에 인상을 받아 인도네시아와 일본에서 관련 공부를 했었다. 뮤지컬 라이온킹에서 다양한 퍼펫과 마스크를 이용한 것은 그 영향일 것이다. 덕분에 무대와 연출은 각 동물들의 캐릭터를 살리면서 다채로운 표현과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 초원의 광활함과 실감 나는 무대연출, 라이브 연주의 웅장함을 150분의 러닝 타임 동안 느끼고 있으면 세계적으로 라이온킹 뮤지컬을 찬미하는 이유를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라이온킹 뮤지컬은 동명의 애니메이션의 스토리와 대사를 충실히 표현해냈다. 때문에 뮤지컬이든 영화든 라이온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일맥상통하다. 오프닝 곡 ‘Circle of life’, 즉 생명의 순환, 자연의 섭리라는 뜻의 곡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삶과 죽음은 늘 함께 있고 우리는 태어나서 수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앞에 놓인 길을 따라 걸어간다. 그렇게 절망과 희망이 있기도, 신념과 사랑이 있기도 한 삶을 살아간다. 그 뒤에는 죽음이 있고 다시 탄생이 있다. 마치 태양처럼 둥근 이 모든 과정은 자연의 섭리다.
극 중 심바는 아버지 무파사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고향 프라이드 랜드를 떠난다. 그렇게 그는 티몬과 품바와 친구가 되고 ‘하쿠나 마타타’ 정신을 배운다. 걱정 마, 문제없어 등으로 해석되는 이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실수나 잘못에 대한 위로와 위안을 주는 말이다. 덕분에 심바는 과거의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티몬과 품바와 함께 자유로운 정글 속을 살아간다. 하지만 하쿠나 마타타 정신은 반대로 심바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었다. 드넓은 초원에 동식물이 가득했던 프라이드 랜드는 심바의 삼촌 스카가 집권한 뒤로 먹을 음식 하나 없는 폐허로 뒤바뀌었다.
이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이는 무파사 뒤를 이어 왕이 되기로 했던 심바뿐이다. 그러나 그는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니 걱정 말고 살자는 식으로 말하며 프라이드 랜드로 돌아가길 꺼려 한다. 하쿠나 마타타 정신이 심바에게 변화와 도전을 거부하는 마음가짐으로 작용한 것이다.
“너는 누구니”라고 묻는 라피키의 질문에 심바는 “예전에는 알 거 같았는데 지금은 모르겠다”라고 답한다. 그는 자신이 누군지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 심바에게 라피키와 날라는 그가 누군지를 자각시켜주었다. 또한 환영처럼 나타난 아버지 무파사는 그에게 “네가 누군지를 알라”는 말을 전한다. 마치 고대 그리스 아폴로 신전 기둥에 새겨져있다는 말처럼 말이다. 자신을 잃어버린 심바는 스스로가 누군지 다시금 깨닫게 되고 가지고 있던 과거로부터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면서 프라이드 랜드로 돌아가 스카를 몰아낸다.
라이온킹이 전하는 철학적 메시지는 처음 영화로 제작된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울림을 준다. 심바는 마치 유약한 우리들과 같다. 무모함과 용기를 구분하지 못해서 때론 타인과 스스로를 위험과 곤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변화하거나 도전하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잃어버린다.
하지만 라피키의 극 중 대사처럼 우리는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 과거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이를 극복하고 주어진 길을 다시금 나아간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아는 것. 어느 길로 가야 하며 그 길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부서지기 쉬운 존재임에도 용기 내기를 겁내지 않는 태도. 라이온킹이 전하는 마음은 그런 것이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에게 뜨거운 마음을 주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은 우리를 위로한다.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 속에서 스스로를 알아가며 용기 내 살아가려는 삶의 자세는 언제나 긴요하다.